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원 반려동물보험연구소 소장 인터뷰
“물림 사고뿐 아니라 유기 동물 문제도 도움”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에만 2천 건, 하루에 약 6건 꼴로 개 물림 사고가 발생한다.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동물인 개가 어쩌면 사자나 호랑이보다 무서운 맹수로 돌변할 수 있다는 걸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잇따른 사고에 동물보호법이 강화됐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 물림 사고를 예방하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인가. ‘친숙한’ 맹수로부터 가족을 지키고, 가족 같은 반려견이 맹수가 되지 않도록 <뉴스포스트>가 방법을 고민해봤다. -편집자 주-

(그래픽=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그래픽=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개 물림 사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17년부터 매년 2천 건씩 발생하는 사고에 국회에서도 동물보호법을 개정하는데 이르렀다. 올해 4월 개정된 동물보호법은 반려견을 소홀히 관리한 견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게 골자인데, 사고 예방보다는 사고 견 견주 처벌에 중점을 뒀다. 이 때문에 동물보호단체 등 시민사회계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동물권 단체인 동물권행동 ‘카라’ 측은 개 물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1m의 짧은 목줄 사용 금지 등 올바른 개 사육 방식과 개 물림 사고 예방 교육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이를 어길 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안락사는 개 물림 사고 예방 효과에 근거가 없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견주에게 올바른 개 사육 방식과 사고 예방 교육을 강제하는 것은 끔찍한 비극을 막는 데 기본적인 방안이다. 하지만 개 물림 사고 예방에는 보다 더 다양한 방안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독일식 배상책임제’ 도입이 있다. 현재 독일에서는 안전한 반려동물 문화를 위해 반려인에게 ‘배상책임보험’을 가입하도록 한다. 배상책임보험이란 반려동물 때문에 사람이 사망하거나 다칠 경우 대신 피해를 보상하는 보험이다.

<뉴스포스트>는 지난 7일 독일식 배상책임제의 국내 도입을 강하게 주장하는 심준원 반려동물보험연구소 소장과의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심 소장은 반려동물 보험 전문 기업 펫핀스의 대표도 맡고 있다. 심 소장은 독일식 배상책임제에 대해 “‘無예산, 低비용, 高효율’의 정책에다, 개 물림 사고 예방은 물론 반려동물과 관련한 다양한 사회적 문제도 해결한다”며 “동물 의료 관련 산업의 성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등 순기능이 많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의 한계, 배상책임제로 보완해야

심 소장에 따르면 ‘독일식 배상책임제’는 견종이나 크기, 무게에 따른 구별 없이 모든 반려견에 대해 ‘배상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맹견*이라고 지정된 견종의 견주에게만 배상책임보험 가입 의무를 부여했다. 그는 “배상책임보험 가입을 모든 견종으로 확대함으로써 혐오 단어인 ‘맹견’이라는 용어를 바꾸고, ‘반려견 소유자 배상책임보험 가입 의무화’로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사견,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아메리칸 스태퍼드셔테리어, 스테퍼드셔 불테리어, 로트와일러 5종 및 이들의 혼혈견

실제로 매스컴에서 떠들썩했던 개 물림 사고는 대부분 맹견이 아닌 견종들로부터 일어났다. 지난 7월 울산에서 8살 남아와 9월 전북 임실에서 4살 여아는 모두 진돗개 혼혈 추정 개에게 물림 사고를 당했다. 2017년 사망 사고를 낸 유명 아이돌 가수의 반려견도 맹견 5종과 관련이 없다. 심 소장은 “개 물림 사고로 1년에 2천 건 이상이 119에 신고되고 있다”며“현행법  상 ‘맹견 소유자’에게 부여된 보험 가입 의무로는 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행 동물보호법의 허점은 맹견 지정에만 있는 게 아니다. 시행규칙에 명기된 ‘잡종’의 정의도 세부적이지 못하다. 예를 들어 로트와일러와 진돗개 혼혈은 ‘로트와일러 잡종’으로 등록하면 보험 의무가입 대상이지만, ‘진돗개 잡종’이라고 하면 의무가 아니다. 유전적으로 모호한 견종이 물림 사고라도 내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위원회가 결성돼 심사를 해야 하고, 유전자 검사를 해야 한다. 이에 불복하면 행정소송으로 이어진다는 게 심 소장의 지적이다.

심 소장은 “현행 동물보호법은 보완해야 할 요소가 많다. 맹견 5종은 우리가 평생 실제 보기도 힘든 견종들이다. 이 때문에 다른 견종에서 발생하는 물림 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며 “‘반려견 배상책임보험’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모든 견종에 대해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 이대로 방치하면 개 물림에 의한 노약자의 사망 사고는 막을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배상책임제, 개 물림 사고 경각심 고취

심 소장은 독일식 배상책임제가 허술한 현행법을 보완하면서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기존의 맹견 배상책임보험 인프라가 있어 동물보호법 시행규칙만 개정해 견종만 확대하면 예산이나 비용, 시간 소모 없이 바로 시행할 수 있다”며 “(맹견 배상책임보험 기준을 적용하면) 가격은 연간 1~2만 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개 물림 사고 예방법 중 하나로 고려되는 ‘반려동물 보유세’의 예상치가 10~20만 원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저렴하다.

배상책임제는 개 물림 사고 피해 보상과 경각심 고취에도 효과적이다. 맹견만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배상책임보험 미가입 과태료가 현행 300만 원인 것을 미루어 볼 때, 독일식 배상책임제가 도입되면 같은 금액의 과태료를 부과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심 소장은 “도시는 물론 교외 지역까지 전국적으로 개 물림 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개 물림 사고를 당한 피해자는 보험금을 통해 빠른 회복을 지원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차원의 반려동물 등록 의무화 정책과 만나면 국내의 고질적인 유기 문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내장 칩으로 동물 등록을 해야 하고, 배상책임보험까지 가입해야 하므로 ‘충동 입양’이나 애니멀 호딩(Animal Hoarding) 방지에도 유리해진다는 게 심 소장의 주장이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의 반려동물 실태 관리 및 광견병과 같은 전염병 방역에도 수월해진다고 덧붙였다.

반려동물 배상책임보험에 관한 설문조사. (그래프=미디어리얼리서치코리아 편집)
반려동물 배상책임보험에 관한 설문조사. (그래프=미디어리얼리서치코리아 편집)

선진 제도, 언제나 도입 장벽이 있다

새로운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있지는 않을까. 우려와는 반대로 현실은 독일식 배상책임제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디어리얼리서치코리아가 올해 9월 24일부터 28일까지 대한민국 성인 286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9.2%가 배상책임보험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은 불과 6%, 모르거나 의견이 없다는 응답은 4.8%로 집계됐다. 

의무 가입 대상 범위에 대해서도 현행 맹견 5종보다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이 크다. ‘맹견의 범위를 확대해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37.3%로 가장 많았고, ‘모든 견종으로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28.1%로 다음을 차지했다. ‘현행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15.5%, 개뿐만 아니라 고양이 등 ‘모든 반려동물까지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은 14.5%다. 전체 응답자 약 80%가 보험 의무 가입 대상 범위를 현재보다는 넓혀야 한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우호적인 여론에도 준비 없이 도입을 서두를 순 없다. 독일식 배상책임제의 도입과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뤄져야 할 선행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의무 보험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반려동물 ‘의무 등록’이 필수다. 심 소장은 ‘내장형 무선식별장치(RFID)’로 통일해 동물 등록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내 사정은 좋지 않다. 2014년부터 반려동물 등록제를 시행했으나, 8년이 지난 현재 등록률은 불과 30%대에 머물고 있다. 

심 소장은 “정부에서는 비문(코 지문) 같은 생체 정보로 동물 등록을 추진하는 거 같은데, 성공할 수 없다고 본다. 사람의 지문은 접촉 방식이지만, 비문은 비접촉식이다”라며 “반려동물의 코도 변형이 오고, 촬영 시 조도의 영향과 움직임 때문에 오류가 많다. 간이 좋지 않거나 사망 시에는 변형이 커서 확인도 불가하다. 또한 디지털 방식은 오류와 해킹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무엇보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의 국제표준이 RFID다”라고 내장 칩 등록 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끝으로 심 소장은 “기존 반려동물 제도들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쫓기듯 새 과제가 테이블 위에 올라오다 보니 풀어야 할 숙제는 많은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해 일관되게 해결해야 한다”며 “맹견 소유자 배상책임보험이 개 물림 사고 예방에 왜 효과가 없는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 앞에서 ‘무늬만 전문가’들이 현장을 모르는 정책을 만들어 풀지 못한 숙제들만 테이블 위에 늘어나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