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동반자법' 발의한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 인터뷰
尹 탄핵 국면 장기화...제22대 국회서 발의조차 안 돼
동성애자보다 고령의 독거노인층에게 더 많은 혜택
"반대 여론 설득 중요하지만...정치 구조 개혁이 우선"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에서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 카메라를 보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에서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 카메라를 보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한국에서 가족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혈연과 혼인, 입양 등 세 가지다. 이를 통해 가족이 돼야만 사회적·법적 지위를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다. 친구·지인과 함께 거주하거나, 결혼하지 않은 동거 연인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을 여전히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스웨덴, 캐나다 등 해외 선진국들이 일찍이 관련 법망을 구축한 것을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가족 제도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황두영 전 국회의원 보좌관은 국내 최초로 '생활동반자법'이라는 명칭을 만들어 입법 내용을 준비했고, 제19대 국회에서 진선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법안을 추진하려고 했다. 하지만 전통적 가족관을 지지하는 여론의 강력한 반대로 '생활동반자법'은 입법조차 되지 못했다.

'생활동반자법'은 지난 2023년 제21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과 장혜정 전 정의당 의원이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이라는 명칭으로, 각각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 용 의원 발의안은 비혼 출산·입양 권리가 포함되는 등 한국 사회에서는 다소 논쟁적인 사안이 담긴 반면, 장 의원의 안은 해당 내용이 제외되면서 비교적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두 개의 발의안 모두 본회의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임기 만료로 최종 폐기됐다.

제22대 국회는 12·3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조기 대선 국면 등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는데 여념이 없다. '생활동반자법'은 발의조차 안 됐고, 별다른 논의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생활동반자법'이 정치권의 무관심으로 서서히 잊히는 가운데, <뉴스포스트>는 이달 18일 서울 마포구에서 해당 법안을 발의했던 장혜영 전 의원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현재 원외에서 활동하는 장 전 의원은 혼란의 정국에서도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에서 장혜영 전 의원이 탄핵 찬성 집회에서 한 시민에게 받은 머리끈을 소개하고 있다. 머리띠에는 '생활동반자법'과 '차별금지법' 제정 염원이 담겼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에서 장혜영 전 의원이 탄핵 찬성 집회에서 한 시민에게 받은 머리끈을 소개하고 있다. 머리띠에는 '생활동반자법'과 '차별금지법' 제정 염원이 담겼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제21대 국회 재임 당시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하셨다. 법안 발의자가 말하는 '생활동반자법'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에서 가족이 될 수 있는 방법은 혼인과 출산, 입양 세 가지다. 세 가지 말고 또 다른 사람과 가족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생활동반자법'이다. 성인인 두 사람이 서로를 '생활동반자' 관계로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면, 가족이 될 수 있다. 두 사람이 각자의 인생을 살고 싶을 때에는 생활동반자 관계를 합의 하에 해지하면 된다. 결혼과 달리 성별 또는 양가 집안에 구애받지 않는다. 성인인 두 사람, 오직 개인 간의 결합으로 가족이 될 수 있는 법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흔히 부모님과 자녀 2명으로 이뤄진 4인 가족이 '정상 가족'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가족 형태는 1인 가구다. 1인 가구라고 해서 모두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친구나 연인 등 분명히 누군가와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법적인 가족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사실상 가족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여러 가지 지원과 보호를 제공해야 하지 않는가. 이 같은 배경으로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하게 됐다.

-'생활동반자법'은 결국 임기 만료로 폐기 됐다. 국회 본회의에 올라가지 못한 사정은 무엇인가.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되면 순서대로 처리할 거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국회는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국회 교섭단체가 법안을 심의하고 통과시킬지 결정하는데, 교섭단체는 현역 의원 최소 20명 이상이 모여야 구성할 수 있다. '생활동반자법'처럼 여론의 반발이 예상되는 법안은 아예 심의조차 하지 않는다. 단 한 번도 소관 상임위원회에 심의되지 못하고 그대로 사장됐다.

이런 점에서 국회 대부분 의석을 차지하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두 정당 역시 혼인과 출산, 입양 세 가지 방법만으로는 다양한 가족들의 삶을 지킬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반대 여론을 설득하는 책임을 미루고 있다. 이 때문에 제가 있었던 21대 국회는 물론 현재 22대 국회까지 비슷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여론도 있다.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대한민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많은 법안의 논의를 지연시키고 있다. 일부 종교계의 주장으로 시민들이 누려야 할 권리가 침해받고 있는 형국이다. 정당들은 표를 얻으려고 일부 종교계의 주장을 과도하게 수용하고 있다. 종교계의 차별이 시민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편견처럼 비합리적인 이유 말고는 '생활동반자법'의 유의미한 반대 여론을 찾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정확한 동성애자 인구는 통계로 정리되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이성애자보다는 훨씬 적을 것이다. '생활동반자법'은 이성애자를 포함한 모든 시민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 반대 여론은 동성애자를 차별하려고 우리 모두의 혜택도 포기하겠다는 논리다. 저는 '생활동반자법'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훨씬 더 많다고 본다. 

-'생활동반자법'이 동성(同性) 부부에게만 필요한 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은, 법적·제도적 보호가 필요한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에게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하다. 굳이 성애(性愛)적인 관계를 수반하는 게 아니다. '생활동반자법'을 마치 '순한 맛 동성혼' 정도로 착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절대 아니다. 

'생활동반자법' 도입으로 가장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인구학적 집단은 고령의 독거노인층이다. 대한민국 1인 가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게 고령 노인층들이기 때문이다. 원래 혼자 사셨던 분들도 계시지만, 사별이나 이혼을 통해 1인 가구가 되신 분들도 많다. 그런데 그분들 모두가 실제로 혼자 살고 계신 것은 아니다. 친구들과 어울려서 지내시는 분들도 많고, 다시 연애를 시작해 사실혼 관계로 살아가시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현행법상 이분들을 포괄할 수 있는 제도는 없다. 가족처럼 살았던 동거인이 돌아가셔도 남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법적으로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장례를 주관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사실상 가족처럼 함께 살아온 동거인을 무연고 장례로 떠나보내야 한다. 복지제도 역시 원가족을 통해 제공되는 경우가 많아 원가족과 소원하거나 연결이 안 되면 복지 혜택을 누리기 어렵다.

응급상황 발생 시에도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동거인이 급하게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할 때 절차장 가족들의 동의서가 필요하다. 그런데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동의서에 서명할 수 없다. 동거인의 (원) 가족이 수술 동의를 위해 멀리서 병원까지 와야 한다.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돼 생활동반자 관계만 등록하면 모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제22대 국회에서는 '생활동반자법'이 발의조차 안 됐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2024년에 비상계엄 선포라는 황당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시민들과 헌법재판소 등이 힘을 모아 위헌적 계엄을 명령한 대통령을 파면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지 논의할 수 있는 큰 계기가 마련됐다.

이번이 두 번째 대통령 탄핵이라는 점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우리는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하게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지만, 정치에 잘 반영되지 못했다. 정치 퇴행을 막지 못한 것에 저뿐만 아니라 (이번 탄핵 국면 당시) 광장에 모였던 많은 사람들이 반성했다.

탄핵 찬성 집회를 주도했던 '비상행동'이 사회 대개혁 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날(17일) 야 8당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서는 광장을 통해 분출됐던 다양한 사회 개혁 과제들이 많이 논의됐고, 그중 하나가 '생활동반자법'의 도입이었다. 많은 시민들이 윤석열 파면과 함께 추진돼야 할 사회 대개혁 과제 안에 '생활동반자법'이 있다고 인식한다. 시민들이 요구하는 과제를 정치권이 받아들이도록 저희 같은 진보 정치 세력, 진보정당들이 더 노력해야 할 때다.

-하지만 '생활동반자법' 반대 여론은 여전히 강하다. 설득이 가능할까.

이 부분은 정치 개혁을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들이 국민보다 자신의 지역구 교회 목사님 눈치를 보게 만드는 현행 정치 구조를 바꾸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교회를 중심으로 작게는 몇 백 표, 크게는 몇 천 표가 왔다 갔다 한다. 이 때문에 주권자 권리 침해 문제를 못 본 척 넘기고 있는 것이다. 정치 구조를 바꾸는 게 중요한 이유다.

'생활동반자법'에 대해 잘 몰라서 반대하는 분들을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현행 정치 구조가 문제다. 해결을 위해서는 정치 그 자체를 바꾸는 게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그전에도 소수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사람들이 노력을 안 했던 게 아니다. 하지만 양당 정치의 골짜기를 빠져나오지 못했다.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생활동반자법' 제정 문제를 얘기할 수 없다. 정치가 같이 변해야 해당 의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답은 나와있다.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구조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통령 선거에 결선 투표제를 도입하거나,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를 비례대표로 바꾸는 방법 등이 있다. 완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정치인들이 더 이상 지역구에서 교회 표를 얻기 위해 '생활동반자법'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생활동반자법'이 시행된 미래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나.

대한민국 사회는 가족주의로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최근 방영했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면 가족은 '구원'이 될 수 있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은 '형벌'이 될 수도 있다. 천형(天刑)이라는 표현도 있다. 우리는 가족을 골라서 태어날 수 없다.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너무나도 무거운 짐이 될 수 있다. '생활동반자법'이 가지는 핵심은 '가족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관념 변화에 있다.

원가족과의 삶이 행복하고, 기존 제도에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다. 가족을 형벌로 생각하고 체념하면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누군가와 가족을 꾸려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미래. '생활동반자법'이 만들어진 이후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사회다.

-비상계엄 후 탄핵까지 수개월 동안 광장에 계셨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많은 개혁의 시도들이 있었지만, 좌절도 많았다. 그래서 꿈을 꾸기 어려운 사회가 된 거 같다. 특히 청년들이 기대를 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고 싶다. 꿈을 꾸지 않으면 변화는 불가능하다. 도전하지 않으면 쉬운 것도 이룰 수 없다.

민주화를 지나가버린 과거나, 교과서 속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사회는 얼마든지 퇴행한다. 과거의 악몽이 얼마든지 되돌아올 수 있다는 걸 윤석열 파면 사태로 느끼게 됐다. 하지만 다양한 청년들이 광장을 응원봉으로 수놓으면서 민주주의를 지켰기 때문에 많은 변화가 가능했다.

이번 광장은 '빛의 광장'으로 불렸다. 빛은 스펙트럼이라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광장이 희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빛은 스펙트럼'이라고 전하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국민의힘이 없는 사회를 열망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것뿐만 아니라 그동안 미뤄왔던 사회 대개혁까지 열망한다. 청산과 함께 개혁도 해나가야 한다.

우리가 광장에서 확인한 건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향한 열망이었다.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된 사회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가오는 대선 이후에도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 꿈꾸는 걸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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