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홍여정 기자] 2022년 한 해 산업계는 불확실성의 연속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 위기는 한국 경제에도 직격탄이 됐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여파는 기업의 수익성을 악화시켰다. 또한 각종 중대재해 사고도 빈번했다. 사회적으로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회사 대표들은 머리를 숙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수출이 2개월 연속 전년동월대비 감소하고, 무역수지도 8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이후 최장기간인 8개월째 무역적자를 이어갔다고 지난 1일 밝혔다. (사진=뉴시스 제공)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수출이 2개월 연속 전년동월대비 감소하고, 무역수지도 8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이후 최장기간인 8개월째 무역적자를 이어갔다고 지난 1일 밝혔다. (사진=뉴시스 제공)

3고(高)의 벽은 높았다

올 한 해 국내 산업계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高) 여파에 시름했다. 올해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부터 금리 인상,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 미‧중 갈등 등 글로벌 이슈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국내 산업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우선 수출 효자 품목이었던 메모리 반도체가 타격을 입었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반도체 수요 급감과 재고 증가에 가격 하락까지 발생하며 업황이 악화됐다. 이에 지난달 메모리 반도체 수출액은 38억 4000만 달러로 작년보다 49.7%나 감소했다. 이에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실적의 영향을 받았다.

산업현장 전반에서 쓰이는 원자잿값도 급등하며 관련 업계에 큰 부담을 안겼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발표한 ‘매출 100대 기업 영업실적 및 주요 지출 항목 특징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매출 상위 100대 기업의 올해 3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8%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24.7%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영업이익이 감소한 업종은 조선업(-1737.9%)이었다. 이어 △화학업(-61.1%) △섬유업(-30.6%) △건설업(-24.4%) △기계업(-17.8%) 순이었다. 조선, 화학, 섬유의 경우 3분기만 별도로 살펴보면,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791.9%, 81.9%, 52.8%가 줄었다.

100대 기업 중 3분기 원재료비 항목을 공시한 72개사의 매출은 같은 기간 18% 늘었다. 반면 원재료비 총액 증가율은 31.3%였다. 해당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35.4% 감소했다. 원재료비 부담은 제조업(33.1%)이 가장 상승 폭이 컸다.

(사진=뉴시스 제공)
(사진=뉴시스 제공)

건설업계, 레고랜드 후폭풍에 위기설까지

올해 하반기 건설업계는 강원도 레고랜드 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로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여기에 부동산 경기 침체까지 맞물리면서 줄도산까지 우려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총 4만 7217가구로 2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중 지방은 3만 9605가구로 전월 대비 17.2% 증가했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대출 이자 부담이 커졌고, 집값 추가 하락 우려에 매수 심리가 줄었다는 분석이다.

분양 시장 침체는 건설사들의 줄도산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대한건설협회의 ‘월별 부도업체수 현황’에 따르면 올해 부도 업체는 총 5곳으로 지난해 2곳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폐업신고도 크게 증가했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등록된 종합건설사의 폐업신고 비율은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늘어났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에 따른 자금경색도 유동성 위기를 키웠다. 부동산 PF는 시행사가 만기가 돌아오는 어음이나 채권을 상환하지 못하면 보증을 선 건설사가 갚아야 한다. 자금력이 충분하지 않은 기업에게는 대형 악재다.

지난 9월 강원도가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사업 당시 채무보증을 섰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갚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건설사 자금난의 시작이 됐고, 강원도가 추후 회생 신청 철회 방침을 밝혔지만 여전히 자금경색은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내년 2월까지 만기도래하는 부동산 PF ABCP 물량은 약 29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월 29일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삼표산업 채석장이 무너졌다. (사진=뉴시스 제공)
지난 1월 29일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삼표산업 채석장이 무너졌다. (사진=뉴시스 제공)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그러나 사고는 계속

올해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의 경우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에 기업들은 현장 안전 점검과 함께 안전 관리를 책임질 조직을 만들고, 최고안전책임자를 임명하며 준비에 나섰다. 하지만 올해도 산업계 전반에 안전사고는 발생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올해 3분기 누적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올해 1~3분기 누적 사망자 수는 510명(483건)이다. 업종별로는 △건설업 253명(243건) △제조업 143명(136건) △기타업종 114명(104건)이다.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건설업 82명(74건) △제조업 74명(67건) △기타업종 46명(39건)이다.

고용부가 지난해 같은 기간 통계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사망자 수는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국정감사에서 “근로자가 일하다가 죽거나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고용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 과제인데 중대재해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측면이 있어 안타깝다”라고 말한 바 있다.

삼표산업은 법 시행 이틀 뒤였던 지난 1월 29일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채석장이 무너지면서 노동자 3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며 중대재해법 1호로 조사를 받았다. 현대제철은 지난 3월 예산공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숨지는 사고로 최근 검찰에 송치됐다. 대기업 가운데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첫 사례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업장에서도 올해 4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유통업계도 화재 및 안전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지난 9월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에서 화재가 발생하며 8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이 사고로 김형종 현대백화점 사장 등이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SPC그룹 자회사인 SPL의 평택 공장에서도 샌드위치의 원료를 섞는 기계에 노동자가 끼여 숨졌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0월 18일 SPL 대표이사를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조사 중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2일 베트남 하노이 인근의 삼성전자 법인(SEV)을 방문해 스마트폰 생산 공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2일 베트남 하노이 인근의 삼성전자 법인(SEV)을 방문해 스마트폰 생산 공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창업주가 돌아왔다…오너가 경영도 활발

올해는 대내외 변수로 경영 불확실성이 짙어지면서 창업주를 비롯한 오너들의 경영 복귀가 잇따랐다. 책임 경영을 강화하고 오너 리더십을 통해 위기 극복 전략을 빠르게 세우겠다는 복안이다.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은 2022년 임원 인사를 통해 대표로 선임돼 경영 전면에 다시 섰다. 김 부회장은 대표직과 함께 해외영업본부장도 맡으면서 글로벌 사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고 신춘호 농심 창업주의 3남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은 올해 6월 농심 계열사인 메가마트 대표직에 복귀했다. 신 부회장 복귀로 메가마트는 1999년 이후 23년 만에 다시 오너경영 체제가 됐다. 지난 1일 교촌치킨 권원강 창업주는 회장직을 내려놓은 지 3년여 만에 경영에 복귀했다.

연말 인사를 통해 오너 2·3·4세의 승진도 이뤄졌다.

이재용 회장은 2012년 부회장에 오른 지 약 10년 만에 지난 10월 공식 취임했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글로벌 경영 여건이 악화되는 만큼 책임 경영 강화, 경영 안정성 제고,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이 회장은 취임 후 글로벌 정·재계 인사들을 연이어 만나며 본격적인 경영 활동에 나서고 있다.

CJ그룹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는 지난 10월 정기 인사에서 식품성장추진실장으로 보직이 변경됐다. 기존 경영리더 직급은 CJ그룹의 상무부터 사장까지를 하나로 정리한 임원 직급으로 이 신임 실장은 1년 만에 실장급 임원으로 승진됐다. 그는 식품사업 성장을 위한 미래 신성장 동력 발굴 등을 총괄하는 중책을 맡는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3남인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를 전무로 승진하는 정기 인사를 단행했다. 김 전무는 한화솔루션 갤러리아부문 전략본부장도 겸임하는 만큼 한화그룹의 호텔·리조트·유통 사업 전반에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은 최근 인사에서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케미칼 일본지사 상무보를 상무로 승진시켰다. 2020년 일본 롯데에 입사해 올해 5월 일본케미칼 일본지사 상무보로 임명된 후 7개월 만의 승진이다. 신 신임 상무는 롯데케미칼 일본지사에서 기초소재 영업과 신사업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에서는 최신원 전 회장의 장남인 최성환 SK네트웍스 사업총괄이 신임 사업총괄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장남 이규호 코오롱글로벌 부사장은 내달 1일 신설 출범하는 코오롱모빌리티 그룹 대표이사 사장에 내정됐다. BGF그룹에서는 홍석조 회장의 차남인 홍정혁 BGF 신사업 개발실장이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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