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절반 이상...하반기 채용 시기 ‘미정’
사회적 거리 두기로 공모전, 대외활동 등 취업 준비도 어려워
# 인테리어를 전공하고 있는 대학교 4학년 취업 준비생 박 모 씨(26세)는 최근 코로나 사태로 미래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경기 침체로 전공 분야의 신입을 뽑는 곳이 거의 없고, 자격증 시험도 일정이 변경되면서 준비에 차질이 생겼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장기화에 대한 염려로 부모님께서 공무원 준비를 권유하셔서 더욱 혼란스러운 상태다.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하반기 채용 시장에 또다시 먹구름이 꼈다. 연초 코로나 발발로 기업들의 상반기 채용 일정이 미뤄진 데다, 재확산 우려에 하반기 일정도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 격상에 따라 공공 도서관 등이 문을 닫으며 공부할 공간마저 줄어들었고, 취업 준비 활동에도 제약이 생기며 취준생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
대학교 4학년 취업 준비생인 선 모 씨(25세)는 “항상 이용하던 도서관 열람실이 무기한 휴관에 들어가 마땅히 공부할 공간이 없다”라며 “얼어붙은 취업 시장도 문제지만 공모전이나 대외활동, 인턴과 같은 취업 준비 활동에도 제약이 생겨 앞으로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할지 막막하다”라고 토로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당시 채용 공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예정돼 있던 필기시험 일정도 기약 없이 연기됐다. 실제로 상반기 코로나19의 여파로 당초 계획했던 채용인원을 모두 채용한 기업은 5곳 중 1곳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잡코리아가 국내 기업 560개사를 대상으로 ‘올해 상반기 직원 채용 현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 상반기에 계획한 규모를 ‘모두 채용했다(채용 중이다)’라고 답한 기업은 21.4%로 5곳 중 1곳에 그쳤다. ‘최소 규모로(일부만) 채용했다’고 답한 기업이 55.2%로 절반을 넘었으며, ‘전혀 채용하지 못했다’도 23.4%에 달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한국전력공사, 한국중부발전, 도로교통공단 등 공기업의 채용일정도 밀리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됨에 따라 지난 22일 실시 예정이었던 ‘2020년 고졸 채용형 인턴 선발 필기시험’ 일정을 한 달 뒤로 미뤘다. 오는 29일 치르려던 ‘2020년도 3차 6급직 채용 필기시험’도 한 달가량 잠정 연기했다.
한국중부발전도 지난 22~23일 예정됐던 4급직과 6급직 직원 채용을 위한 필기전형을 9월 이후로 연기했다. 도로교통공단·한국국토정보공사(LX)·한국인터넷진흥원(KISA)도 하반기 신규직원 공개채용 필기시험을 잠정 연기했다.
다음 달 1일부터 채용형 인턴 등 150명의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남부발전도 모집공고에서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채용 일정이 조정될 수 있다’고 고지했다. 2차 면접은 온라인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동서발전도 9~10월 각각 예정된 필기전형과 면접전형을 온라인으로 변경할 수 있다고 사전에 알렸다.
지난 23일 서울 동작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채용 필기시험을 치른 하 모 씨(29세)는 “코로나 위험은 있었지만 일정이 밀리지 않고 진행돼서 다행”이라며 “일반행정 경쟁률이 500~1000:1이라고 들었는데, 코로나 이슈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몰린 게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 하반기 채용 방식 ‘수시’ 대세...취준생 혼란
최근 필기시험 등 채용 일정이 재개되는 듯 보였지만, 하반기 취업시즌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8·15 광화문 집회 발 집단감염 등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세졌다. 이에 주요 기업의 절반 이상이 채용 시기를 확정하지 못하는 등 하반기 상황도 녹록지 않다.
잡코리아가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하반기 4년 대졸 신입직 채용계획’을 조사한 결과 ‘채용한다’라고 밝힌 기업은 29.3%에 그쳤다. 반면 ‘채용하지 않는다’라고 답한 기업은 35.4%, ‘아직 하반기 채용 여부를 정하지 못했다(미정)’라고 답한 기업도 35.4%로 조사됐다. 특히 매년 하반기 채용은 9월에 이뤄졌지만, 올해 하반기 채용 시기는 절반 이상(53.5%)의 기업이 ‘정하지 못했다(미정)’라고 답했다.
앞서 인크루트가 530곳의 상장사를 대상으로 2020년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채용 방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올 하반기 수시채용 계획은 지난해(30.7%)보다 10.7%포인트 증가한 41.4%로 조사됐다. 반면 공개채용을 통해 신입을 뽑겠다는 기업은 39.6%로 지난해(49.6%)보다 10.0%포인트 줄어들었다. 이는 공채보다 수시채용 계획이 1.8%포인트 높게 집계된 것으로 공채보다는 필요 인력만 제한적으로 뽑는 수시채용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교적 준비해야 하는 부분이 명확한 공채에 비해 수시 채용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취준생들의 혼란을 야기한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필기시험이나 면접을 온라인 화상으로 진행하는 등 채용 방식의 변화도 있어 취준생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 20대 청년 10명 중 7명 ‘코로나 블루’ 겪어
실제로 코로나19로 인한 취업 한파가 장기화하자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뜻하는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는 청년들이 많아졌다.
알바몬이 20대 성인남녀 4,450명을 대상으로 코로나 블루 현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 70.9%가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다’라고 답했다. 이들은 코로나 블루를 겪는 이유로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과 일자리 감소로 취업이 안 될 것 같은 불안을 꼽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취업난 여파가 취준생뿐만 아니라 이직을 준비 중이던 직장인들에까지 번졌다. 경기 침체로 인한 고용시장의 불안으로 이직을 미루고 있다.
직장인 최 모 씨(33세)는 “채용 공고가 많지 않아 섣불리 퇴사를 결정하기 어려워 발이 묶였다”라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힘들게 버티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23일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2020년 상반기 고용동향 및 주요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취업자 수는 2,679만 9,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만 9,000명이 줄었다. 이는 코로나 여파로 상반기 취업자 수가 작년보다 6만 명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취업자 감소 현상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지속했던 2009년 이후 10년 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