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플스토리 기획자 3인이 전하는 라이브 서비스 노하우
"유저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게임이 오래 살아남는다"
[뉴스포스트=김윤진 기자] 최근 넥슨의 메이플스토리는 PC방 점유율 25%로 RPG 장르 1위, 종합 2위로 반등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종전 최고 기록을 넘어섰을뿐 아니라, 22년 서비스 역사상 가장 높은 점유율이었다. 이처럼 게임의 수명을 계속해서 연장할 수 있는 배경에는 유저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넥슨은 2025년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NDC 25, Nexon Developers Conference 25)를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진행했다. NDC는 현업자들이 게임 관련 인사이트를 나누는 소통의 장이다.
넥슨코리아 메이플스토리 기획팀 정현정, 구유리, 김재유 기획자는 26일 오후 4시,<테세우스의 배는 여전히 그곳에 있다 - 오래 가는 라이브 서비스를 위한 '메이플스토리'의 시도들>이라는 주제로 라이브 서비스 노하우를 공유했다.
인사말을 맡은 정현정 기획자는 '메이플스토리'와 프롬소프트웨어의 액션 게임 '엘든링'의 서비스 방식을 비교하며 라이브 서비스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그는 "유저들은 엘든링을 플레이할 때 하드코어한 재미를 기대하고, 프롬은 그런 기대를 정석적으로 충족시킨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반면 메이플스토리와 같은 라이브 서비스는 기대가 변할 때도 있다"며 "트렌드 변화나 신작 출시 등 기대를 움직이는 요인은 셀 수 없이 많은데,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고민과 시행착오의 총합이 라이브 서비스다"라고 말했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원칙도 버렸다…전투 기획 에피소드
첫 번째 연사로는 구유리 기획자가 나섰다. 그는 라이브 서비스 유저가 기대하는 '전투'를 기획한 경험을 나눴다.
메이플스토리의 전투는 크게 '사냥'과 '보스'로 나뉜다. 먼저 사냥은 과거에는 캐릭터 직업별 역할과 전략적인 스킬 분배가 중요했지만, 현재는 젠타임(몬스터 등장 주기) 안에 맵 안의 모든 몬스터를 처치하는 게 핵심이다.
구 기획자는 "지금의 유저들은 사냥이 쉽고 편해야 한다고 기대한다"며 "젠타임을 늘리거나 맵을 좁히고, 스킬을 수정하는 등으로 부응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메이플스토리 커뮤니티에서 화제였던 캐릭터 직업 간 언밸런스를 예로 들었다. A 직업과 B 직업의 몬스터 처치 시간은 비슷했다. 그럼에도 유저들이 주목했던 까닭은 '피로감' 때문이다. A 직업은 몬스터 처치를 위해 손을 바삐 움직여야 해 피곤했고, B 직업은 비교적 쉽고 편했다.
이와 관련해 구 기획자는 "전투 기획자들도 그런 문제에 공감했지만, 과연 A 직업의 피로도를 낮추는 게 맞을까 고민했다"며 "결국 과거와 달리 현재의 플레이어들이 사냥에서 '난이도'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기획자들이 원칙을 깨고 밸런스를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보스 전투에 대한 고찰도 눈에 띈다. 보스 전투의 경우 유저들은 자신의 컨트롤 실력을 합리적으로 평가받길 기대한다. 이에 전투의 합리성을 생각하다가 '컨트롤 실력은 캐릭터가 잘 살아남는 것과 보스에게 대미지를 잘 넣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활을 쏘는 캐릭터 직업 '신궁'은 적과의 거리에 따라 대미지가 증가하는 구조였다. 전투에서 이런 특성은 유저들에게 불합리한 경험을 제공했다. 따라서 거리 유지를 보조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는 유저들이 기대하는 바가 아니었다.
구 기획자는 이와 관련해 "거리 유지 기믹 자체가 불합리한 제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거리 기반 대미지 구조를 삭제하고, 화살을 세 번 쏘면 네 번째 화살이 강화되도록 하니, 네 번째 화살을 보스에게 잘 맞추는 유저가 실력 있는 것으로 평가받게 됐다"고 말했다.
불합리한 시스템을 제거한 사례가 또 있다. 메이플스토리는 오랜 서비스 기간 만큼 스킬도 다양해졌다. 그래서 강력한 한 방을 위해서는 정해진 순서대로 여러 버프 스킬을 순서대로 사용하는 '준비 과정'이 필요했다.
구 기획자는 "이런 복잡한 준비 과정이 합리적인가 의문이 들었다"며 "사람들은 버프 사용 중 사망하는 것을 마치 애니메이션 속 마법소녀가 변신 중에 맞는 것처럼 불합리하다고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유저들이 준비 과정을 실력이라 여기지 않게 됐기 때문에 삭제하고, 자동으로 버프를 발동시키는 시스템을 도입했다"며 "이 기획은 기존 실력 평가 요소를 없애고, 변화에 과감하게 대응한 사례"라고 정리했다.
라이브 서비스의 기대는 계속해서 바뀐다. 기대에 부응하고 게임이 살아남기 위해 때로는 원칙을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게 구 기획자의 철학이다.
"테세우스의 배처럼 변하는 모습이 라이브 서비스의 정수"
김재유 기획자는 '플레이 가치 보존'에 대한 유저들의 기대에 대해 다뤘다. 그가 말하는 '플레이 가치'란, 게임 플레이를 통해 누적된 레벨, 재화, 장비 등 유저의 노력과 비용의 결과다.
그는 "플레이 가치 보존이 중요한 까닭은 메이플스토리가 매우 오랜 시간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라며 "많게는 수만 시간까지 커버할 수 있으므로, 유저들은 오랫동안 플레이 가치가 보존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메이플스토리에서는 12년 전에 등장한 아이템을 지금도 현역으로 쓸 수 있을 정도"라며 "이런 오래된 아이템도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게임이 메이플스토리다"라고 덧붙였다.
아이템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그 아이템을 구매에 지불하는 화폐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현실에서 정부가 긴축 정책을 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메이플스토리에서도 이런 경제 원리가 적용되는데, 대표적으로 '스타포스 강화 개편'과 '데스티니 무기 업데이트'가 있었다.
김 기획자는 메이플스토리 내 화폐인 '메소'를 소비시킬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그 결과 유저들이 전체 메소의 약 25%를 소비하는 스타포스 강화 시스템을 손보기로 했다. 이는 메소를 소비해 일정 확률로 장비를 강화하는 시스템이다. 강화 단계는 1성부터 30성까지 있다.
기존의 스타포스 강화는 22성까지는 비교적 성공 확률이 높았고, 그 이상부터는 급격히 떨어졌다. 이에 22성에 도달하고 강화를 중단하는 유저가 많았다고 한다.
김 기획자는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변화를 줬다"며 "새로운 장비를 추가하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기존 장비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라 폐기했고, 23성 이상 강화 확률을 완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강화 확률을 완화하는 것도 기존 23성 이상 장비를 보유한 이들의 플레이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므로, 가치 손실을 방어하기 위해 기존 23성 장비를 25성 장비로, 24성 장비를 28성 장비로 보정하는 식으로 대응했다"고 설명했다.
마무리 발언에 나선 정현정 기획자는 메이플스토리를 '테세우스의 배'와 비유했다. 테세우스의 배는 모든 판자를 교체한 배를 여전히 기존과 같은 배라고 볼 수 있냐는 논쟁거리를 만든 그리스 신화 속 일화다.
정 기획자는 "태초의 메이플스토리와는 상당히 다른 게임을 만들고 있다고 깨달았다"며 "누군가는 예전이 재밌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변하는 모습이야 말로 라이브 서비스 게임의 정수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끝으로 "라이브 서비스의 끝은 유저가 더이상 기대를 충족할 수 없는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이라며 "여러 기대에 대응하는 건 힘든 일이지만, 기대를 받는 게임은 여전히 살아있는 게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