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 “가정·사회의 수직 관계, 수평적으로 변해야”
“예방 교육 무의미해…‘괴롭힘’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필요”
“처벌 규정 등 강력한 대책 필요…CEO 책임도 강화해야”

[뉴스포스트=홍여정 기자]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여러 가지 갈등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같은 팀 동료나 다른 부서 직원, 상사나 부하 직원과의 갈등은 한 번쯤은 겪게 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갈등은 서로 간의 대화를 통해 해결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일 경우 퇴사 사유가 되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들은 이 같은 갈등을 경험한 적이 있을까. 그들이 바라는 직장 문화는 어떤 모습일까. 이에 대한 생각을 듣기 위해 지난 16일 <뉴스포스트>는 30~5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좌담회를 진행했다. 이날 좌담회에 참석한 직장인은 직장 경력 30년 차 이상 임형석 씨(55세·가명), 22년 차 장영준 씨(43세·가명), 8년 차 양성민 씨(36세·가명), 4년 차 유나리 씨(32세·가명) 등 총 4명이다.

이들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기준이 애매하다고 평가하며 더 구체적인 사례들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위계에 의한 부당한 지시가 대부분인 만큼 조직 내 ‘직급’ 보다 ‘역할’을 강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6일 뉴스포스트 본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좌담회를 진행했다. 이날 3050 직장인 4명이 모여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지난 16일 뉴스포스트 본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좌담회를 진행했다. 이날 3050 직장인 4명이 모여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직장 내 괴롭힘 기준, 사회적 합의 필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정의에 대해 의견을 묻자 4명의 패널은 모두 “직장 내 권력을 이용한, 위계에 의한 부당한 업무 지시”를 꼽았다. 그러면서 이 한 문장으로 정의 내리기엔 사례가 다양해, 판단하는 기준이 애매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IT 직군에 있는 장 씨는 최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개발자인 장 씨에게 회사에서 디자인 업무 지시가 내려온 것. 장 씨는 “그분들은 비정상적인 업무 지시라는 것을 알면서도 인정을 안 한다”라며 “인정을 하는 순간 본인 잘못이라는 것을 인정해 버리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연차도 있고 직급도 있다 보니 이런 갑질이 심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임 씨는 “위계에 의한 부당한 업무 지시가 대부분이다”라며 “그러나 업무분장표에 나온 업무만 할 수 없고, 회사 상황에 따라 해야만 하는 일도 생긴다. 이런 특별한 케이스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양 씨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정된 사례들을 보면 애매하다. 나는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데 그 사례 수준까지는 아닌 것 같아 고민이 되는 지점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유 씨도 “우리나라는 같이 밥 안 먹으면 ‘왜 나랑 안 먹는지’ 물어보는데 굉장히 개인적인 사람의 경우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수도 있다”라며 “이 사람이 느끼기에는 이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례에 대해서 우리가 어디까지 이해를 해야 하고, 개개인을 존중해 줘야 하는지도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좌담회 중 ‘직장 내 괴롭힘’ OX 퀴즈를 풀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10가지의 사례를 보고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아닌지 선택해보기로 한 것. 자료는 고용노동부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을 참고했다. 이들은 회사 내에서 발생하는 상황들이 많고, 그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 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장 씨는 “사례를 읽고, 설명을 들으니 기준이 애매한 것 같다. 나름 챙겨준다고 신경 써주려고 해도, 당사자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으니 그런 부분들이 좀 정리돼야 할 것 같다”라고 했다. 양 씨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인식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사실 ‘이 말을 해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면 안 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다”라며 “직급 상 위에 있는 사람이 조심스럽다고 느끼는 불편감보다 부하 직원이 느끼는 불편함이 더 클 것이기 때문에 그걸 감내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임형석 씨(55세‧가명)는 직장 내 괴롭힘 근절을 위해서는 직장 내 직급을 강조하기 보다 역할을 강조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사진=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임형석 씨(55세‧가명)는 직장 내 괴롭힘 근절을 위해서는 직장 내 직급을 강조하기 보다 역할을 강조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사진=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형식적인 예방 대책...“신고할 용기 없다”

유 씨는 “회사 차원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굉장히 형식적이다”라며 “저희 회사도 교육을 하고 있는데 와서 보면 보험회사나 상조회사가 와서 짧게 강의하고 보험을 판다. 예방 교육이라곤 하지만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교육은 아닌 것 같다”라고 했다.

CEO가 괴롭힘 가해자인 상황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임 씨는 “대표가 했다면 거의 다 은폐·조작 된다”라며 “외부 기관에 직장 내 괴롭힘 전문 기관을 두고 신고 후에는 피해자의 안전을 철저히 보장해 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장 씨는 “괴롭힘, 갑질은 대부분 어느 정도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한다고 본다”라며 “말단 직원들 동영상 시청을 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입식 교육을 해서라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신고 후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의 우려도 깊이 공감했다. 이들을 위한 제대로 된 보호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 씨는 “회사 자체 조사가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다”라며 “대부분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상급자이고, 그들의 인맥이 연결돼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공신력 있는 외부 기관에서 조사를 담당하고, 차후에 피해자에 대한 관리가 몇 년간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 근절, 장기적·실질적 관점 필요

패널들은 직장 내 괴롭힘이 단기적으로 바뀔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의견을 내놨다. 개인의 인식 개선과 지금보다 더 촘촘한 법적인 장치와 제대로 된 교육이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 씨는 “이 좌담회를 참여하면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라며 “단순히 비디오 시청보다 서로의 입장을 생각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보는 이런 시간이 포함된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 한다”라고 말했다.

4인의 패널들은 '직장 내 괴롭힘'이 단기간 해결될 수는 없지만 개개인의 인식 변화 및 체계적인 교육과, 법적인 제도가 마련된다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사진=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4인의 패널들은 '직장 내 괴롭힘'이 단기간 해결될 수는 없지만 개개인의 인식 변화 및 체계적인 교육과, 법적인 제도가 마련된다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사진=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임 씨는 “우리나라가 제도가 없어서 이런 부분을 안 지키는 것이 아니다”라며 “가족 내에서의 복종과 어린 사람에 대한 지시 등 그동안에 길들여진 문화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직급이 아닌 역할이 다른 것이라는 것을 조직적으로 합의를 하고, 평등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양 씨는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큰 이슈가 터지면 언론에서 조명하고, 그럴수록 이 부분에 대한 토론과 논쟁이 이어진다”라며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존재하지만 좀 더 합의가 이뤄져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처벌과 관련해서 사례가 확실히 있어야 사람들이 좀 더 조심하게 될 것 같다”라는 의견을 내놨다.

장 씨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경영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제도처럼 지키지 않을 시 처벌 규정을 만들어야 경영진들이 더 책임을 지고 이에 대해 교육하고, 관리할 것이라는 것. 그는 “물리적인 처벌이 있어야 회사 내부적으로도 그 부분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더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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