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오히려 노동자 근로 환경 악화시킬 것”
- “소송 전 증거조사 제도, 기업 영업비밀 유출 가능성 크다”
- 노동계 “처벌 걱정 전에 산업재해 예방 노력해야...민주당 당론으로 추진해야”
- 소비자단체 “기업이 당연히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해 책임지라는 것”

산업재해 사망률 OECD 1위 국가, 연간 10만 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국가, 매해 2천 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국가. 대한민국 산업재해 실상을 나타내는 다양한 지표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9년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선 모두 10만 9,242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했다. 이 가운데 2,020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산업재해 사망률 수치와 지표 너머엔 스러진 삶이 있다. “다녀올게”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우리네 아버지가, 주택청약계약금 때문에 근로하던 우리네 어머니가, 등록금 마련을 위해 건설현장에 뛰어든 청년이, 산업재해 사망률이라는 단어 속에 숨어있다.

지난 6월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 대표발의한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책임자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놓고 논란이 거세다. 여기에 최근 법무부가 ‘집단소송법’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입법예고하면서 이른바 ‘기업징벌3법’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확산하고 있다. ‘기업징벌3법’이 사업주와 경영자에게 과잉 책임을 지운다면서다.

뉴스포스트는 일곱 차례에 걸친 기획 기사를 통해 ‘기업징벌3법’을 둘러싼 기대와 우려를 살펴본다. 1부와 2부에선 ‘기업징벌3법’ 논란과 이에 대한 노동계와 재계의 목소리를 전한다.

3부에선 중대재해법을 대표발의한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에게 ‘기업징벌3법’의 의의와 도입 취지를 듣는다. 4부에선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와 함께 ‘기업징벌3법’이 가져올 경제적, 행정적 효과를 살펴본다.

5부에선 이필우 법무법인 강남 변호사를 만나 ‘기업징법3법’에서 논란이 되는 과잉처벌 등의 법적 문제를 짚어본다. 6부에선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을 통해 중대재해법 도입에 대한 재계의 입장을 살펴보고, 7부에선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에게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집단소송법과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중소기업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도입의 실효성을 따져본다. -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노동자를 살리겠다는 의도보다는 기업을 죽이겠다는 의도가 큽니다. 기업에서 반대 입장을 밝혀도 국회나 법무부에서 밀어붙이면 도리가 없죠. 법이 악용될 여지가 있는지 제대로 확인이나 했는지 의문입니다.” - A그룹 관계자

“그동안 기업은 원청과 하청, 계약직과 비정규직 등 수많은 고용 구조를 만들어오면서 산업재해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처벌 걱정을 하기 전에 산업재해를 예방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냥 처벌이 과하다고 징징대고 있는 거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 이현정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지난 2018년 12월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발전 노동자들이 고 김용균 씨의 사진을 들고 사망 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고인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현재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 2018년 12월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발전 노동자들이 고 김용균 씨의 사진을 들고 사망 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고인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현재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책임자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과 집단소송법 제정안, 징벌적 손해배상제(상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이른바 ‘기업징벌3법’ 도입을 놓고 재계와 노동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재계는 “기업징벌3법이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노동계는 “노동자를 살리는 중대재해법을 속히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뉴스포스트가 기업징벌3법 도입에 대한 재계와 노동계, 소비자단체의 입장을 들어봤다.
 


기업징벌3법 도입에 바싹 엎드린 재계...“공식 입장 밝히긴 어렵지만...경영 활동 위협”


재계는 기업징벌3법 도입을 앞두고 바싹 엎드린 상태다. 국회와 정부에서 드라이브를 거는 정책 사안에 대해 개별 그룹이나 기업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는 게 부담스러운 모양새다. 국내 굴지의 한 그룹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에 “정부 정책에 대해 논하는 게 상당히 부담스럽다”면서 “우리 그룹사 입장은 제외해달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들은 익명을 전제로 기업징벌3법에 대한 우려를 전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이 24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경총 '노사관계발전자문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경총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집단소송법,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사진=뉴시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이 24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경총 '노사관계발전자문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경총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집단소송법,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사진=뉴시스)

한 그룹사 관계자는 “기업징벌3법이 노동자를 살리겠다는 것보다는 기업을 죽이겠다는 의도가 더 커보인다”면서 “기업이 반대해도 국회나 정부가 밀어붙이면 사실상 시행될 텐데 우려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집단소송법에 도입되는 소송 전 증거조사 제도로 기업 영업비밀이 외부로 유출되는 등 악용될 가능성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확인이나 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부가 지난 9월 입법예고한 집단소송법 제정안에는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를 벤치마킹한 소송 전 증거조사 제도가 포함됐다. 기업의 과실로 피해를 본 피해자가 소송 제기 전이라도 피해를 초래한 기업에 해당 사건이나 사고에 대한 증거 조사를 할 수 있게 하는 절차다. 기업들은 이 제도로 기업의 영업비밀이 유출될 것이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조선업 관계자는 “소송 전 증거조사 제도로 영업비밀이 유출될 우려가 크다”면서 “우리나라 조선업 기술력이 글로벌 1위인 상황에서 이 제도 때문에 중국 등 해외로 기술력이 유출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어 “기업징벌3법으로 기업은 재정적 부담도 가중될 것”이라며 “기업도 산재에 대비해 충당금을 쌓는데, 기업징벌3법이 도입되면 충당금이 규모 책정이 어려울 정도로 불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자의 생명권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하는 기업징법3법이 오히려 노동자의 근로 여건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중공업 관계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 예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강제 전환하겠다는 정책 드라이브가 떠오른다”면서 “당시 정규직 전환 이전에 비정규직 종사자들 일자리가 아예 사라져 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근로자의 근로 환경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영인이 중대재해법으로 징역을 살기라도 하면 기업 이미지와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텐데, 결국 이는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집단소송법 도입으로 과도한 소송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통신사 관계자는 “통상 통신사는 전화 연결이 6시간 정도 안 되면 해당 요금의 6배를 소비자에게 보상하는데, 집단소송법이 도입되면 한 명이 소송해도 수만 명 이상이 ‘옵트 아웃’ 하지 않는 이상 보상받게 된다”면서 “수만 건을 일일이 검토할 수 없는 기업 입장에선 소송에 따른 경영 부담이 천문학적으로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을 하면서 해외 법원에서 소송하기도 하고, 기업인수합병을 하기도 하는데, 소송 전 증거조사 제도로 계약금액 등 기업 경영상 여러 영업비밀이 누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노동계 “기업징벌3법 도입 적극 찬성...중간관리자 아닌 대표이사에 책임 물어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건설노조, 건설기업노조,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 노동계와 소비자단체는 기업징벌3법 도입 취지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그동안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하청 뒤에 숨었던 재계가 이제부터라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현정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기업들은 처벌이 과하다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경총에 소속된 대기업이나 개별기업들이 산재에 대해 응당한 처벌을 받은 사례가 없다”면서 “2008년 40명의 건설노동자가 사망한 코리아2000 냉동창고 화재 참사 때 코리아2000은 벌금으로 2,000만 원을 내고 면죄부를 받았고, 이는 2017년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 사고로 6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참사도 마찬가지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업이나 경영 책임자에게 경영책임에 대해 포괄적 의무를 부여해 산재를 예방한다는 취지인데, 기업이 처벌받기 전에 예방하면 되지 처벌이 과하다고 징징대고 있다”며 “더불어민주당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당론으로 채택해 올해 정기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수처법은 처리하면서 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처리하지 않느냐”면서 “더불어민주당이 기업의 로비보다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을 먼저 생각한다면, 망설일 이유는 없다”고 지적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달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달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재희 건설노조 교선실장은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안전관리감독관 추가 채용 등 방안을 가지고 나왔지만 백약이 무용한 상황이었다”면서 “이는 산업재해의 근본적인 원인이 안전 장치와 제도가 부족한 상황에서 하루하루 급히 처리해야 할 물량이 산더미처럼 쌓인 데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산업안전보건법 등은 대표이사의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에 안전을 무시한 이윤 추구 중심의 건설현장이 많다”면서 “수십 명이 죽어도 수천만 원 정도 벌금 내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OECD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를 산재 1위로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대표이사 처벌 등 징계를 무겁게 해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현장을 만드는 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도입 취지”라면서 “재계가 노동자 생존권보다는 기업 징벌에 초점을 맞췄다고 주장하는데, 징벌이 아니라 책임의 주체를 명확하게 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산업 현장의 중간관리자보다 대표이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중대재해법 도입 취지에 공감한다는 입장도 있었다.

김지용 건설기업노조 부장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집단소송법,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도입 취지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면서 “특히 월급쟁이에 불과한 안전관리감독 중간관리자가 아니라 대표이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법률안 내용에 공감한다”고 했다. 

이어 “지금의 안전관리감독 중간관리자들은 권한은 거의 없는데 책임만 큰 월급쟁이”라면서 “중대재해법 도입으로 대표이사나 경영인이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기업 경영 구조 속으로 더 숨어들 것이라는 우려는 너무 비겁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집단소송법과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소비자의 권익을 높일 것이라는 전망에 소비자단체도 기대를 나타냈다.

임은경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사무총장은 “집단소송법은 과중한 부담을 주는 게 아니라 기업이 당연히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해 책임지라고 하는 것”이라며 “SK케미칼과 옥시 등 가습기살균제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송 전 증거제시 제도 때문에 영업비밀이 외부로 유출될 것이라는 우려는 지나친 것”이라며 “이미 우리나라는 지난 2005년부터 증권 분야에 한정해 집단소송법을 시행하고 있는데, 기업 영업비밀 관련 사안은 변호인 등 필수 인원만 열람할 수 있게 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잘 마련돼 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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