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이 급한 저소득층에게 치아 치료는 사치
남아 있는 치아가 보여주는 그 사람의 인생사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볼살이 유독 홀쭉하게 들어간 사람들이 있다. 야위어서 그럴 수 있지만 어금니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어금니 한두 개 정도가 빠진 것이 아니라 양쪽 어금니들이 위아래로 여러 개가 빠지면 볼이 쏙 들어가 인상까지 바뀐다. 만약 앞니들이 없다면 입술이 입안으로 말려 들어가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흰머리가 나고 주름살이 생기듯 치아와 잇몸도 늙는다. 게다가 하루에도 여러 번 저작(咀嚼) 활동을 해야 하는 치아는 어쩌면 평생 혹사당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관리를 소홀히 한 치아는 중장년을 거치며 하나둘 빠지기 시작한다.
물론 자연치가 빠져도 차선책이 있다. 임플란트나 브릿지, 아니면 틀니라도 하면 된다. 그런데 해결책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치과가 문턱이 높기 때문이다.
‘치과’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를까? 통증과 비용 아닐까. 이를 깎는 드릴 소리는 물론 고통을 줄이기 위해 놓는 마취 주사마저 통증을 부른다. 하지만 통증보다 무서운 것이 어쩌면 비용일지도 모른다. 간혹 마주친 치아가 부실한 사람들은 치과 치료를 감당할 만한 경제적 여력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치아 상태가 보여주는 경제적 지위
청계천 인근에서 자영업을 하는 70세 하모씨는 점심때 홀로 식사한 지 오래다. 먹을 수 있는 메뉴도 별로 없거니와 식사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동료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가 이가 안 좋아서 그나마 씹기 편한 생선 찌개나 죽 종류를 먹어요. 젊었을 때는 회를 좋아해서 자주 먹었었는데 지금은 푹 익힌 것만 먹고 있죠. 가족들 외식할 때도 모두 제 눈치만 살펴서 미안하기만 합니다.”
하씨가 물을 마시려고 마스크를 벗었을 때 본 얼굴은 어금니 부분이 쑥 들어간 모습이었다. 그에 따르면 양쪽 위아래 어금니들이 거의 빠졌다고. 그는 50대 후반부터 이가 빠지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다른 쪽으로 씹어서 불편한 것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성한 이마저 나빠지고 그렇게 한두 개씩 빠지다 보니 지금은 대여섯 개가 빠졌다고.
“두어 개 빠졌을 때만 해도 크게 불편한 줄 몰랐어요. 성한 이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한 세 개 빠지니까 씹는 게 영 불편해지더라고요. 그렇게 되니 치과에 가게 됩디다. 치과의사는 임플란트하라고 하는데 여러 개를 하려니 비용이 많이 들어서 엄두가 나지 않았죠. 그러다 계속 빠졌고요.”
그에게 지난 수년간은 가게 임대료 벌기도 힘든 상황이어서 치과 치료에 지출할 비용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나마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써야 하는 상황이 다행이라고. 하씨는 볼살이 들어간 얼굴을 마스크로 가릴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하지만 치아가 많이 없으면 발음이 새고 의사 전달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56세 강모 목사처럼.
“이가 여러 개 없다 보니 설교할 때 신경이 쓰입니다. 저는 제대로 발음하려고 노력하지만 간혹 발음이 샐 때가 있거든요. 진지한 분위기가 싸해지는 거 같아서 등에 땀이 흐를 때가 많습니다.”
강목사는 조그만 교회에서 시무한다. 그의 가족과 교인 몇몇이 다니는 그야말로 개척교회다. 젊었을 때는 다른 교회의 전도사와 부목사로도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활비도 제대로 조달하지 못하는데 치과 치료에 들어갈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아파도 임시방편으로 넘기다 하나둘 빠지기 시작했다고.
소득 수준에 따라 건강 관리도 격차를 보일까? 아마도 그런 것 같다. 물론 건강보험이 거의 모든 가입자에게 기본적인 건강 검진과 진료를 가능하게 하지만 저소득층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의료 서비스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치과 진료는 경제력에 따라 격차가 있는 분야이다.
전체 진료비에서 건강보험 보장률은 64.2%지만 치과 진료비는 32.15%라고 한다. 감기에 걸리거나 근육통이 생기면 동네 내과나 정형외과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받을 수 있지만 치과는 비용이 비싸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스케일링이나 간단한 충치 치료는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영구치가 상하거나 빠진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경제력이 받쳐준다면 치과에서 권하는 충전물로 채우거나 임플란트를 심으면 된다. 하지만 경제력이 여의치 않다면 그냥 놔두고 견딜 수밖에 없다. 저소득층에게 치아는 어쩌면 버틸 만큼 버티다 사라지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치아는 노인들의 고달픈 인생사를 목격한 증인일지도.
“여기에 오시는 어르신 중 이가 건강하신 분들은 거의 없을 거예요. 고기반찬이 나와도 반가워하지 않는 어르신이 많아요. 잘 씹지 못하니까요. 그냥 국에 말아서 잇몸으로 우물우물하다 그냥 삼키는 분들도 있어 보기에 안타깝죠.”
서울 종로의 어느 무료 급식소에서 들은 말이다. 탑골 공원 인근에서 노인들의 식사 모습을 지켜보니 시원하게 씹는 이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
한편 노인들의 치아 상태가 그들의 영양 상태를 보여주고도 있었다. 치아가 좋지 않아 보이는 노인들은 그렇지 않은 노인들과 비교해 체격이 왜소해 보이기도. 잘 씹지 못하니 영양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그런 걸까. 게다가 볼살까지 들어간 그들은 더욱 야위어 보이기도 했다.
여러 상황에 비춰보니 치아 상태가 그들이 속한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보여주는 듯했다. 어쩌면 치아가 계급장일지도 모른다. 치아가 빠져 그냥 두었든 혹은 임플란트를 심었든 소실된 치아 처치 여부가 그들이 속한 계층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관심’이 필요한 치아 건강
한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적 격차가 구강 건강 불평등”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소득 수준이 낮으면 치과 치료가 필요해도 치료를 늦추거나 포기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 젊을 때부터 이어지다 노년층이 되면 치아 상태가 총체적으로 나빠지게 된다. 경제적 지위가 벌어지듯 치아 건강도 격차가 생기는 것이다
제7기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의 평균 치아 개수는 15개였고, 가장 높은 5분위의 평균 치아 개수는 20.6개였다. 치아 상태가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엿볼 수 있는 척도로도 작용할 수 있는 근거다.
치아 건강은 영양 상태까지 좌우한다. 치아가 부실하면 식사 자체가 고통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씹지 못해 만성 소화불량에 걸린다거나 영양실조에 걸리기도 한다.
치아가 많이 없으면 인상까지 바꾼다. 어금니가 많이 빠지면 볼살이 들어가고 앞니가 많이 빠지면 입술이 말려 들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발음까지 새어 의사 전달이 불편할 수도 있다. 이정도가 되면 사람들 앞에 나설 자신감도 떨어지고 어쩌면 직종에 따라 일터에서 불리한 대우를 받을지도 모른다.
치아 건강은 관심이 필요하다. 어렸을 때는 부모의 관심이, 자라면서는 본인의 관심이, 노인이 되면서는 자녀의 관심이 필요하다. 어쩌면 사회적으로도 관심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음식을 제대로 씹을 수 있는 것이 그 어떤 행복의 가치보다 소중한 가치일 수도 있으니까.
〈뉴스포스트〉는 치아 건강의 격차로 생긴 현상들을 계속 살펴볼 예정이다. 또한 치아 소실에 대처하는 여러 방법도 제시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