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연구소장 인터뷰

당신은 마약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매스컴에 자주 나오는 약물 종류나 중독성 등 신체에 미치는 악영향이 대부분일 것이다. 혹자는 마약 투약이 남에게는 해를 입히지 않는다며 죄질을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마약, 정말 자기 자신만 해치는 어리석은 행위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 공동체를 해치는 중대 범죄일까. <뉴스포스트>는 마약이 왜 나쁜 것인지, 반드시 근절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탐구해보았다. -편집자 주-

아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이범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연구소장.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아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이범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연구소장.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마약 사범들이 법의 심판을 받고 선택하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다시 마약에 손을 데거나, 재활 의지를 다지며 완전히 끊거나 둘 중 하나다. 단약에 실패하는 이들의 태도 역시 두 갈래로 나뉜다. 또다시 ‘잘못된 선택’을 했다며 자기반성을 하거나, 투약 행위를 정당화한다거나.

마약을 옹호하는 이들은 극소수일 테지만, 존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 유명 뮤지션은 동료의 마약 투약 행위를 두고 ‘잘못한 게 없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또한 일각에서는 단순 마약 투약은 투약자 스스로의 삶만 망치기 때문에 다른 강력 범죄와 죄질을 비교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마약은 무엇인가’, ‘왜 나쁜가’, ‘정말 나쁜 게 맞나’. 마약에 대한 다른 시각이 일부나마 존재하는 상황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뉴스포스트>는 지난 6일 이범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연구소장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마약퇴치연구소 부이사장 겸 아주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이 소장은 십수 년간 마약 범죄 관련 자문과 연구를 맡았다.

- 마약 문제가 매스컴에서 자주 불거지고 있다. 실제로 현장에서도 마약 범죄의 심각성이 느껴지는가.

원래 마약은 전통적으로 은밀하게 비대면으로 이루어진다. 코로나19와는 무관하게.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검거된) 마약 사범이 1만 명을 넘기 시작해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시국에도 1만 8,050명이 넘었다. 실제로 안 걸린 사람까지 하면 더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수사 기관이 많은 곳에서 단속함에도 작년에 최대치를 기록한 것을 보면, 마약 범죄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상황이다.

마약 사범에 기여하는 이들은 전반적으로 20~30대다. 펜타닐 패치나 프로포폴 같은 향정신성 의약품(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것으로 오용 및 남용하면 인체에 위해가 있다고 인정되는 물질) 사범들이 많고, 대마 사범도 늘고 있다. SNS나 인터넷을 통해 많이 거래한다. 또한 국제적인 활동이 늘면 마약에 노출될 확률도 높다. 수치만 봐도 마약이 이제 점차 우리 사회에 퍼져간다고 느껴진다.

- 일반 시민들은 접하기도 힘들고, 가격도 엄청나다. 도대체 우리나라에 마약이 어떻게 오는 것인가.

영화 ‘마약왕’에서도 나왔듯이 1970~80년대 초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제조했다. 하지만 지금은 국내에서 제조하거나 생산하는 건 없다고 본다. 매스컴에서 제조 사례가 나오긴 하지만, 매우 미미한 양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무역강국이라 사람들의 접촉이 워낙 많고, SNS 등 국제 관계가 활성화됐다. 그러다 보니 해외에서 생산된 마약류들이 국내에 은밀하게 들어와 유통된다. 우리나라는 소비성 마약 국가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의 마약 사범들은 꼭 재벌과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회사원이나 가정주부까지 이른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쓰이는 향정신성 의약품들을 불법적으로 투약해 중독되는 사례들이 계속 늘고 있다. 범죄 집단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중독돼 마약 사범이 되는 것이다. 

- 일각에서는 마약 투약을 두고 큰 범죄가 아니라고 말한다.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만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라는 게 일부의 주장이다. 마약은 정말로 ‘나쁜 범죄’가 맞는가.

세계보건기구(WHO)는 습관성, 의존성, 금단현상이 있는 약물 중 사회에 해악을 주는 것을 마약이라고 정의한다. 일반 약물들도 중독이나 습관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복용함으로써 사회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인정할 수 없는 단계가 되면 그걸 ‘마약류’로 바꾼다. 현재 마약으로 분류된 약물 상당수는 과거에는 ‘약’이었다는 이야기다. 

마약이 왜 나쁘냐. 일단 마약에 중독되면 투약자 스스로의 인간 존엄이 파괴된다. 사회적으로 보면 한 인간이, 우리 국민 한 사람이 파괴되는 것이다. 한 사람이 파괴되면 그 사람의 가정에도 해를 끼친다. 한 가정이 파괴되면 더 나아가 사회까지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존엄적인 면에서 우려하게 된다.

두 번째는 마약의 부작용이다. 중독으로 우울증과 무기력증은 물론 환각과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이 생기기도 한다. 마약 중독자들이 교통사고, 살인 등의 범죄를 무의식적인 환각 속에서 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부산에서 대마 중독자가 환각 상태에서 7중 추돌 사고를 냈다. 교통사고로 사람이 다치거나 사망하면 또 다른 가정이 파괴된다. 마약은 자기 자신에게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가정에서부터 전 인류에 해악을 끼치는 범죄라고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사회적 비용이다. 현재 마약 사범 상당수가 20~30대 젊은 사람들인데, 이들이 건전한 사고로 사회에 기여해야 할 나이에 마약에 중독돼서 의욕을 잃었다. 심각하다. 의욕이 없으면 노동력도 없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마약 범죄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상승시킨다. 보이는 비용이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비용도 말이다.

지난 6일 경기 수원 아주대학교 이범진 교수 연구실에 마약 관련 서적이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 6일 경기 수원 아주대학교 이범진 교수 연구실에 마약 관련 서적이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 유독 ‘대마’와 ‘프로포폴’은 의견이 갈린다. 다른 마약류와 다르게 이를 접한 사범들에게는 옹호나 동정 여론도 있다. 둘 다 통제가 많이 필요한가. 전문가의 견해를 듣고 싶다.

대마에는 530여 종 이상의 다양한 성분이 있다. 그중 THC라는 성분이 환각 작용을 일으켜서 사회적 문제로 비화한다. 대부분 시장에서 언급하는 CBD라는 성분은 의학적 활용이 가능하다. 근데 우리나라는 대마의 다양한 성분 함량에 대한 법적 기준도, 연구도 부족하다. 현재는 부위로 정의한다. ‘잎은 불법, 가지는 합법’ 이런 식이다. 하지만 식물 속성상 성분은 다 섞여 있다. 법이 명확하게 바뀌기 전까지는 대마가 별문제 없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프로포폴이나 펜타닐 패치와 같은 향정신성 의약품은 과잉 처방에 의해 중독 사례가 생길 수 있다. 중독성 때문에 이걸 처방받아 제2, 제3의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확장성을 갖고 있다. 꼭 프로포폴은 아니더라도 향정신성 계열 마약류 사범이 전체의 70%가 된다. 가장 많기 때문에 통제를 잘해야 한다. 치료용 목적 외에는 환각 작용을 일으키거나 중독이 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 수사 기관의 마약 사범 검거가 더디다며 질타하는 여론도 많다. 검거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저는 검거 작업에 동원되지는 않았지만, 검찰청이나 경찰청에 자문을 한다. 사실 검경에서 소수인 마약과가 1년에 1만 8천여 명을 검거한다는 거 자체가 엄청난 일이다.  검찰은 대체적으로 국제적인 관계 유통망 검거를 많이 했다. 마약 문제는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으로 얽히고설켜 있다. 마약 사용자들은 경찰청에서 검거를 많이 하는데, 검거하려면 인력과 예산이 있어야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단속에 많이 치우쳐 있다. 단속으로 마약의 유입이나 공급을 1차적으로 차단한다. 하지만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범률이 매우 높은 편이다. 그래서 예방과 치료, 재활의 중요성을 이야기해야 한다. 마약은 난치병이 아니라 얼마든지 재활이 가능하다고 본다.

- 마약을 근절하기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나.

첫째는 마약을 유통 및 판매 사범들을 철저하게 단속해 형량을 세게 해야 한다. 들어오는 마약을 먼저 차단해야 하지, 열어놓고 뒤처리할 수는 없다. 다만 꼬임에 빠지거나 불법 집단으로부터 비자의적으로 노출된 마약 사범들은 치료를 해야 한다. UN이 권장한 인간중심의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 치료를 통해 사회 복귀와 연계하는 투 트랙 정책이 이어져야 한다. 이걸 분리하면 안 된다. 잡아놓고 방치하면 또 범죄를 저지른다. 

둘째는 공급 차단 국제 공조 협력 체계 강화다. 마약 범죄는 국제적인 흐름 속에서 일어난다.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국가 사이 문제다. 그래서 국제적인 네트워크와의 공조가 많이 필요하다. 국제 조직 마약 범죄 대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이제는 UN이 어느 정도 정책 기조를 만들고 컨트롤한다.

셋째는 마약류 정책 및 관리에 대한 컨트롤타워 구축이다. 마약과 관련해서는 현재 많은 정부 부처들이 흩어져 있다. 마약 성분과 관련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담당한다. 단속은 검찰과 경찰, 해경, 관세청 심지어 국정원까지 얽혔다. 오랫동안 정부 관계자들을 만났는데, 부처 간의 협조가 미약하다고 느꼈다. 마약 문제만 통합해 다룰 하나의 컨트롤 조직이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마약 관련 예산 증가다. 우리나라는 GDP에 비해 마약류 예산 투입이 매우 열악하다. 단속 예산만 조금 주고 마는 것이다. 인간중심의 치료나 재활은 생각해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게 열악하다. 마약 사용자들이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보면 예산을 늘리는 게 남는 거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중독자들에 대한 치료와 재활에 예산을 많이 투입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국가가 했으면 좋겠다.

-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마약류 정보에 쉽게 노출돼 마약 복용이 증가하면, 사회적 비용이 크게 늘어난다. 마약 이슈는 특정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이 피해자이자 가해자일 수 있다. 마약 사범이라고 하면 조폭이나 엄청난 범죄 집단으로 생각하는데, 평범한 우리 이웃이 범죄자가 된 거다. 따라서 예방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중독은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기 때문에 중독자 관리가 더욱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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