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신고한 뒤 부당대우 받는 경우 많아…신고율 저조
사적인 공간·사내 메신저·SNS 등에서 발생하는 부분도 직장 내 괴롭힘
대다수의 직장인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 회사. 그곳에서는 폭언, 성희롱, 따돌림, 갑질 등 고의적인 괴롭힘이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자주’ 발생한다. 직장 내 위계 서열이 강한 탓에 괴롭힘을 괴롭힘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최악의 경우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사안이지만, 그에 대한 심각성은 아직도 깊게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에 <뉴스포스트>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 여러 사례를 살펴보고 해결 방법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직장 내 괴롭힘’ 여전해
[뉴스포스트=선초롱 기자] 최근 IT업계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IT 공룡 기업으로 불리는 네이버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추정되는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직원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네이버 사원 A 씨는 지난달 25일 성남 분당구의 자택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A 씨가 평소 업무상 스트레스와 위계에 의한 괴롭힘 등을 받아왔다는 내용이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A 씨 이전에도 유사한 비극은 있었다. 지난 2월에는 결혼을 앞둔 해경 소속 경찰관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1월에는 여의도의 한 대형쇼핑몰에서 30대 남성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 같은 안타까운 결말은 우리 사회에 ‘직장 내 괴롭힘’이 여전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실제로 직장갑질119가 지난 3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2.5%가 지난 1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35.4%가 자신이 겪은 갑질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후 회사 및 관계기관에 이를 신고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8%에 그쳤다. 그나마 신고한 이들 중 71.4%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신고한 뒤 근무 조건의 악화나 따돌림,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겪었다는 이들도 67.9%로 집계됐다. 결국 보복 갑질이 우려돼 섣불리 신고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어떤 경우가 직장 내 괴롭힘일까?
그렇다면 어떤 상황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까. 우선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말하는데, 외근·출장지 등 업무 수행 과정 등의 장소나 회식·기업 행사 등의 장소는 물론 사적인 공간, 사내 메신저·SNS 등 온라인상에서 발생한 경우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된다.
몇 가지 실제 사례를 살펴보자. 사례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에 수록된 내용을 발췌했다.
#1. 육아휴직 후 복직한 B 씨는 전에 담당하던 업무(창구 수신업무)가 아닌 안내 등 보조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또한 B 씨를 제외한 직원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B 씨를 따돌릴 것을 지시하는 취지의 내용이 전달되기도 했다. 이후 B 씨의 책상은 없어졌고, 더 이상 창구에 앉지 못했다. 우울증을 앓던 B 씨는 결국 퇴사를 했다.
#2. C 씨는 직장 선배로부터 술자리를 마련하지 않으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 “술자리를 만들어라”, “아직도 날짜를 못 잡았느냐”, “사유서를 써와라”, “성과급의 30%는 선배를 접대하는 것이다” 등 반복적으로 술자리를 갖자는 발언을 했고, 이에 응하지 않자 C 씨에게 시말서, 사유서를 쓰게 했다.
#3. D 씨는 회식 자리에서 직장 상사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일을 겪었다. 상사가 소주병을 거꾸로 쥐고 D 씨를 위협하고, 고객이 보는 자리에서 D 씨의 목을 짓누르는 등의 신체적 폭력을 가하기도 했다. 또한 직장동료가 모인 자리에서 상사는 D 씨에게 종이를 던지며 모욕을 주는 행위를 했고, 차렷 자세로 인사를 반복적으로 시키는 등 지속적인 괴롭힘을 가했다.
이같이 많은 직장인이 직장 내 괴롭힘을 소호하고 있지만 신고까지 이어지기 어려웠던 것은, 2019년 7월 도입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보다는 사업주에게 부담을 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탓이다. 또한 괴롭힘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이 부실하고, 유형별 명시 범위도 좁은것은 물론, 사용자가 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제재 규정이 없어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후 지난 3월 국회는 뒤늦게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개정된 법안에는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는 경우 회사 측은 이를 즉시 조사해야 하고, 피해 직원의 희망에 따라 근무 장소를 변경하거나 유급휴가를 주는 등의 조처를 해야 하며, 해당 사실을 누설하지 않도록 하는 비밀유지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회사 측이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하거나 피해를 주장한 피해자에게 해고 등의 불이익 처우를 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법적인 조치가 마련되고 보완되고는 있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수직적이고 위계 서열이 강한 회사 분위기는 모두의 노력 없이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생활’이라는 단어로 치부돼버리는 여러 부당한 상황에 대해서도 당연한 것이 아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뉴스포스트>는 후속 보도를 통해 △직장 내 괴롭힘 신고 방법 △직장 내 괴롭힘과 의견 차이(세대 차이)의 경계에 대한 토론 △현실적인 해결방법 등을 짚어본다.
참고자료
고용노동부,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 2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