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발생 사업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
건설업계, 최고안전책임자(CSO) 신설하고 전문경영인 체제 변환
이필우 변호사 “CSO, 오너 대신 책임지는 ‘빨간 줄 임원’ 가능성”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오는 27일 본격 시행된다. 건설업계는 이른바 최고안전책임자(CSO) 직제를 신설하는 등 중대재해처벌법의 ‘시범 케이스’가 되지 않기 위한 고육책을 마련하고 있다.


사망자 1명 발생하면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


故 노회찬 정의당 전 원내대표가 지난 2017년 4월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4.16 연대 안순호 공동대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강찬호 공동대표, 민주노총 이상진 부위원장,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 강문대 위원장 등과 함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DB)
故 노회찬 정의당 전 원내대표가 지난 2017년 4월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4.16 연대 안순호 공동대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강찬호 공동대표, 민주노총 이상진 부위원장,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 강문대 위원장 등과 함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DB)

지난해 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는 △중대재해 발생 사업주에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 부과 △중대재해 발생 법인에 50억 원 이하의 벌금 부과 △50인 미만 사업장은 중대재해법 적용 3년 유예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 △중대재해 발생 사업주나 법인의 최대 손배액을 손해액의 5배로 제한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중대재해법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1년여의 계도기간 후 오는 27일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과 공중이용시설, 공중교통수단 등을 운영하면서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공무원 등을 처벌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중대재해 발생의 책임 범위를 경영책임자까지 확대해 시민과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목적이다.

△사업장에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 △급성중독 등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 등이면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규정한 중대재해에 해당한다.

안전과 보건의무를 위반해 사망자를 1명 이상 발생케 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은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때 징역형과 벌금형은 함께 부과될 수 있다. 역시 안전 의무를 위반해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거나,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하면 해당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최고안전책임자(CSO)와 전문경영인 도입하는 건설업계, 책임 회피 꼼수 지적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코앞에 두고 건설업계는 최고안전책임자(CSO) 직제를 신설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른바 ‘1호 시범 케이스’가 되지 않기 위한 고육책을 쓰는 것이다.

삼성물산은 부사장급 임원인사를 단행해 안전보건실을 신설했다. 삼성물산의 최고안전보건책임자(CSO)는 독립적인 예산산과 인사권을 행사해 사업장의 안전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지게 된다. 호반건설은 안전을 담당하는 대표이사를 신규 선임했고, 한화건설과 현대건설도 CSO 직책을 신설했다. 

중견 건설업계는 오너들의 줄사표가 이어지고 있다. 대형 건설사에 비해 규모가 작은 만큼, ‘오너 리스크’가 큰 까닭이다. 최은상 요진건설산업 부회장과 김상수 한림건설 회장 등 많은 중견 건설사 오너들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지난 2020년 5월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노동계 인사들이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020년 5월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노동계 인사들이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건설사들의 CSO 직제 신설과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에 대한 시선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기업이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직제를 신설하고 전문경영인을 선임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다. 최근 ESG 경영이 글로벌 흐름으로 자리잡으면서, 안전을 책임지는 CSO 직제가 필수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건설업계도 이에 따른 대응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반대로 기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오너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CSO 직제를 신설하거나 전문경영인을 도입했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중대재해 발생 시 오너는 책임을 면피하고 CSO에게 책임을 몰아서 지게 하기 위해 CSO에게 별도의 예산과 인사권을 부여했다는 지적이다. 

전문경영인을 ‘바지사장’으로 내세우고 책임을 몰아준다는 비판도 있다. 한 중견 건설업계 관계자는 “CSO와 전문경영인이 실제 경영책임자와 오너 대신 징역을 가는 ‘빨간 줄 임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필우 변호사 “CSO ‘빨간 줄 임원’ 가능성 있다”


건설사들의 CSO가 실제 오너 대신 책임을 몰아지는 ‘빨간 줄 임원’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이필우 신한퓨쳐스랩 변호사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과거에도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안전보건책임자가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구조였다”면서 “CSO가 별도의 예산과 인사권을 가지고 중대재해 예방의 책임을 지고 있었다면 실제 ‘빨간 줄 임원’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까지 처벌하겠다는 취지의 입법이고 법적 구조도 실제로 그렇지만, 실제 검찰이 오너나 경영책임자까지 기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수사 관행과 재판 구조상 오너나 경영책임자까지 죄를 묻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분석했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은 “정부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CSO에 더해 대표이사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하는데, 이는 법률상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판례가 나와야 정확히 알겠지만, 안전보건 총책임자인 CSO가 선임되면 대표이사가 면책되는 게 상식적인 법률해석”이라고 말했다.

김지용 건설기업노조 안전담당은 “중대재해처벌법상 대표이사는 예산편성과 이사회 보고 등 안전보건 의무를 지게 된다”며 “만약 이 의무를 등기이사로 등록된 다른 임원이 담당한다면 대표이사는 책임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CSO가 실제 ‘빨간 줄 임원’이 될 소지가 있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CSO 직제를 신설하고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는 건 긍정적으로 보인다”며 “안전은 투입하는 예산과 직결되기 때문에 실제 현장에서 많은 근로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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