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일반 소비재 제품도 처벌 대상
유통업계, 안전 전담 조직 신설
[뉴스포스트=홍여정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 시행을 하루 앞두고 유통업계가 앞다투어 관련 조직을 정비하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 처벌이 강화되는데 최근 정부가 먹는 샘물 등 일반 소비재 제품까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오는 27일부터 50인 이상 기업에 대해 중대재해법을 적용한다. 중대재해는 크게 중대산업재해(산업재해 사망이나 부상, 직업성 질병이 발생한 사안)과 중대시민재해(특정 원료나 제조물 등 설계·제조·설치·관리 결함으로 생긴 사고)로 나뉜다.
중대재해법에 따르면 안전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 법인에는 50억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통상 사망사고 같은 중대재해는 건설·조선·제조업 등에서 많이 발생하지만 유통업계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대재해법은 생산·제조·판매·유통 과정의 원료 및 제조물에 적용되기 때문. 지난해 환경부가 발표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중 원료·제조물로 인한 ‘중대시민재해 부분에 대한 해설서’에 따르면 제품을 판매하거나 유통하는 자도 대상이 되기 때문에 수입판매업자나 판매중개업자 모두 대상이 된다. 온라인플랫폼사업자 등도 판매중개업자에 포함될 수 있다.
PB 상품을 강화하고 있는 유통업체 입장에서 해당 상품이 변질로 인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제조 및 관리에서 문제점이 발견된다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물류센터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에 유통업계는 안전사고 대비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롯데쇼핑은 백화점·마트·슈퍼· e커머스 등 각 사업부 별 안전부서를 대표 전담조직으로 승격하고, 중대재해 발생 위험 요인을 식별·예방·개선하기 위한 업무 체계와 관련 규정을 정비했다. 이를 위해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의 컨설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8년 안전 전담조직 ‘안전관리팀’을 신설했던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하반기 안전관리자 직무 인원을 신규 채용했다. 이들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등 직접 고용이 필요한 8개 점포에 배치됐다. 올 하반기까지 안전관리자를 추가로 신규 채용해 백화점 및 아울렛 전 점포에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신세계그룹도 안전체계 강화에 나서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본사 안전팀을 ‘안전보건담당’으로 격상시키면서 임원급 조직으로 만들었다. 향후 안전 전문 인력 보강과 내부 교육을 실시하고, 외부 안전 전문기관과 중대재해 발생을 예방하는 구체적 대응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마트도 최근 기존 안전관리팀과 품질관리팀을 합쳐 ‘안전품질담당’ 부서를 신설하고 임원급 조직으로 구성했다. SSG닷컴도 지난해 말 ESG 담당을 새롭게 구성하고 기존 '품질관리팀'과 '안전관리팀' 등 관련 조직을 산하에 두고 총괄하게 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기존 안전관리팀과 현장대응팀을 통합해 대표 직속 안전보건관리본부를 만들었다.
대형 물류센터를 운영 중인 쿠팡과 마켓컬리도 안전관리체계를 적극 강화하고 있다. 앞서 화재사고를 겪은 만큼 안전사고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쿠팡은 안전 관련 전문가를 영입했다. 지난해 9월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상무 출신 유인종 부사장을 영입했다. 유 부사장은 안전관리자 출신 최초의 삼성 임원으로, 현재 쿠팡 물류센터와 배송캠프 등 배송 인프라 안전 관리를 맡고 있다. 또한 안전보건감사 담당으로 박대식 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경기북부지사장을 전무로 영입했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출신인 이영상 부사장을 법무담당으로 선임했다.
특히 화재 예방을 위해 지난해 말 KT와 디지털 플랫폼 기반 소방안전 관리 시스템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전국에 있는 쿠팡 물류센터에 화재 수신기를 설치해 화재 관련 정보를 원격으로 확인 및 관리할 수 있는 통합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마켓컬리는 작년 12월 안전보건환경팀을 신설하고 안전부문 전문가를 영입해 운영하고 있다.
한편 이번 중대재해법 시행을 두고 업계에서는 규정이 모호하고 처벌은 과도하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고 발생 시 처벌을 받는 경영책임자의 범위가 모호하고, 기업의 의무 사항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