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 공군 중사 사망 사건 파장 거세
군 성폭력 사건 지속...“군사법원 제도 바꿔야”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군 내부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공군 여성 부사관이 성폭력 피해 후 스스로 목숨을 끊어 여론을 들끓게 했다.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낮은 처벌 수위 때문에 군 성폭력 문제가 근절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이성용 공군참모총장 사의 수용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4일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이성용 공군참모총장 사의 수용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4일 이성용 공군 참모총장은 이날 오후 문자 메시지를 통해 낸 입장문에서 “본인은 일련의 상황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사의를 표명한다”며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사과드린다. 무엇보다도 고인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며 유족분들께 진심 어린 위로의 뜻을 전해드린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총장의 사의를 즉각 수용했다.

이 총장의 갑작스러운 사의는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 사건과 관련됐다. 지난달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여군 이모 중사가 상급자 남군 장모 중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바 있다. 장 중사는 회식 후 귀가 차량에서 이 중사를 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장 중사와 동료 부사관들은 이 중사를 회유하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해자를 처벌해달라는 이 중사의 목소리는 군 내부에서 철저히 은폐됐다. 충격에 빠진 고인은 여러 차례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하지만 정신적 피해를 견디다 못해 남자친구와의 혼인신고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중사는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가족에게 보냈다.

이 중사의 안타까운 사건이 알려지자 공군 내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졌다. 서욱 국방부 장관과 문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엄정한 처리를 당부했다. 군 검찰은 오늘 초동 부실 수사 의혹을 받는 공군 군사 경찰단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했다.

지난 2014년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파이낸스센터 앞 광장에서 군 성범죄 피해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오 대위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014년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파이낸스센터 앞 광장에서 군 성범죄 피해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오 대위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오 대위 사망 8년 후에도 바뀌지 않은 軍

공군 중사 성폭력 사망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군 내부에서도 부랴부랴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여론은 냉소적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군부대 성폭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3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육군 여성 장교 오모 대위가 그랬고, 2017년 해군에서도 A모 대위가 죽음을 택했다.

육군 15사단에 복무하던 여군 오모 대위는 직속상관인 노모 소령으로부터 성추행과 구타 등 가혹행위를 당하다가 지난 2013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 대위는 자신의 일기장과 유서에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자신의 심경을 그대로 남겼다. 이 사건은 이른바 ‘오 대위 사건’으로 명명돼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오 대위 사망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2017년에는 해군에 복무 중이 여성 해군 대위가 대령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모 대령은 회식 후 성관계를 맺었다면서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혐의를 부인해 공분을 샀다.

매스컴을 타지 않은 성폭력 사건은 더 많았다. 국방통계연보에 따르면 2007년 발생한 전체 범죄유형별 심판사건 현황 2,918건 중 성범죄는 73건으로 전체의 약 2.51%였지만, 2016년에는 3,185건 중 성범죄가 288건으로 9.04%를 차지했다. 10년 사이 군 내부 성범죄 건수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지난 2일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사건의 피의자 장모 중사가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일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사건의 피의자 장모 중사가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軍 성범죄, 법원까지 바꿔야 근절

해마다 군 성범죄 문제는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지만, 근절되기는커녕 오히려 범죄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 군 성범죄 문제의 원인에 대한 시각은 다양한데, 대표적으로 낮은 형량과 폐쇄성 등이 거론되고 있다. 원인들은 한데 뭉쳐있다. 군 특유의 문화와 폐쇄성이 낮은 처벌 수위로 이어지는 것이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방부에서 받은 통계를 보면 2015년부터 2020년 6월까지 군 형사사건으로 입건된 성범죄 사건 총 4,936건 중 기소는 2,173건(44%)이었다. 같은 기간 성범죄 사건의 1심 선고 기준 실형 비율이 각각 육군 10.3%, 해군 10.5%, 공군 9.4%로 고작 10건 중 1건 꼴이다. 집행유예 비율은 각각 실형보다 3~5배 높다.

이 때문에 현행 군사법원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움직임도 나온다.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군사법원법 개정안은 군 고등군사법원을 폐지하고 국방부 장관 소속의 군사 항소법원을 신설해 항소심을 이관하는 내용을 담았다. 현재는 1심과 항소심은 각각 보통 군사법원과 고등군사법원이 관할하고 있다.

민 의원은 “군사법원이 그동안 군내 법질서 유지와 엄정한 군 기강 확립 등에 그 역할을 다해오면서도 폐쇄성에서 기인한 제 식구 감싸기식 판결과 솜방망이 처벌 논란 등으로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았다”며 “궁극적으로 군의 특수성과 군 장병의 인권을 두텁게 보장하고 독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한 군 사법 체계 확립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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