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손잡고’ 박래군 상임대표 인터뷰
“노란봉투법,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 절실”

2022년 국회는 여야 간의 강대강 대치가 어느 때보다도 강했다. 상반기에는 이른바 ‘검수완박법’으로, 하반기에는 ‘노란봉투법’이라고 불리는 노조법 개정안으로 여야가 맞붙고 있다. 노동자들이 사측으로부터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하는 걸 막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다. 노동 3권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이라는 주장과 노조의 불법행위를 방치하는 법이라는 주장으로 찬반 입장이 갈린다. <뉴스포스트>는 올해 정기국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노란봉투법’ 논쟁의 합의점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박래군 시민단체 ‘손잡고’ 상임대표.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박래군 시민단체 ‘손잡고’ 상임대표.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 A회사 노조는 지난해 사측의 일방적 임금체계 개편과 단체협약 체결 거부에 항의하며 쟁의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사측은 ‘노조가 점심시간 1시간 동안 튼 노동가요가 집시법 상 소음기준을 초과했다’며 노조 대표 등을 대상으로 824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소송은 1심 진행 중 교섭이 타결되면서 취하됐다.

# B회사 노조는 지난 2013년 사측이 약속한 신규직원 충원을 해주지 않자 생산라인에서 구호를 외치는 등 항의했다. 사측은 ‘265분간 생산라인 가동이 중단돼 손해를 입었다’며 노조원 2명을 대상으로 1억 1백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사측의 손을 들어주고 소송은 종결됐다.

# C회사 노조는 2015년 장비가 노동자를 향해 기울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측은 작업자가 다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고를 안전사고가 아닌 장비 고장으로 보고 수리 후 라인을 재가동하려고 했다. 노조는 해당 사고를 ‘안전사고로 봐야 한다’며 쟁의에 돌입했다. 이에 사측은 ‘쟁의 때문에 생산라인이 중단돼 손실을 봤다’며 노조원 2명에게 5억원을 배상하라고 소송했다. 재판부는 또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조합만큼 입장이 양극단으로 갈리는 대상도 드물다. 같은 사건을 다뤄도 ‘귀족노조’와 ‘노조탄압’이라는 정반대의 표현이 동시에 나온다. 하지만 양측의 입장 중 무엇이 옳은지를 떠나 한국이 ‘노조 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노동조합 조직률은 14.2%로 100명의 노동자 중 노조 가입자는 15명 남짓. 70~80%를 웃도는 북유럽 선진국에 비해 한참을 못 미치는 수치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노조 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대표적으로 사측의 무시무시한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를 꼽아볼 수 있다. 이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잡자, 손에손을잡고)는 1988년부터 올해 5월까지의 법원 판결문 197건을 입수한 결과 기업들이 노동자들에게 그간 청구한 손해배상액이 총 3160억 원이 넘는다고 밝혔다. A~C회사처럼 적게는(?) 1인당 수천만원 내지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 단위도 있다. 

천문학적인 배상액에 노조는 사측에 정당한 요구조차 하기 어려운 게 대한민국 노동 환경의 현실이다. 이에 노동계는 일명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 노조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에 사활을 걸었다. 현행 노조법 2, 3조를 개정해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막대한 손배소와 가압류를 막자는 것이다. 해당 내용을 자세히 듣고자 <뉴스포스트>는 이달 19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박래군 손잡고 상임대표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노동자들이 사측으로부터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를 받는 경우가 많은가. 소송을 당한 노동자들의 삶은 어떻게 됐나.

소송하는 사측은 많지 않다. 파업 자체가 많지 않고, 옛날보다 줄었다. 노동자들이 손배소 무서워서 파업하기 어렵다. 옛날엔 노동 탄압을 주로 형사적으로 했다면, 요즘은 경제적으로 한다. ‘쌍용자동차 사태’때만 해도 정규직 노동자들이 대상이었지만, 최근에는 손배소가 노동자들 중에서도 더 약한 쪽에 집중된다. 하청노동자나 특수고용직 노동자처럼 고용상태가 불안정한 노동자들 말이다. 수십억원의 손배액을 이들이 어떻게 감당하겠나. 

게다가 손배소를 당하면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심적 고통이 매우 크다. 노조를 탈퇴하면 손배소 대상에서 빼준다고 사측이 회유하거나, 안 먹히면 연대보증인들까지 가압류에 들어간다. 집안에 ‘빨간딱지’가 붙는 거다. 소송 기간도 빨라야 7년, 평균 10년으로 매우 길다. 그동안 심적 고통은 지속된다. 쌍용자동차(에서 손배소를 당한) 수십 명 노동자를 조사한 결과 30%가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답했다. 일반인들의 위험도보다 수십 배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손배소더러 ‘불법 파업 막는 특효약’이라고 했는데, 굉장히 잔인한 얘기다. “그러니 파업하지 않으면 될 거 아니냐”라는 주장은 무권리 상태로 살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행 노조법은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하고 있는데, 현실은 왜 다른가.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이나 파업은 헌법이 보장된 기본권이다. 이것을 하위 법률로 제한하면 안 된다. 그런데 군사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현행 노조법 3조는 ‘이 법에 의한’*이라는 문구가 추가됐다. 이에 따라 ‘이 법에 의한’ 정당한 파업이 아니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논리가 정립됐다. ‘이 법에 의한’ 정당한 파업을 인정받기도 너무 어렵고, 이것을 벗어나면 다 불법 파업이 되는 것이다. 

*(현행 노조법 3조: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현행법의 잘못된 부분은 사법부가 잡아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법원의 판결들은 주로 근대 민법적 논리가 적용된다. ‘얼마의 손해를 끼쳤으면 이를 배상해야 된다’ 이런 논리다. 민법도 현대에 들어 엄청 수정됐다. 민법의 원리는 원래 ‘평등한 계약 주체 간에 자유롭게 계약하는 게 보장돼야 한다’는 것인데, 사측이 자본력이 워낙 강해 자유로운 계약이 이뤄질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노조법 등 관련법이 생긴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걸 반영 안 하고 근대 민법의 방식을 굉장히 가혹하게 적용하고 있다.

박래군(왼쪽 두번째)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공동대표가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 앞에서 노란봉투법과 관련한 한국경영자총협회와의 공개토론을 제안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지난달 29일 박래군 손잡고 상임대표가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 앞에서 노란봉투법과 관련한 한국경영자총협회와의 공개토론을 제안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노란봉투법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경제 단체들이 지적하는 주장은 다 비슷하다. 먼저 재산권 침해를 말한다. 재산권을 절대적으로 보호하려고 했던 근대 민법은 수정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공익을 이유로 (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발전했다. 노동자들의 임금은 공공의 문제라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기업의 사적 소유권은 제한될 수 있는데, 이런 부분들을 다 무시하고 있다. 기업의 이윤만 보장하면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노동자들은 더욱 가난해진다. 재산권이 중요하다면서 가난한 노동자들의 재산권은 무시해도 되는가. 노동자들은 임금으로 사는데 손배소를 걸고, 꼭 통장까지 가압류해야 하겠는가.

두 번째는 불법 파업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재계 쪽에서는 우리나라가 파업이 다른 나라보다 엄청 많고, 폭력적이라고 주장한다. 파업만 했다고 하면 불법이라 주장하는데, 합법 파업으로 인정되는 범위를 너무 좁혀 놨으면서 참 나쁜 주장이다. 불법인지 합법인지는 (법원 판결로) 확정이 돼야 하는데, 무조건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파업을 해도 사측이 이런저런 핑계로 교섭을 피하면서 노조를 두고 ‘강성’이라고 지적하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2000년대에 들어서는 손배소와 가압류를 노조 파괴 수단으로 이용하라는 지침들이 확보된 사례도 있다.

세 번째는 외국에서 비슷한 사례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영국의 경우 노조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의 액수를 청구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노조 규모에 따라 손배소의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거다. 노조의 파업으로 손해가 발생하면 노조에게 손배소를 거는 게 맞는데, 사측은 ‘누가, 언제, 어떤 행위로 피해를 입혔다’라는 구체적 근거 없이 두리뭉실하게 ‘파업으로 손해를 끼쳤으니 노조원 몇 명이 연대 책임지라’는 식으로 나온다. 

-노란봉투법이 무사히 국회 본회의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 거라고 보는가.

재판을 하면서 이상한 판례들이 쌓이고 있다. 사법적으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으니 입법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노란봉투법은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하지만 여당과 정부가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어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된다.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 ‘민주노총 보호법’이나 ‘강성 노조 보호법’이라는 주장은 정말 오해다. 노동자로 살고 있는 평범한 시민들을 위한 법이다. 어느 날 갑자기 임금이 깎인다거나, 해고가 되면 시민들은 저항할 수 있다. 이게 시민들의 권리다. 노란봉투법은 강성 노조를 위한 법이 아니라 시민들을 위한 법이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만 봐도 위험한 환경에서 근무하지만, 상당히 숙련된 기술자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수당까지 다 포함해서 월 260만 원 정도 받는다. 이런 사람들에게 470억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게 말이 되는가. 이런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 노란봉투법이 필요하다. 국회 통과는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 연대가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노란봉투법이 통과가 된다면 우리나라의 노동 문제가 어느 정도는 해결됐다고 보는가.

아니다. 아직 멀었다. 아주 심각한 부분만 좀 제약하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만 막는 거다. ILO(국제노동기구)의 기준을 적용하면 우리는 너무 후진적이다. 우리나라처럼 단체행동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업무방해죄로 구속되고, 손해배상 청구를 이런 식으로 하는 거는 없다. 특히 선진국에서는 없다. 정말 속지 말았으면 좋겠다. 노란봉투법은 당연히 통과돼야 하는 것이고, 이제는 노동권이 기존보다 회복돼야 한다. 언제까지 계속 산업현장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걸 묵인하고, 당연시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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