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배달 라이더 뛰죠”...‘주52시간제’가 삶의 질 떨어뜨려
대출이자·자녀 학원비 등 고정비 채우려 ‘투잡’ 뛰는 근로자들
청년층 지원 기피하는 ‘뿌리산업’에는 신규 고용 인력풀 부족
“쥐어짜도 안 나와”...코로나19로 외국인 근로자 고용도 한계

주 52시간 근무제가 오는 7월 1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시행됨으로써, 본격적인 ‘주52시간제’ 시대가 도래할 예정이다. ‘주52시간제’는 도입 초기부터 제조업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는 우려와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가 양립했다. 뉴스포스트는 기획 기사를 통해 ‘주52시간제’ 논란을 짚어본다. -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뉴스포스트는 18일 ‘주52시간제’에 대한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영세사업장 종사자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이들은 익명을 전제로 전화 인터뷰에 응했다. 영세사업장 종사자들은 “정부는 제도 도입 초기부터 우리 입장을 전혀 참고하지 않았다”면서 “괜히 미운털 박히기 싫다”고 익명 인터뷰의 이유를 설명했다.

 18일 서울 한 마트에서 직원이 매장을 살피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18일 서울 한 마트에서 직원이 매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마트와 식음료 등 서비스업 종사자들 “‘투잡’으로 주말도 없다”


마트 근로자인 A씨는 뉴스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정말로 화가 난다”고 토로했다. 노동 가치를 제고하고 ‘워라밸’을 실현하자는 취지의 ‘주52시간제’가 오히려 자신과 가족의 삶을 힘겹게 만들었다고 지적하면서다.

최근 A씨는 주말에 배달대행업체에서 ‘배달 라이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가 일하는 마트가 ‘주52시간제’ 도입에 앞서 선제적으로 모든 근로자의 근무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A씨는 주 68시간을 근무하며 받은 급여로 은행 대출이자와 자녀 교육비 등 고정비를 지출해왔다.

당장 구멍 난 생활비를 메꾸기 위해 주말 ‘투잡’은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A씨는 “영세사업장까지 주 52시간만 근무하라는 건 정말 현실을 하나도 모르는 것”이라면서 “저녁 있는 삶이요? 이젠 주말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식음료 서비스업 근로자들도 ‘주52시간제’가 달갑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식음료업 종사자 B씨는 “주방이나 서빙 등 업무를 하는 상시근로자들은 50대와 60대가 가장 많고, 70대인 분들도 종종 있다”면서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은 하청이라도 준다지만, 우리 같은 영세사업장은 아무런 대책을 세울 수가 없는데 정부는 쥐어짜면 나오는 줄 안다”고 했다.

이어 “‘주52시간제’가 도입되면 대리기사나 배달 아르바이트를 추가로 알아볼 것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면서 “식음료뿐만 아니라 서비스업이라면, 줄어든 생활비를 채우기 위해 익숙하지 않은 다른 일로 ‘투잡’을 알아보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형과 주조 등 ‘뿌리산업’ 종사자들 “주52시간제 준수할 ‘인력풀’ 없어”


대표적인 ‘뿌리산업’인 금형과 주조, 용접 등 영세사업장 종사자들은 “영세사업장에 ‘주52시간제’를 확대 도입한다는 건, 현장을 하나도 모르고 도깨비방망이 휘두르듯 만든 탁상행정의 전형”이라고 분개했다.

금형 분야 종사자 C씨는 “행정이라는 게 국민에게 세금을 받아서 하는 대국민 서비스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런데 정부는 서비스받는 당사자가 문제가 있다고 해도 듣지를 않는다”고 했다. 이어 “정부는 ‘탄력근로제’니 ‘특별연장근로’니 말하지만, 거기 대응할 인력이 없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용접 분야 종사자 D씨도 “요즘 일자리가 없다고 하지만, 용접은 항상 일자리는 풍년인데 일할 사람이 부족한 구조”라면서 “청년 용접공 수혈이 끊긴 지 오래라, ‘주52시간제’에 대응할 현실적인 방안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영세사업장이 ‘주52시간제’를 준수할 수 있다는 정부 발표는 대체 어디서, 어떻게 조사한 건지 잘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지난 16일 고용노동부가 영세사업장(1,300곳 표본)의 93%가 ‘주52시간제’를 준수할 수 있다고 발표했지만, 표본의 대표성을 확인할 길이 없다는 지적이다.

주조 분야 종사자인 E씨도 ‘인력풀’의 한계 때문에 ‘주52시간제’ 도입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진단했다. E씨는 “주조 사업장은 평균 연령대가 60대 중후반”이라면서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은 신규 고용을 할 수 있는 인력풀이 항상 있지만, 청년들이 꺼리는 주조 분야는 신규 채용 여력이 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이어 “2교대로 작업하던 걸 신규 인력을 고용해서 3교대나 4교대로 할 수 있다면 정부가 말하는 ‘워라밸’이라도 실현되겠지만, 신규 채용할 인력이 아예 없는 마당에 어떻게 일을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표면처리 분야 종사자인 F씨는 “현재도 내국인 근로자들은 평균 연령이 높아 주 52시간 이상 일할 체력이 안 된다”면서 “이들의 빈자리를 상대적으로 젊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채우고 있는데 코로나19로 외국인 인력 수급도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더 큰 문제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주52시간제’가 도입되면 돈을 더 벌기 위해 퇴사하는 사례가 빈번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돈을 벌 목적으로 타지에 온 외국인 근로자들이 ‘주52시간제’를 준수하는 영세사업장 문을 나설 것이라는 설명이다. F씨는 “합법 사업장을 나간 외국인 근로자들은 불법 연장근로를 통해 추가 수당을 지급하는 영세사업장으로 갈 것”이라면서 “현장에선 근로시간을 준수하지 않고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추가수당을 지급하는 사업장이 꽤 있다”고 귀띔했다.
 


중소기업계 “코로나19 극복 전까지 계도기간 줘야”


왼쪽부터 반원익 중기연합회 부회장, 우태희 대한상의 부회장,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 서승원 중기중앙회 부회장, 이관섭 무역협회 부회장. (사진=중소기업중앙회 제공)
왼쪽부터 반원익 중기연합회 부회장, 우태희 대한상의 부회장,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 서승원 중기중앙회 부회장, 이관섭 무역협회 부회장. (사진=중소기업중앙회 제공)

중소기업중앙회와 소상공인연합회,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등 중소기업계는 지난 16일 “코로나19 극복 전까지 영세사업장에 계도기간을 줘야 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날 정부는 5인~49인 영세사업장에 계도기간 없이 ‘주52시간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중소기업계는 입장문을 통해 “50인 미만 중소기업에 대한 ‘주52시간제’ 시행에 계도기간 없이 올해 7월부터 시행하기로 발표한 정부에 대해 우리 중소기업계는 강한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면서 “코로나19로 작년부터 외국인 근로자마저 입국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당장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영세사업장은 인력난으로 사람을 뽑지 못해 사업의 운영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기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내국인 기피업종인 뿌리·조선산업은 50인 미만 기업의 44%가 아직 ‘주52시간제’ 도입 준비가 안 됐고, 27.5%는 7월 이후에도 준수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정부에 50인 미만의 영세사업장에 1년 이상 계도기간을 부여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뉴스포스트는 ‘주52시간제’ 4부 지면에서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노동시장 환경을 고려한 ‘주52시간제’ 연착륙 방안을 짚어본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