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우울증 환자 중 34%가 50대와 60대
숨기기보다는 적극적인 치료와 활발한 신체 활동 필요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중견기업 임원인 55세 김모씨는 한때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회사에 가도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협력업체 관리를 핑계로 출근하자마자 외근을 나가도 사람을 대하기가 두려울 때가 많았다. 혹시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낌새를 느낄까 봐 사람을 더욱 피하게 됐다.
김씨의 이런 증상은 수면 이상으로부터 시작됐다. 어느 날부터인가 잠들기 어렵고 잠들었다가도 쉬이 깬다. 시계를 보면 새벽 한 시나 두 시 경이다. 그때부터는 잠이 달아난다. 잠이 깬 채로 혹은 선잠이 든 채로 창밖이 밝아오는 걸 느끼는 날이 계속됐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 생활에 영향을 끼쳤다.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매사에 집중할 수가 없다. 매일 하던 일이 하기가 싫어졌고 실수도 잦아졌다. 급기야는 중요한 외부 미팅이 두려워 펑크를 내고 말았다. 동료가 나서 잘 수습했지만 반복되면 안 될 실수였다.
김씨는 이런 사정을 가족에게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다만 친구와 술자리에서 털어놓았다. 김씨의 친구는 자기도 그랬다며 그에게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권했다. 김씨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남성 갱년기와 우울증
남성들은 50세를 넘기며 우울감을 느낄 때가 많다. 이 변화는 어쩌면 갱년기에 접어드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갱년기를 겪는다. 다만 여성과 달리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남성 갱년기는 40대 이후부터 서서히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떨어지면서 주로 50~65세쯤 여러 징후를 보이며 나타난다. 여러 증상 중 하나가 우울감이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분비가 감소하면 우울증이 유발될 수 있다고. 이러한 신체 변화뿐 아니라 외부 환경 변화도 우울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울증은 일상의 감정이 아닌 치료가 필요한 병이다.
경제 활동을 하는 남성들이 50대로 접어들면 은퇴라는 화두가 눈앞에 다가온다. 가족 부양은 물론 노후 대책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한 경제 문제에 대한 고민은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온다. 위에서 언급한 김씨도 이러한 압박들을 혼자 견디다 우울증까지 발병했다.
201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 50대 남성에게는 노후생활과 자녀교육, 일자리 등의 걱정거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지금의 일자리 유지는 물론 노후 대책까지 걱정해야 하는 현실을 담았다. 그 속에는 높은 주거비, 자녀교육과 부모부양 등을 우려하는 모습도 담겼다.
이들 50대는 취업난으로 갈수록 독립이 늦어지는 2030대를 부양하는 부모 세대라는 점, 그리고 의료 시스템의 발달로 수명이 늘어 부모까지 부양해야 하는 늙은 자녀 세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 분명하다. 우울증의 잠재적 위험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우울증과 자살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은 ‘2021 자살예방백서’를 지난 7월 발간했다. 자살예방에 대한 통합적 정보를 제공하려는 목적에서다.
백서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 자살률은 연령대가 높을수록 증가해 80세 이상이 가장 높았다. 하지만 자살사망자 수는 50대가 2837명으로 가장 많았다. 성별로는 남성이 70.5%로 여성 29.5%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2017년 기준 10만 명 당 23.0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고, OECD 평균인 11.2명보다 2.1배 높았다.
남성들의 자살률이 여성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백서에서는 50대 중년 남성의 우울증을 꼽는다.
중년 남성 우울증은 2008년 이후 꾸준히 증가했다. 2017년 발표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50대 남성 우울증 환자는 2008년 이후 2016년까지 꾸준히 증가했고, 연간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남성 환자 중 50~60대 환자가 전체에서 34%를 차지했다.
백서는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영향이 본격화되는 2~3년 이후 자살 증가 가능성을 예측했다.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저는 다행히 초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어서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무엇보다 잠을 편히 잘 수 있어서 좋습니다. 병원에서는 조만간 약을 줄여나가자고 했어요.”
위에서 언급한 김씨의 말이다. 그도 처음에는 병원에 가는 것을 머뭇거렸지만 친한 친구의 우울증 치료 경험을 듣고 용기를 내 병원 문을 열었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이 생기면 초기에 상담과 치료를 받는 게 무척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의사 선생님은 감기처럼 생각하라고 하셨어요. 마음의 감기, 그러니까 누구나 걸릴 수 있는 흔한 병이요. 하지만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부작용으로 큰 병으로 커질 수 있는 병이요. 병원 대기실에 사람이 많더라고요. 우울증 앓는 사람이 많아서 놀랐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기도 했어요.”
김씨는 발병 후 한동안 회사 가기가 두려웠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주말에 즐겼던 등산도 더욱 열심히 하고 있다고. 전문가들 또한 평소와 같은 생활을 유지하고 신체 활동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김씨의 주치의는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우울증은 약물치료로 좋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스스로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약물치료, 정신치료, 인지 치료 등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일상생활에 적응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울증 경험자들도 걷기나 조깅, 수영이나 등산 등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이나 활발한 신체 활동을 권했다. 그리고 햇볕을 많이 쬐는 것도 우울 증상 줄이는 것에 큰 도움이 된다고.
그래도 우울감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혼자 견디려 하지 말고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