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배제는 개인과 개인 혹은 개인과 사회와의 연대가 허물어지는 현상
나이와 세대(世代)도 사회적 배제의 요인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기자가 얼마 전에 겪었던 일이다. 서울 시내에서 취재하다 식사도 하고 취재한 내용 정리도 할 겸 한 식당에 들어갔다. “어떻게 오셨어요?” 점심시간치곤 늦은 시간이었지만 식당을 방문한 손님에게 하는 인사치곤 낯설었다. “식사하려고요.” 이번엔 상대가 낯설어했다. 손님인데 오해했다는 무안함과 식당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방문했다는 어색함이 뒤섞인 듯했다.
그런 시선이 기자에게 식당을 잘못 찾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다른 손님들을 둘러보니 식당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거나,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거나, 혹은 음식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식당은 젊은 사람이 많이 찾는 SNS 명소였다. 기자는 머리가 허옇고 옷은 대충 편하게 입은 50대 중반의 아저씨였고.
그걸 깨닫는 순간 어쩌면 기자는 그곳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다른 50대들에게도 어색했던 순간과 장소가 있었나 물어보았다.
“단골 미용실이 있었는데 문을 닫아서 새로운 미용실에 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머리 자르러 왔다고 하니까 미용사가 좀 당황스러워했어요. 나를 어려워하는 것 같기도 했고요. 머리를 마음에 들게 잘라줘서 다음에 또 올 요량으로 명함을 부탁했는데 마침 떨어졌다고 하더라고요. 카운터에 명함박스들이 있었는데 그 미용사 것만 없었나 보다 했죠.”
경기도 성남에 사는 A씨(남, 55세)의 말이다. 그는 그 미용사가 자기를 무척 어려워하던 게 계속 떠올랐다고 했다. 그래서 명함이 있음에도 주지 않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A씨는 그 미용사가 자기를 나이가 많아 불편해한 것으로 보여 다음에는 다른 미용실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강남역 인근 ‘언덕길’에 맛집이 많다고 해서 친구들과 가봤지요.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만큼 전단을 나눠주는 사람도 여럿 있더군요. 그런데 그들은 우리 일행이 안 보이는 듯 그냥 지나치더니 뒤따라오던 젊은 사람들에게만 전단을 나눠 주더라고요.”
서울 서초구에 사는 B씨(남, 52세)의 말이다. 카페와 레스토랑 등 젊은 사람이 좋아할 만한 곳을 소개한 전단이라고 했다. 그와 일행은 그런 곳을 찾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분이 상해서 인근 영동시장으로 모임 장소를 옮겼다고 했다.
A씨와 B씨 그리고 기자는 어떤 일을 겪은 걸까. 오해한 걸까 아니면 그냥 자격지심인 걸까. 뭔가 섞이지 못하는 느낌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심리적인 요인일 수도 있지만 나이와 세대라는 요인으로 뭔가로부터 허용되지 않고 밀려나는 느낌이었다. 마치 젊은 사람들로부터 배제당하는 듯한.
사회적 배제, 배제하거나 배제당하거나
기자는 이런 사례들을 찾아보다 ‘사회적 배제’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경제학, 정치학, 교육학, 사회학, 복지학 등 많은 분야에 걸쳐 연구 주제가 되는 개념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정의한 ‘사회적 배제’는 “사회 구조적으로 다양한 영역에서의 박탈과 결핍, 불이익을 당해 사회·경제·정치 활동에 제대로 참여할 수 없게 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기본권마저 침해당하는 상황”을 말한다.
이 정의에 의하면 개인과 개인 사이의 연대가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수준 등의 이유로 허물어지는 것을 ‘사회적 배제’라고 한다. 또한, 개인과 사회(구조와 제도를 포함한)와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연대가 단절되거나 거부되는 현상도 ‘사회적 배제’로 본다.
‘사회적 배제’를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종교의 종류, 교육의 정도, 경제적 지위 등이 사회적 배제를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이’와 ‘세대’도 ‘사회적 배제’에 크게 작용하는 요인이 된다고 보았다. 그 현상도 물리적인 배제로부터 심리적 배제까지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50대들이 만약 그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나이나 세대라서 그들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았다면 ‘사회적 배제’의 기제(機制)가 어느 정도 작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시작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더 들고 고령이 되어갈수록 이러한 사회적 배제를 경험할 기회가 더 많을 수도 있다.
고령사회를 지나 초고령사회로 달려가는 우리나라에서는 노인 세대의 ‘사회적 배제’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는 학자들이 많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박능후 경기대학교 교수는 그의 과거 연구에서 “중고령 가구주의 사회적 배제는 경제, 사회참여, 고용, 건강 등 여러 영역에서 일어”난다고 분석했다.
대전대학교 행정학과 유현숙 교수도 “노인의 사회적 배제는 정치·경제·사회·심리 등 다양한 측면에서 나타날 수 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학자들은 이처럼 노인 세대의 사회적 배제를 우리나라에 넓게 퍼진 현상으로 본다. 그리고 여러 요인으로 인해 사회적 관계망이 어그러지는 데서 사회적 배제의 원인을 찾는다.
전병주는 그의 사회복지학 박사 논문에서 “노인들이 사회적 배제를 많이 경험하면 생활만족도가 감소하지만 사회적 배제가 생활만족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사회적 관계망이 완충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노인 세대의 사회적 배제는 젊은 시절부터 쌓아온 사회적 관계망이 허물어지며 생기지만 나이가 들며 새로운 사회적 관계망을 구축하며 극복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또래끼리가 편한 건가
“생각해 보니 친구와 술자리를 가질 때도 그 집 분위기를 먼저 살피게 되네요. 젊은 사람이 많으면 왠지 들어가기가 껄끄럽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또래 많은 집으로 들어가게 되죠.”
위에서 미용실 경험을 이야기한 A씨의 말이다. 그는 젊은 사람뿐 아니라 노인들이 많은 식당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는 노인들이 많은 곳은 왠지 시끄럽고 불편한 분위기일 거로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유흥가도 세대별로 지역이 나뉜 것 같아요. 강남역 인근만 하더라도 젊은 사람들 많은 지역과 직장인들 많은 지역이 다르잖아요. 그리고 중장년들이 주로 가는 곳도 다르고요.”
위에서 전단 경험을 이야기한 B씨의 말이다. 물론 A씨와 B씨는 그들 세대를 대표하지도 않고 의견을 통계로 실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이와 세대로 뭔가 단절되거나 배제되는 상황을 경험한 것은 사실이다. 기자는 50대로 이뤄진 여러 커뮤니티에서도 이런 경험들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정치권은 이러한 현상을 세대 간 갈등으로 몰며 정략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한 세대(世代)가 다른 세대를 불편해하는 것이다. 그 다른 세대가 아래 세대일 수도 있고 윗세대일 수도 있다. 나아가 세대의 다름 때문에 상대를 배제하거나 오히려 배제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자기 세대끼리 뭉치게 되는지도 모른다.
학자들의 분석이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배제는 현재 작동하고 있고, 배제당하는 측은 새로운 사회관계망 구축으로 맞서고 있다. 이런 현상들이 어쩌면 우리 사회를 더욱 단절로 끌고 가는 것은 아닌 걸까.
뉴스포스트는 ‘사회적 배제’ 때문에 드러난 현상들을 계속 들여다볼 예정이다. 다음 기사에서는 서울 종로 '탑골공원' 인근에만 10여 곳의 이발소가 있는데 왜 그렇게 많은 이발소가 한 지역에 들어섰는지 찾아가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