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집값에 ‘영끌’해 집 사는 청년들
‘빚투 전성시대’ 주식·암호화폐 투자↑
국내 가계부채 급증세…20·30대 견인
‘일·집·돈’ 20·30대 청년들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자 가장 어려운 과제다. 장기화되고 있는 경기 불황, 팬데믹 등의 외부요인은 청년들의 기회조차 박탈시키고 있다.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고 부채가 늘어나는 악순환도 계속되는 모습이다. <뉴스포스트>는 취업, 결혼, 부채 편으로 나눠 길을 잃은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뉴스포스트=선초롱 기자] 경기 불황, 코로나19 여파 등 취업난으로 인한 생계형 대출은 물론이고, 집값 상승세 등으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내 집 마련을 하는 청년층이 증가하고 있다. ‘실업자’와 ‘신용불량자’의 합성어인 ‘실신 세대’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게다가 주식·가상 자산(암호화폐) 투자가 열풍을 일으키며 ‘빚투’(빚내서 투자) 역시 늘고 있다. 특히 카드론, 대부업 등 고금리 대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가계부채의 부실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영끌의 시대’
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주택을 마련하는 20·30대 청년층이 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월별 아파트 매입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월 서울에 아파트를 매입한 이들 중 20·30대의 비중이 34%를 차지했다. 청년층의 주택 매입 비율은 꾸준히 증가했다. 지난해 △6월 36.13% △7월 36.91% △8월 40.36% △9월 41.58% △10월 43.56%로 나타났다.
올해도 20·30대의 ‘영끌’은 계속되는 모습이다. 서울에서만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아파트를 매입한 이들 중 20·3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41.41%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청년층은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강북 등 비강남권 지역을 중심으로 집을 매입했다. 실제로 중구(53.8%), 강서구(52.1%), 성동구(50.9%) 등에서는 20·30대 매수 비중이 절반 이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청년층 가계대출 급증세는 주택 가격 상승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은 월급만으로는 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결국 20·30대를 대출과 투자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서울·경기 등 수도권 아파트값 상승률은 12.97% 수준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상승률(12.51%)을 넘어섰다.
20·30대의 ‘영끌’ 매수 여파는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졌다. 한국은행이 올해 초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은행 가계대출은 988조 8,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한 해 동안 100조 5,000억 원 증가한 것으로, 한국은행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4년 이후 사상 최대 증가 규모다. 그중에서도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늘었다. 2020년 3분기 말 기준 청년층 가계대출 잔액 409조 원 중 주택담보대출(전세대출 포함) 비중이 64%인 261조 원에 달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국내 가계부채 리스크 현황과 선제적 관리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이 같은 청년층 대출은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신규로 대출을 받은 청년층 비중은 △2017년 49.5% △2018년 51.9% △2019년 56.4% △2020년 3분기 58.4%로 꾸준히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30대 이하의 부채 비율이 높은 수준을 보였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29세 이하의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은 32.5%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빚투’로 몰리는 청년들
청년층의 대출을 받는 또 다른 이유로 주식과 가상 자산 등에 빚을 내서 투자하는 ‘빚투’ 열풍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부동산 대출 규제와 집값 상승세 등으로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면서 청년들이 주식 등 투자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는 것이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대출 수요는 주택담보대출에 집중됐고, 3분기 말 이후부터는 신용대출에 속도가 붙었다. 특히 다중채무자(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 대출에서 청년층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2020년 말 기준 청년 다중채무자 대출 잔액은 전년말 대비 16.1% 증가한 130조 원 규모에 달했다. 부실 위험 등이 높은 20대의 카드론 대출 잔액이 8조 원 수준으로 전년말 대비 16.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빚을 내서 투자한 청년층이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국내 4대(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 암호화폐 거래소의 올해 1분기 신규 가입자 총 249만 5,289명 중 20·30대가 각각 81만 6,039명(32.7%), 76만 8,775명(30.8%)으로 전체의 63.5%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예치금 증가율도 20대가 154.7%, 30대는 126.7%로 크게 증가했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하반기 이전까지는 주택담보대출이 주도했지만 이후로는 신용대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라며 “청년층의 주식 및 가상 자산 투자 열풍 등을 고려하면 올해 들어 청년층의 비은행 신용대출 비중이 더욱 커졌을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청년층의 대출이 이자율이 높은 카드론과 리볼빙(사용한 카드대금 중 일정 비율만 결제하면 나머지 금액은 대출 형태로 전환돼 자동 연장되는 결제방식)에서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8개 카드사 카드론 잔액은 32조 460억 원으로, 그중에서 30세 미만의 경우 1조 1,410억 원으로 급증했다. 리볼빙 이월잔액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말 리볼빙 이월잔액은 4,580억 원으로 집계됐는데 그중에서 30세 미만 이용률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 선임연구원은 “소위 빚투, 영끌 형태로 과잉 자산 투자에 나섰던 청년층의 부채관리와 부실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라며 “청년층 대출과 관련해서는 취약 차주층과 투기적 수요층을 엄밀히 구분해 차별화된 지원책(채무조정 및 자립기반 마련) 및 투기수요 차단책(자금공급 차단 및 금융교육 강화)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