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어느 때보다도 밝고 희망차야 할 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에 여론의 관심은 느닷없이 ‘사이코패스(Psychopath)’에 쏠렸다. 무고한 시민을 최소 2명이나 살해한 흉악범 이기영의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여론에게 이기영은 이미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로 각인됐다.

4일 택시기사와 집주인인 동거녀 살해 혐의로 구속된 이기영이 경기 고양시 일산동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4일 택시기사와 집주인인 동거녀 살해 혐의로 구속된 이기영이 경기 고양시 일산동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이코패스는 흔히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지면서 죄의식이 결여된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국내에는 지난 2004년 20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마 유영철이 검거되면서 알려진 개념이다. 현재는 일상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단어가 됐다. 하지만 사이코패스의 특징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대표적으로 사이코패스와 지능의 연관성이다.

대중예술에서 사이코패스는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범죄를 저지르는 ‘지능적인 캐릭터’로 그려진다. 이 때문에 사이코패스가 일반인보다 머리가 좋다는 고정관념이 생겼다. 심지어 주인공보다 매력적인 악역으로 미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이 자주 노출되면서 인식이 정반대로 바뀌는 모양새다. 온라인상에서는 사이코패스가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보다 지능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사이코패스의 지능, 어느 쪽이 진실일까.  

‘사이코패스’란 무엇인가

신동준 국민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가 지난 2011년에 발표한 ‘현대 사회의 ‘괴물’. 사이코패스 이해하기’에 따르면 사이코패스의 현대적 개념은 미국의 정신과 의사 허비 클레클리(Harvey M. Cleckley)가 정립했고, 이후 캐나다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Robert Hare)가 ‘사이코패시 진단표-개정판(PCL-R)’를 개발하면서 구체화됐다. PCL-R은 국내외 수사기관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유영철과 강호순 등 익히 알려진 국내 흉악범들 역시 해당 검사를 통해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사이코패스의 명확한 정의는 정립되지 못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 등의 개념과 숱하게 혼용되고 있으며, 연구자들마다 특징들을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본지는 사이코패스의 정의를 우리나라에서 사용 중인 PCL-R을 기준으로 하겠다. 우리나라는 PCL-R에서 40점 만점에 25점 이상을 받으면 사이코패스라고 판정한다.

PCL-R은 크게 ‘대인관계’, ‘감정·정서’, ‘생활방식’, ‘반사회성’ 등 4개의 항목으로 구성됐다. 검사를 통해 나타나는 사이코패스의 특징은 ▲자기중심적 ▲유창한 말솜씨 ▲허풍 및 과시 ▲이해심 및 책임감 부족 ▲후회 및 죄의식 결여 ▲잘못된 행동 합리화 ▲목적을 위한 사실 왜곡 ▲거짓말과 속임수에 능함 ▲공감능력 부족 ▲성적 타락 ▲타인 갈취 및 조종 ▲정서관계 형성 불가 ▲충동적 ▲문제적 유년시절 ▲자극적 스릴 추구 등이다.

온갖 나쁜 특징은 다 갖추고 있지만, 정신과적 질병의 개념은 아니다. 한정선 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 교수가 2020년 발표한 ‘범죄형 사이코패스와 성공한 사이코패스’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정신질환자와 달리 환상과 망상, 스트레스를 겪지 않는다. 이들은 지극히 이성적이고, 자신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원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사이코패스는 정신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치료가 아예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운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그래픽=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그래픽=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사이코패스와 지능, 진실은?

전 세계 많은 학자들은 사이코패스와 지능과의 관계를 연구해왔다. 2004년 미국의 수감된 미성년자 122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대인관계가 피상적이고 기만적일수록 언어 능력, 창의성, 실용성, 분석적 사고력 등의 능력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반면 정서적 문제가 있을수록 언어 능력은 떨어졌다.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에서 대인관계 점수가 높다면, 지능이 높게 측정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반대로 감정·정서 점수가 높다면 언어 능력은 떨어진다.*

*Psychopathy in Youth and Intelligence: An Investigation of Cleckley's Hypothesi(2004)

2014년 이탈리아 범죄 고위험군 정신병원 수감 여성 56명을 대상으로 PCL-R과 RPM IQ검사를 진행한 결과 사이코패스 점수가 높을수록 IQ 점수가 낮았다. PCL-R의 하위 항목인 대인관계, 감정·정서, 생활방식, 반사회성 모두 점수가 클수록 IQ 점수가 낮았다. 사이코패스 성향이 클수록 지능이 낮았다는 결과다. 연구 논문은 “사이코패스 성향 여성들은 계획이 서투르고, 자신의 행동에 의한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Intelligence and psychopathy: A correlational study on insane female offenders(2014)

국내 연구는 어떨까. 홍수빈,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와 이자경 이화여자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지난 2015년 발표한 ‘범죄자의 지능 및 정서인식력이 정신병질 경향성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 따르면  사이코패스의 성향 일부가 강할수록 지능도 높아진다. 반면 일부 성향은 지능과 반비례 하기도 했다.

홍수빈 , 이수정, 이자경 교수는 살인 등 강력 범죄로 구치소나 교도소에 수감된 87명을 대상으로 PCL-R과 웩슬러 성인지능검사(K-WAIS4 4판)를 진행했다. K-WAIS는 대표적인 성인 지능 검사 도구다. 4판은 ‘언어이해’, ‘지각추론’, ‘작업기억’, ‘처리속도’ 등 4개의 능력치를 확인할 수 있다. 웩슬러 성인지능검사의 4가지 하위 항목을 PCL-R의 4가지 하위 항목을 대조해 결과를 산출했다.

실험 결과 PCL-R의 ‘대인관계’ 항목만이 웩슬러 성인지능검사의 ‘처리속도’와 정적인 상관관계를 보였다. 사이코패스 검사에서 대인관계 점수가 높을수록 처리속도도 뛰어났다는 설명이다. 논문은 “처리속도 지수가 검사 내 다른 지수와 상대적으로 관련성이 적고, 독립적인 지표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반면 웩슬러 성인지능검사의 ‘언어이해’, ‘작업기억’, ‘처리속도’ 점수가 높을수록 사이코패스 검사의 생활방식 점수는 낮았다. 또한 ‘언어이해’와 ‘지각추론’, ‘작업기억’의 점수가 높을수록 반사회성 점수가 낮아졌다. 전반적으로 PCL-R에서는 생활방식반사회성 항목이 웩슬러 지능검사와 유의미한 연관성을 보였다. 다시 말해서 사이코패스 성향에서 생활방식반사회성이 높을 경우 지능이 낮다고 설명할 수 있다.

국내외 많은 학자들은 사이코패스와 지능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대체로 사이코패스 성향이 높을 경우 지능 일부가 떨어지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구 시기와 장소, 평가도구, 환경, 대상이 모두 달라 결과가 일관적이지 않았다. 이수정 교수 외 3인은 논문을 통해 “연구에 한계점이 있다”면서도 “사이코패스 성향에 영향을 주는 요인 관련 분석은 사이코패스로의 발전 과정을 추론할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검증 결과]

절반의 사실. 국내외 연구 논문을 분석한 결과 사이코패스를 결정짓는 특성 중 일부는 지능과 반비례 했다. 하지만 일부는 지능과 크게 관련이 없거나, 정비례하기도 해 절반만 사실로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이기영 사이코패스 진단 불가능”…집 혈흔은 지인·숨진 동거녀(종합), 연합뉴스, 2023.01.06

신동준, 현대 사회의 ‘괴물’, 사이코패스 이해하기, 2011

한정선, 범죄형 사이코패스와 성공한 사이코패스, 2020

Salekin·Neumann·Leistico·Zalot, Psychopathy in Youth and Intelligence: An Investigation of Cleckley's Hypothesi, 2004

Spironelli·Segrè·Stegagno·Angrilli, Intelligence and psychopathy: A correlational study on insane female offenders, 2014

홍수빈·이수정·이자경, 범죄자의 지능 및 정서인식력이 정신병질 경향성에 미치는 영향,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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