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들에게 “배 안나왔잖아” 억지부리는 노인

노약자석에 대한 개념, 희미해지고 ‘세대갈등’ 충돌
서울시, 눈에 띄는 ‘핑크존’ 운영에도 큰 효과 없어

▲ 교통약자배려석 픽토그램

[뉴스포스트=최유희 기자] 최근 임신 10주차인 임산부 아내가 지하철에서 한 남성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남편의 글이 SNS에 올라와 ‘노약자석이 노인석인 것이냐’라는 논란이 불거졌다.
‘임신부이더라도 나이 많은 내가 앉아야한다’ ‘너는 다쳤지만 나는 나이가 많기 때문에 넌 나에게 양보를 해야해’라는 주장을 하며 호통을 치는 노인들, 배려하는 자리인 지하철 등 대중교통 노약자석을 무조건 양보해야하는 자리로 인식하는 노인들과 이에 반하는 젊은 세대들의 갈등이 심하다.

노약자석, 임신부는 앉으면 안돼? 당연시 여기는 노인

▲ (사진=뉴시스)

노약자석은 말 그대로 노인을 포함한 장애인, 임신부 등 교통약자들을 배려한 좌석을 뜻한다. 여러가지 이유로 서서 가기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비워달라는 일종의 배려석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몸이 불편하거나 한다면 노약자석에 앉아도 되며 노약자가 자리를 비켜달라고 했을 경우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법적으로 처벌을 받지도 않고 범죄도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에 따르면 노약자석 관련 민원은 2011년의 117건에서 지난해 219건으로 배 가까이 증가했다.

최근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아있던 임신부인 아내가 옆자리에 앉은 60대 남성으로부터 배를 얻어맞는 등 폭행당했다는 남편 A씨의 글이 SNS에 올라와 공분을 사고 있다.

이달 초 A씨는 자신의 계정에 “9월1일 저녁 7시10분경 미아→수유 방면으로 4호선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던 제 아내가 폭행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A씨는 자신의 아내 B(30)씨가 임신 10주차이며, 당시 노약자석에 자리가 나 앉아 있다가 옆에 앉은 남성에게 어깨를 얻어맞았다고 주장했다.

글에 따르면 해당 남성은 B씨에게 노약자석 표시를 가리키며 “이거 안 보이느냐”고 말을 했고 이에 B씨는 자신이 임신부임을 밝혔다. 하지만 이 남성은 욕설로 되받았다. 경찰에 신고한 B씨가 수유역에서 내려 걸어가는 그를 따라가 “기다리라”고 했으나 오히려 “왜 쫓아오느냐”며 B씨의 배를 쳤다고 A씨는 주장했다.

A씨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넘어갈 일인데 ‘때린 기억이 없다’고 잡아떼며 심지어 아내를 무고죄로 고소하겠다고 한다”면서 목격자들의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이 글에 가해자로 등장한 장모(66)씨를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장 씨는 경찰에서 자신의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하지만 A씨의 글을 보고 목격자가 진술을 해 줘 혐의입증이 됐다고 한다.

지난 14일 SBS 러브FM ‘한수진의 SBS전망대’에는 당사자인 임신부 B씨가 출연해 당시에 상황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B씨는 “퇴근길에 사람이 너무 많아 앉아서 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데 (노약자석에) 자리가 났다”며 “6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어르신이 툭툭 치시면서 ‘노약자석 스티커 안 보이느냐, 일어서라’고 했다. ‘죄송합니다. 임산부예요’라고 말씀드리고 다시 이어폰을 꼽았는데 주먹으로 삽시간에 다시 팔뚝을 치셨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X가 불구자도 아닌데 여기 앉아서’ ‘어린X가 싸가지 없게’라고 욕설을 심하게 했다. 술은 안 드신 것 같았다. 임산부라고 말씀드렸는데 내리면서도 계속 욕을 했다”며 “지하철에서 내려 경찰서에 같이 가자고 말을 건넸는데 (배를) 밀쳤다”며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순간 너무 놀랐다”고 전했다.

이러한 사례는 B씨 뿐 만이 아니다. ‘배가 부르지 않은 초기 임산부도 노약자석을 이용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라는 지하철 내의 안내표지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임신 초기의 여성들에게 막무가내로 호통을 치는 노인들이 많다.

임신 초기 노약자석에 앉아있던 임신부 C씨를 보고 반말로 “너 노약자야? 아니잖아. 일어나”라고 대뜸 소리부터 지르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배가 나오지 않아 티가 잘 안나는 12주 이전의 초기 임신부에게 유산율이 전체 유산율의 8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보호가 필요한 시기였던 C씨는 할아버지에게 “임신을 했다”고 말하니 “배 안불렀잖아”라고 호통을 치는 등 배가 안불렀으면 임신부도 아니라는 억지주장을 내세웠다.

임신부들이 아니더라도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고 있는 환자 D씨 경우에도 노약자석에 앉으려고 하니 “왜 노약자석에 앉으려고 해, 여기는 나이 든 사람만 앉는 자리야”라고 말하며 ‘가정교육을 못받았네’ ‘부모가 대체 어떻게 교육을 시켰길래’ 막말을 하는 등 노약자석을 노인석으로 인식하는 노인들이 많다.

노약자석=노인석? 노약자석으로 인한 세대갈등

▲ (사진=뉴시스)

“노약자석은 노인들을 위한 자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일부 노인들로 인해 교통수단 내 노인들에 대한 반감이 커지다보니 노인과 젊은 세대 간 갈등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이젠 노약자석에 대한 개념마저도 희미해져 간다.

요즘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들이 매우 드물다. 과거에는 양심상 자는 척을 하기라도 했지만 요즘에는 개인 업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등 선뜻 자리를 양보하려고 일어서는 사람이 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노인공경’으로 자리를 양보하더라도 고맙다는 말은 커녕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노인들로 인해 또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SNS에 노약자석을 차지하기 위한 노인들의 사례들이 꾸준히 올라오면서 더욱 젊은 사람들이 반감을 가지는 것이다.

또한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를 하는 노인들을 향해 “우리는 돈을 내고 탔으니 자리에 앉아도 된다”라는 생각을 가진 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법률상으로 강제하지 않고 벌금 없는 전용석인 노약자석은 도시철도차량의 10분의 1 이상에 해당하는 부분을 교통약자 전용구역으로 할당돼있다.

또한 교통약자에 대한 양보가07년 말부터 지하철 1~4호선에서 시범운영되기 시작했다. 배려석은 기존 노약자석에 더해 7개짜리 중앙좌석 1~2개씩 교통약자 배려석으로 추가 지정한 좌석이다. 

교통 약자 배려를 위해 도입된 노약자석이 도입 당시의 의도와는 달리 세대간의 감정싸움이 오가는 등 갈등의 공간으로 전락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노약자석을 전동차 한쪽 구석에 몰아 두는 게 이런 갈등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왔다. 노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격리됨으로써 스스로 배타적이 되게 만들고, 젊은이들은 존경과 배려와 같은 선의 대신 의무를 강제 당하면서 반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새단장한 임신부들을 위한 ‘핑크존’…무용지물?

▲ 임산부 배려석 (사진=뉴시스)

최근 일반석과 별 차이가 없었던 임산부 배려석이 새단장을 했다. 기존에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일반시민들의 참여도가 저조했으며 승객이 앉으면 임산부 배려석인지 구별이 쉽지 않았다.

이에 서울시는 7월 말부터 좌석 뒤쪽으로는 새로 개발한 엠블럼을 붙이고 좌석부터 바닥까지는 분홍색 띠를 둘러 눈에 잘 띄도록 연출하고 지하철 승객들이 임산부 배려석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개선했다.

새 엠블럼은 분홍색 바탕에 누구나 임산부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허리를 짚고 있는 임신한 여성을 형상화한 픽토그램을 그려 넣었다.

분홍색 띠를 부착해 놓은 바닥에는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라는 문구를 적어 넣어 눈에 띄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임산부석에는 임신을 한 여성이 앉아있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임신부들을 위해 비워둔 것도 아니었으며 20~50대 남성들이 앉아있기도 했다.

지난 2일 SBS 러브FM ‘한수진의 SBS전망대’에 출연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삼식 박사는 “핑크존 운영에 대해 생명을 다루는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며 “임신 초기에는 표시가 안 나기 때문에 임산부도 적극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임산부 표시하는 배지를 나눠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배지를 적극적으로 부착해서 의사 표시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대중교통에서 임산부에 대한 배려는 간과된 것에 대해서는 “임산부에 대해서는 국가나 지자체나 사회 문화적으로 아직은 우리가 그렇게 변하는 것들이 많지 않았다”고 말하며 “최근에 저 출산 현상이 국가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다 보니까 지자체라던가 중앙정부에서 임산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우대하는 배려하는 걸 하고 있지만 그 전부터는 상당히 안 했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제 막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우리 국민들 문화. 경로문화에 비해서는 역사적으로나 여러 가지 시민의식으로 보나 상당히 뒤쳐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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