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해마다 국회의 연말은 내년도 예산안 처리 문제로 분주하다. 특히 올해는 새 정부 임기 첫해이기 때문에 예산안에 대한 여야의 입장은 어느 때보다도 첨예하게 대립했다. 정기국회 마지막 날까지도 처리되지 못한 2023년도 예산안은 오늘도 여전히 망망대해를 표류하고 있다.

지난 15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15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법인세 최고세율 조정은 2023년도 예산안에서 여야 간 최대 쟁점이다. 국민의힘이 최고세율 인하를 포기하지 않자, 민주당은 정부안보다 감액된 수정안을 단독 처리하겠다고 나섰다. 같은 달 12일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인 김성환 의원은 서울 여의도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중소기업의 법인세 최고세율과 월세 세액공제율을 올리는 등 이른바 ‘서민 감세’ 수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달 15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74번이나 예산안을 (처리) 했지만, 한 번도 야당이 정부가 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사항을 삭감하고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예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여당 의원들과 각종 매체들은 헌정사 초유의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헌정사상 야당이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단독 감액 처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을까.

예산안, 국회서 어떻게 처리되나

국회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안은 상임위원회의 예비심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종합심사, 본회의 의결 과정을 거쳐 확정된다.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예산안이 의결된다. 회개연도 개시 30일 전인 그해 12월 2일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예산편성을 정부의 고유 권한으로 보장하고, 국회는 이를 심의하고 확정하는 권한을 갖는다. 국회가 예산안을 증액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부의 동의가 필요한 반면, 감액은 별도의 정부 동의가 없어도 가능하다. 이는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제헌헌법에서부터 이어졌다.

얼어붙은 정국. (사진=뉴스포스트 DB)
얼어붙은 정국. (사진=뉴스포스트 DB)

민주당은 국회의 감액 권한을 십분 활용했다. 국민의힘이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등을 고수한다면, 민주당은 서민 대상 세금을 감액한 수정안을 제출하겠다고 나섰다. 정부여당의 ‘초부자 감세’에 ‘서민 감세’로 맞붙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수정안은 정부안보다 약 1~2조 원이 감액됐다. 국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는 민주당이 수정안을 밀어붙인다면, 무리 없이 본회의를 통과할 전망이다.

주 원내대표의 주장을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예산안 처리 과정’과 ‘역대 국회 의석수 변화’를 살펴봐야 한다. 야당이 ‘단독’으로 감액안을 본회의 처리하려면 1개 야당이 적어도 재적의원 과반수는 돼야 한다. 여소야대 국회에서도 제1야당이 과반수인 ‘초여소야대’가 돼야 감액 예산안 단독 처리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 원내대표의 발언은 사실이다. 군부의 장기 집권 역사가 있는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지 않다. 게다가 제1야당이 홀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사례는 더욱 드물다. 윤석열 정부 이전에도 단독 과반 야당은 존재했지만, 이들이 예산안을 단독 감액 처리한 적은 없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소야대 역사

야당이 단독으로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사례는 1997년 11월 창당된 한나라당이 최초다. 같은 해 연말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여소야대 정국을 극복하기 위해 자유민주연합과 공동정부를 꾸렸다. 당시 언론 보도들을 분석한 결과 여당은 한나라당 의원들을 적극 포섭했고, 1998년 9월 새 정부 첫 예산안이 본회의에 오르기 전에 여대야소 구도를 완성했다.

한나라당은 2000년 제16대 총선 승리와 2002년 여권의 정치적 스캔들 등의 여파로 다시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다.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첫해를 단독 과반 야당과 함께 보냈다. 현재 윤석열 정부와 가장 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야당이 정부 예산안을 단독으로 수정해 처리하지는 않았다. 당시 국회회의록에 따르면 참여정부 첫 예산안은 정부안보다 8000억 원 증액된 규모로 본회의의 문턱을 넘었다. 이후 윤 대통령 당선 전까지 단독 과반 야당은 존재하지 않았다.

여소야대를 극복하기 위해 3당 합당을 단행했던 김영삼, 노태우 전 대통령. (사진=뉴시스)
여소야대를 극복하기 위해 3당 합당을 단행했던 김영삼, 노태우 전 대통령. (사진=뉴시스)

단독 과반 야당의 역사는 짧지만 여소야대의 역사는 길다. 제헌국회는 임기가 지날수록 이승만 정권의 실정으로 반 이승만 세력이 여권을 압도했다. 다만 국회 자료에 따르면 당시 대부분 의원이 무소속으로(전체 200석 중 85석) 특정 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선거도 마찬가지였다. 전체 의석수는 210석이었지만, 무소속 의원이 126명으로 과반을 넘었다. 예산안 단독 감액 처리는 불가능한 구도였다.

군사정권 당시에는 여소야대 정국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오늘날과 같은 여소야대 구도는 민주화 이후에서야 가능하게 됐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여당인 민주정의당은 125석을 차지해 제1당이 됐으나, 야 3당(평화민주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의석수가 과반을 넘었다. 하지만 각 당은 여당의 의석수를 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1990년 통일민주당과 신민주공화당이 민정당과 합당하면서 거대 여당이 탄생했다.

1992년 제14대와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도 여당은 제1당이 됐지만,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분열된 야당들과 무소속이 국회의 과반수를 넘어섰다. 당시 여당은 무소속 의원이나 야당 안사들을 적극 포섭해 여대야소 정국을 완성했다. 예산안 처리 역시 오늘날과 같은 갈등은 없었다.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다시 여소야대 정국이 됐으나, 과거 한나라당처럼 과반수를 차지한 야당은 없었다.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이 2022년 대선으로 야당이 되면서 거대 야당의 역사는 다시 부활했다.

[검증 결과]

사실. 헌정사상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이 단독으로 정부 예산안을 감액 처리한 적은 없다.

[참고 자료]

국회 홈페이지, 예/결산 안내

국회 홈페이지, 국회의 역사: 정당별 의석 및 득표현황

與 과반의석 확보 무엇이 달라지나, 연합뉴스, 1996.05.15

李海鳳의원 등 한나라당 입당, 연합뉴스, 1997.11.28.

국민회의 1백석 넘어...與 과반의석 확보, 연합뉴스, 1998.09.08.

한나라 국회의석 과반 확보, 연합뉴스, 2002.06.14.

(새해 경제이슈)②정치변수를 극복하라, 이데일리, 2004.01.02

국회회의록: 16대 244회 5차 국회본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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