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부채 원가 아닌 '시가 평가' 핵심
유상증자·후순위채 발행 및 부동산 매각 줄이어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보험사들이 반년 앞으로 다가온 새 보험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킥스) 도입에 대비하기 위해 신종자본증권 발행, 보유 부동산 매각 등 자본 확충에 힘쓰고 있다. 상품 설계부터 사후관리, 자본건전성 평가 등 모든 것이 달라지지만 특히 현행 지급여력(RBC) 제도보다 쌓아야 할 준비금 부담이 2~3배 늘어나면서 자본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16일 업계에 따르면 보험사들이 유상증자부터 후순위채, 신종자본증권 발행 등 공격적인 자본확충에 나서고 있다. 

보험사별로 보면 NH농협생명은 지난 3~4월 총 6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한 데 이어 8300억 원 규모의 후순위채권도 발행했다. 올 들어 조달자본 규모만 1조 4300억 원에 이른다.

흥국생명과 푸본현대생명 등도 각각 500억 원의 신종자본증권, 500억 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했다. DGB생명도 지난 3월 950억 원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한화생명은 오는 6월 말 3000~5000억 원 규모의 국내 후순위채권 발행을 추진 중에 있다. 지난 1월에는 7억 5000만 달러(약 9200억 원) 규모의 외화 후순위채를 발행한 바 있어, 올 상반기 한화생명은 최대 1조 4200억 원 규모의 자본 확충을 이루게 된다.

손해보험사의 경우 메리츠화재가 올해 최대 3000억 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고, 지난 13일 2960억 원 규모 후순위채를 발행하는 등 총 5960억 원 규모의 자본 확충을 실시할 예정이다.

한화손해보험도 지난 3월 후순위채 2500억 원 발행에 성공했다. 흥국화재도 최근 200억 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보험사들이 자본 확충에 속도를 내는 것은 2023년 도입 예정인 IFRS17·킥스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IFRS17은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제정한 새 회계기준으로, 책임준비금(보험부채)을 원가(계약시점)이 아닌 시가(현재가치)로 평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재 회계기준에서는 자산은 시가를 기준으로, 부채는 원가를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과거 고금리 확정이자로 판매된 저축성 보험 상품이 많을수록 부채 부담이 크게 증가해 이에 따른 요구자본도 늘어난다. IFRS17이 도입되면 회계에 현재 시장금리를 반영해야 하는데, 과거에 판매했던 대다수 고금리 확정형 상품으로 인해 보험사가 지불해야 할 부채 규모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RBC비율 변동 추이. (자료=금융감독원)
RBC비율 변동 추이. (자료=금융감독원)

또한 최근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면서 보험사들이 보유한 채권(매도가능증권) 가치가 하락하자 RBC비율이 급락했는데, 이를 시급히 끌어올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RBC비율이란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바로 지급할 수 있는 자산 상태를 나타낸 것으로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을 판단할 수 있는 지표다. 

올해 1분기 실적 발표 자료를 보면 KB금융지주 계열 푸르덴셜생명의 올해 1분기 말 RBC 비율은 전 분기보다 61.7%포인트 떨어진 280.7%를 기록했다. KB손해보험은 179.4%에서 162.3%로 낮아졌고 KB생명도 186.5%에서 161%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한화생명은 184.6%에서 161.0%로 23.6%포인트 감소했다. 신한라이프도 지난해 4분기 말 284.6%에서 올해 1분기 말 255.0%로 29.6%포인트 떨어졌고, 하나생명도 200.4%에서 171.1%로 29.3%포인트 하락했다.

RBC비율은 보험업법에 따라 100% 이상을 유지해야 하며, 금융당국의 권고치는 150% 이상이다. 100% 아래로 떨어지면 부실기관으로 지정된다. 보험업계가 금리 인상 직격탄을 맞으면서 RBC비율이 당국의 권고치까지 온 상황이다. 

이와 함께 보험사들은 IFRS17·킥스 도입에 대비해 사옥 매각 등 부동산 자산을 줄여나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KB손해보험은 최근 자본건전성 개선을 위해 최근 보유 건물 5곳을 매각해 5000억 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KB손해보험은 전국 거점 11개 중 서울 합정빌딩과 경기 구리 및 수원빌딩, 대구빌딩, 경북 구미빌딩 등 5개의 건물을 세일즈앤드리스백(매각 후 재임차) 조건이 포함된 매각 계약을 스타로드자산운용과 체결했다. 총 매각 대금은 5000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번 건물 매각은 2023년 시행될 K-ICS에 대비해 자본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행 지급여력(RBC)에선 부동산 위험계수를 업무용도는 6%, 투자용도는 9%를 적용해 요구자본을 산출하지만, K-ICS에선 부동산 가격 변동성과 투자 수익 불확실성이 크게 간주돼 위험계수가 25%로 올라간다. 예를 들어 100억 원의 보유자산이 있다면 기존 제도에선 6억 원 혹은 9억 원의 준비금을 쌓으면 됐지만, 킥스 도입 이후에는 25억 원의 준비금을 마련해야 하는 것.

때문에 보험사들은 킥스 도입이 예고된 이후 부동산 리스크에 대비하고자 적극적으로 건물을 매각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2016년부터 보유 부동산을 처분해 왔으며, 지금까지 총 처분액은 1조 6057억 원에 달한다.  

앞서 롯데손보와 하나손보는 지난 2021년 사옥을 각각 2000억, 1000억 원에 매각했다. 현대해상도 2020년 8월 강남 사옥을 한국토지신탁에 매각해 2000억 원의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생명은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사옥 매각을 진행하고 있으며, 신한라이프는 지난 2020년 신한L타워를 매각한 데 이어 천안 연수원도 매물로 내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매각 작업을 통해 자본 확충은 물론 준비금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새 제도 도입전까지 보험사의 부동산 자산 축소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당초 IFRS17 도입이 한차례 연기됐던 만큼 대비 기간은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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