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촛불집회 열린 여의도
각기 다른 깃발 앞세운 '공론장 역할'
선결제 진풍경...'연대의 장'도 펼쳐져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2024년 12월 광장이 다시 열렸다. 광장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적 의미가 있지만 지금 열리는 광장은 사람들이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공론장으로서 의미가 더 크다. 

지난 수십 년 한국 민주주의는 조금씩 성장해 왔다. 중요한 순간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 시민들의 의견이 펼쳐지는 광장이 열렸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돌아보면 대학 교정이, 때로는 거리가 광장이 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광화문이, 그리고 2024년 12월에는 여의도가 시민들에 의해 열린 광장이 되어주었다.

(2024년 12월 7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시민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4년 12월 7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시민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광화문과 광장

2000년대와 2010년대에 광화문은 한국의 광장을 상징한다. 그 중심에 광화문광장이 있다. 

광화문 앞 넓은 길은 600년 넘도록 국가 권력의 상징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각종 정부 청사가 자리했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식민 통치 행사가 열리는 장소였다. 

광복 후 광화문 앞길은 새로 태어난 나라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고취하는 공간이 되었다. 1968년에 들어선 이순신 장군 동상이 대표적 사례다. 이때 동상이 자리한 장소는 광화문 앞길, 즉 세종대로 양차선 사이에 녹지가 조성된 중앙분리대였다. 

광화문 앞길 일대에 광장이 조성된 건 2009년이었다. 중앙분리대를 넓혀 광장을 만들었다. 중앙분리대가 더욱 커진 모습이라 넓은 도로 사이의 커다란 섬이나 마찬가지였다.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잇달았다. 

이에 2010년대 후반부터 광화문광장 재조성을 계획했고 공사를 벌여 2022년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광장을 붙이고 인공 녹지를 만들었으며 전시나 공연 등이 열릴 수 있는 공간도 배치했다. 

광화문광장이 공론장으로서 광장이 열린 사례로는 2016년 촛불집회가 대표적이다. 광장 다른 한켠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하는 등 시민들의 의견이 부닥치는 현장이기도 했다. 

(2022년 8월) 재조성 공사 후 문을 연 광화문광장.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년 8월) 재조성 공사 후 문을 연 광화문광장.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여의도와 광장

2024년 12월 여의도는 시민들에 의해 광장이 되었다.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가 청와대를 향한 외침이었다면 이번 12월 여의도 촛불집회는 국회를 향한 외침이었다.

그런 여의도에는 원래 거대한 광장이 있었다. 여의도에 있었던 공군 기지가 성남으로 이전을 앞둔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시장에게 여의도에 광장을 건설하라고 지시했다. 아스팔트 포장이 깔린 넓고 긴 광장이었다. 1971년 '5·16 광장'이 그렇게 들어섰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넓고 긴 광장은 유사시에 전투기 등이 이착륙할 수 있는 비상 활주로로 사용할 요량이었고, 평시에는 각종 행사를 치를 수 있는 광장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한동안 5·16광장은 군중을 대규모로 동원하는 관제 집회를 열거나 국군의날 열병식 등 위력 행사를 펼치는 장소로 쓰였다. 

여의도광장으로 이름이 바뀐 광장은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 공원으로 변신했다. 1999년에 조성된 여의도공원이 그곳이다. 여의도를 관통하는 지금의 여의대로와 여의도공원을 합친 공간이 과거 광장이 있던 영역이다. 

이번 12월 여의도에서 시민들에 의해 열린 광장은 과거 여의도광장 영역뿐 아니라 여의도 전체로 확장되었다. 이곳을 향한 연대감까지 포함하면 그 영역은 어쩌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망라했을지도 모른다.

(2024년 12월 14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시민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4년 12월 14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시민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다양한 깃발과 따뜻한 연대감

집회의 상징 중 하나는 깃발이다. 지금까지 깃발은 집회 참여 단체의 이름이나 정체성을 담은 기호로 작용했다. 2024년 12월 광화문 집회에서 휘날린 태극기도 집회에 참여한 이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일종의 기호다. 그런 태극기는 국기이면서 언제부터인가 특정 정치색을 보여주는 기호로 작용하고 있다. 

통일된 깃발은 집회에 참석한 이들을 단일 대오로 묶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2024년 12월 여의도에서 깃발은 단일 대오를 이루지 않았다. 오히려 참가한 이들만큼이나 많은 깃발이 휘날렸다. 

(2024년 12월 14일) '응원봉 없는 사람 연맹' 깃발.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4년 12월 14일) '응원봉 없는 사람 연맹' 깃발.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4년 12월 14일) '고양이 발바닥 연구회' 깃발.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4년 12월 14일) '고양이 발바닥 연구회' 깃발.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이들이 내건 깃발은 '응원봉 없는 사람 연맹'이라든지 '고양이 발바닥 연구회'처럼 어쩌면 장난처럼 보이는 면이 있지만 이들은 이런 깃발을 만들었던 나름의 생각이 있었다. 

이번 여의도에서 열린 광장은 다양한 계층과 세대, 다양한 정치색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대거 모여들었다. 이들이 여의도에 나온 이유는 하나였겠지만 이들의 평소 생각이 무척이나 다양하다는 걸 보여주는 게 깃발이었다.

즉 깃발은 다양한 목소리를 상징하는데 광장은 그러한 다양성을 포용해 주는 공간임을 보여주었다.

이번 12월 여의도에서 시민들에 의해 열린 광장은 연대의 현장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선결제' 문화가 탄생했다. 지난 14일 주최 측 추산 2백만 명이 모인 여의도 일대에는 집회에 참여하지 못한 이들이 미리 결제한 음료나 음식을 제공하는 카페나 식당이 무척 많았다. 

직접 음식이나 물품 등을 준비해서 나눠주는 이들도 있었다. 가장 많은 건 핫팩이나 주먹밥 나눔이었다. 그중에서도 '손가락 발가락 보호 협회' 깃발을 내건 청년들은 시민들에게 장갑과 발가락 핫팩을 무료로 나눠주었다.

(2024년 12월 14일) '손가락 발가락 보호 협회' 회원들이 나눠주는 장갑과 발가락 핫팩.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4년 12월 14일) '손가락 발가락 보호 협회' 회원들이 나눠주는 장갑과 발가락 핫팩.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4년 12월 14일) 광주와 전남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떡과 따듯한 차를 제공한 '오월 밥차'.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4년 12월 14일) 광주와 전남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떡과 따듯한 차를 제공한 '오월 밥차'.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멀리서 온 이들도 있었는데 특히 '오월 밥차'를 제공한 이들은 광주와 전남에서 올라온 이들로 특정 단체 소속이 아니라 모금으로 운영하는 자발적 모임이라고 했다.

인상적인 장면은 해외에서도 응원을 보냈다는 점이다. 지난 14일 국회의사당 건너편에는 푸드 트럭 여러 대가 줄지어 있었는데 어묵과 떡볶이 등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이들 푸드 트럭은 미국 교민들로 구성된 'MissyUSA' 회원들이 모금해서 준비한 것이었다. 비록 몸은 참가하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응원하고 연대한다는 메시지가 담겼다.

(2024년 12월 14일) 미국에서 거주하는 'MissyUSA' 회원들이 보내온 푸드트럭.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4년 12월 14일) 미국에서 거주하는 'MissyUSA' 회원들이 보내온 푸드트럭.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이외에도 지난 14일 여의도에서는 이름 모를 누군가에 준비한 따뜻한 마음들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연대의 광장이었다.

이번 주부터는 광화문 일대에서 광장이 열리고 있다. 서로 목소리가 다른 시민들이 가까운 장소에서 모이기 때문에 갈등이 빚어져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도 시민들은 광장을 공론장으로써 충실하게 연대의 현장으로써 따뜻하게 만들어가지 않을까. 

(2024년 12월 14일) 여의도 춧불집회에서 주먹밥과 음료수를 나눠주는 시민. 2024년 겨울 시민들에 의해 열린 광장은 공론장이면서 연대의 장이 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4년 12월 14일) 여의도 춧불집회에서 주먹밥과 음료수를 나눠주는 시민. 2024년 겨울 시민들에 의해 열린 광장은 공론장이면서 연대의 장이 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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