'양재시민의 숲' 깊숙이 자리한 '삼풍참사위령탑'
시민들 시선 닿지 않는 곳...유가족 발길만 이어져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서울 서초구 매헌로 99 양재시민의 숲. 1986년 11월 30일 개원한 양재시민의 숲은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환경 개선을 위해 조성했다.

사계절 다른 꽃들이 피어나는 양재시민의 숲 북측 입구. 많은 시민이 북측 공간을 찾는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사계절 다른 꽃들이 피어나는 양재시민의 숲 북측 입구. 많은 시민이 북측 공간을 찾는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총면적 25만 8,991m2인 양재시민의 숲은 차가 오가는 매헌로를 기준으로 두 공간으로 나뉜다. 북측에는 어린이놀이터와 바비큐장, 바닥분수,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 등이 위치했다. 이곳은 항상 가족 동반 나들이객들로 붐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사계절 다른 꽃들이 피어나는 생명의 공간이다.

그 아래 차도를 건너 남측이 있다. 이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다. 앙재동에 오래 거주한 시민들도 양재시민의 숲 북측은 찾아도 남측은 찾지 않는다. 있는 줄도 모르는 시민들도 태반이다. 아는 이들도 애써 시선을 두지 않는다. 이곳이 우리가 기억 저편에 처박아둔 고통의 공간인 까닭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26주년을 맞아 양재시민의 숲 남측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26주년을 맞아 양재시민의 숲 남측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양재시민의 숲 남측에는 유격 백마부대 충혼탑과 북한 테러로 폭파된 대한항공 858편 위령탑,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위령탑, 우면산 산사태 희생자 추모비 등이 있다. 북측의 절반도 안 되는 비좁은 남측 공간에, 대한민국의 굵직한 비탄의 역사를 겹겹이 쌓아놓은 셈이다.

뉴스포스트 취재진은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26주년을 맞아, 남측에 위치한 삼풍참사위령탑을 찾았다. 현장에선 황량한  남측 공간을 홀로 차지한 참사 26주년 플래카드만이 묵묵히 굵은 빗줄기를 감당하고 있었다.

삼풍참사위령탑은 남측에서도 가장자리에 위치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삼풍참사위령탑은 남측에서도 가장자리에 위치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삼풍참사위령탑은 남측에서도 가장 가장자리에 위치했다. 취재진은 위령탑을 찾아 삼풍 참사의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수많은 추모비와 위령탑을 거쳐 남측 가장 깊숙이 들어가야 했다. 

삼풍 참사는 6.25전쟁 이후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낸 참사다. 1995년 6월 29일 삼풍 참사로 502명이 사망하고,  93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붕괴 조짐이 있었음에도 백화점 영업을 지속한 경영진과 이들의 뒤를 봐준 공무원 수십 명이 형사처벌 받았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가장 큰 충격을 안긴 사건이었다.

삼풍참사위령탑을 찾은 유가족.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삼풍참사위령탑을 찾은 유가족.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취재진이 삼풍참사위령탑 뒤쪽으로 돌아가니 유가족들이 참사 희생자에게 전하는 수많은 헌화와 편지가 놓여있었다. 유가족들은 1995년 그날처럼 생생하게, 삼풍 참사의 비극을 기억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유가족 한 명은 취재진에게 삼풍 참사로 딸과 손녀를 잃었다고 설명했다. 참사 당시 딸은 37살이었고 손녀는 유모차를 탔던 나이라고 했다. 유가족은 "딸과 손녀가 유모차를 사이에 두고 3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고 했다. 그는 위령탑에 적힌 딸의 이름을 주름진 손으로 쓰다듬으며 눈물지었다.

위령탑에서 만난 또 다른 유가족은 "매년 6월 29일 전후로 위령탑을 찾는다"면서 "그때마다 비가 내린다"고 했다.

참사로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보내는 헌화와 편지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참사로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보내는 헌화와 편지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부실 시공과 불법 증축, 부정 청탁 등으로 얼룩진 참사 이면의 이야기는 어느덧 언론과 방송에서 가끔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참사 사례로만 기억되는 것인지, 유가족을 제외하고 위령탑을 찾는 시민들은 한 명도 없었다. 궂은 비 탓일까.

미국은 2001년 9.11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메모리얼파크'를 조성했다. 메모리얼파크에 있는 '그라운드 제로'엔 9.11테러로 희생된 3,000여 명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졌다.  매년 수많은 방문객이 이곳을 찾아 그날을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한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져내린 자리엔 추모 공간 대신 2004년 번듯한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섰다. 당시 정부와 지자체, 시민 사회 모두가 유가족과 희생자를 위한 추모의 공간을 ‘혐오 시설’로 분류해 역사의 뒤안길로 구겨 넣었다.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삼풍 참사를 잊은 걸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애꿎은 비만 탓해본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