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로 저격해도 괴롭힘...대표이사 등 갑질 방지는 미비”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지난해 무역 관련 회사에 다니던 A 씨(30‧여)는 사장의 지속적인 괴롭힘에 직장을 옮겼다. 사장은 자신의 SNS에 A 씨에 관한 험담을 써 놓거나 휴가를 다녀온 A 씨를 갑자기 타 부서로 이동시키는 등 괴롭혔다. A씨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퇴사했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그때 당한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털어놨다.

16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작됐다. 이날부터 지위나 관계적 우위를 이용해 업무 상 적정범위를 넘어서 노동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는 모든 행위가 금지된다. (사진=김혜선 기자)
16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작됐다. 이날부터 지위나 관계적 우위를 이용해 업무 상 적정범위를 넘어서 노동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는 모든 행위가 금지된다. (사진=김혜선 기자)

A 씨 외에도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은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 엘리베이터 회사에서 일하는 B 씨는 자신의 업무와는 관계없이 회사 임원의 ‘운전기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직장 내 괴롭힘 근절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는 이같이 업무 외 잡일을 시키는 것도 괴롭힘의 일종을 보고 있다.

또 다른 직장인 C 씨는 거래처 담당자가 성적인 내용이 담긴 문자를 보내고 바지를 입고 회의에 참석하면 옷 가게에 가서 치마를 사서 입혔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례는 같은 회사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없지만, 성희롱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오늘(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법이 시행된다. 직장갑질 119 법률 스텝으로 활동하는 신하나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본지에 “SNS에 저격 글을 올리는 것도 직장 내 괴롭힘의 일종”이라며 “직장 내 괴롭힘은 지위나 관계적 우위를 이용해 업무 상 적정 범위를 넘어서 노동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신 변호사는 “저격 글이라고 하는 것은 노동자를 고통에 처하게 만드는 행위이기 때문에 충분히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정도가 심해서 사회적 명예를 훼손할 정도가 되면 명예훼손도 충분히 성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에 따라 누구든지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면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다. 괴롭힌 가해자는 직접적인 처벌을 받지는 않지만, 사용자가 괴롭힘에 대한 적절한 의무사항을 이행하지 않으면 법적인 처벌을 받게 된다.

만약 사용자가 괴롭힘 신고를 받게 되면,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 한 근무장소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피해자를 보호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하거나 피해를 주장한다는 이유로 해고 등 불이익한 처우를 하면 안 된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또 10인 이상 근무 사업장은 사내에 직장 내 괴롭힘 행위,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재발방지 조치 등의 내용을 취업규칙에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대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소기업에서는 ‘사용자’인 사장이나 대표 이사의 괴롭힘 빈도가 높다는 게 직장갑질 119의 설명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할 경우 자신을 괴롭힌 당사자에게 신고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이에 오진호 직장갑질 119 총괄스탭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사장이나 대표이사 등 사용자의 갑질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족한 부분 있다”며 “노동부에서 적극적인 근로 감독, 시정지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최근에는 사용자의 갑질 사례를 모아 노동부에 익명 근로 감독 청원이나 진정을 내려고 준비 중이다”고 밝혔다.

직장 내 갑질 근절을 위한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는 16일 광화문 사거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을 알렸다. 가운데는 오진호 직장갑질 119 총괄스탭. 왼쪽은 직장갑질 119 법률스탭인 신하나 법므법인 덕수 변호사. (사진=김혜선 기자)
직장 내 갑질 근절을 위한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는 16일 광화문 사거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을 알렸다. 가운데는 오진호 직장갑질 119 총괄스탭. 왼쪽은 직장갑질 119 법률스탭인 신하나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사진=김혜선 기자)

이날 직장갑질 119는 서울 광화문 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오 총괄스탭은 “(가해자) 처벌규정에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큰 발자국을 떼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활동한 결과가 좋은 법 제정의 성과로 이어질 수 있게 돼서 굉장히 기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미 직장 내 갑질이 사회문제,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상황이다. 기업들도 묵과하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라며 “수평적 직장문화는 기업에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속한 취업 규칙 개정과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혜인 직장갑질 119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을) 상담하면서 가장 화가 나는 질문은 본인이 당한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기분 나빠도 되느냐’고 묻는 것이었다”며 “자신이 불편함을 느낀다면 이를 표현해야 하는데 한국 특유의 집단주의적, 성과 중심적 환경이 이조차 허용하지 많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애매한 불편함’에서 노동자를 보호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조은혜 노무사(들꽃 노동법률사무소)는 “그동안 ‘사회생활은 다 이런 거지’라고 참고 견뎠던 직장 내 괴롭힘이 금지됐다. 많은 사람들이 참고 견디지 말고 신고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겠다”고 했다. 김두나 변호사(희망을 만드는 법)는 “어렵지만 힘들게 괴롭힘 경험을 이야기해준 노동자와 직장갑질 119의 노력이 성과가 났다고 생각한다. 한계가 있고 부족한 부분 많지만, 이 법이 잘 작동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16일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는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을 알리며 손부채 등을 나눠줬다. (사진=김혜선 기자)
16일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는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을 알리며 손부채 등을 나눠줬다. (사진=김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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