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에 유행하는 신조어, 기성세대에겐 생소
논리를 찾기 보다 있는 그대로 이해하며 소통하길...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명절이 다가온다. 누군가에게는 가족과 친지들을 만날 수 있어 기다려지는 날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족과 친지들을 만나기 때문에 부담이 되는 날일지도 모른다. 

명절이 부담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서로의 문화가 충돌하며 생기는 충격이 가장 크지 않을까. 특히 상처가 되는 말을 주고받는다거나 서로 이해하지 못할 생경한 단어가 오간다면 불편한 자리가 될 수도 있다.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 시즌2의 한 장면. 신혜선 배우가 '어쩔 티비' 에피소드를 연기하고 있다. (사진: 쿠팡플레이 유튜브 캡처)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 시즌2의 한 장면. 신혜선 배우가 '어쩔 티비' 에피소드를 연기하고 있다. (사진: 쿠팡플레이 유튜브 캡처)

‘어쩔 티비’가 무슨 말이야?

카페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의도치 않아도 젊은 세대들의 말을 듣게 될 때가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젊은 주인공들은 그나마 정제된 언어를 쓰지만 실제 세상의 그들은 그들만 이해하는 언어를 쓰는 것 같다. 이런 경향은 10대나 초등학생들에게 특히 많이 보인다. 

최근에 ‘어쩔 티비’라는 말을 들어 본 사람 있을 것이다. 기자는 얼마 전 카페에서 학생들의 ‘어쩔 티비’로 시작하는 대화를 목격했다. 하지만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당최 이해할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검색을 해 보았고 관련 유튜브 영상이 많은 것에 놀랐다.

‘어쩔 티비’는 원래 10대를 중심으로 많이 쓰는 말이었다. 그런데 배우 신혜선이 쿠팡플레이 SNL코리아 시즌2에서 연기한 ‘어쩔 티비’ 영상이 큰 인기를 끌면서 20대들도 많이 쓰는 말이 되었다고.

‘어쩔 티비’는 ‘어쩌라고, 가서 티비나 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틀어막으며 더는 그 말을 듣기 싫다는 뉘앙스를 담았다. 어감을 들어보면 조롱의 의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 말이 유행하기 전에 ‘어쩌라고’가 오래도록 쓰였다. ‘어찌하다’에 ‘라고’를 붙여 ‘상대가 말한 것에 대해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용례로 사용한다. 상대의 말을 무시하거나 대답하기 귀찮을 때 주로 사용하는 말이었다. 

‘어쩌라고’는 어쩌면 부모들이 청소년 자녀들에게 한 번쯤 들어봤을 말이다. 때로는 맘에 들지 않는 인터넷 게시물이나 뉴스 기사에 다는 댓글로 이용되기도 했다. 

‘어쩔 티비’는 두 명의 화자 중 한 명이 시도하는 대화 종결법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대화 종결에 동의하지 않으면 말장난으로 이어진다. 때로는 자존심을 건 말싸움으로도 확대된다. 유튜브에는 ‘어쩔’ 뒤에 티비뿐 아니라 각종 전자제품 이름을 붙이며 소위 ‘어쩔 배틀’을 벌이는 영상이 많다. 

이 대화 혹은 놀이가 배틀인 이유는 ‘어쩔’이란 단어 뒤에 더 비싼 물건을 붙이는 사람이 이기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다. 어쩔 컴퓨터에는 어쩔 냉장고, 어쩔 청소기에는 어쩔 에어컨, 어쩔 면도기에는 어쩔 스타일러 등으로 이어진다.

때론 ‘저쩔’을 붙여 상대의 허를 찌르기도 한다. 어쩔 티비에 저쩔 티비로, 어쩔 세탁기에 저쩔 세탁기로.

배틀이 길어지면 구체적 브랜드까지 동원한다. ‘어쩔 다이슨 헤어드라이어’나 ‘어쩔 삼성 비스포크 냉장고’ 같은 식이다. 이기기 위해 여러 제품을 길게 늘여 붙이기도 한다. ‘어쩔 프리미엄 앱솔루트 청소기 원플러스 원에 사은품 전자 면도기’처럼. 

이 놀이에 어른들에게 익숙한 논리적 맥락을 갖다 붙일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어른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현상 그 자체로 바라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만의 언어에서 엿보는 세태

그런데 왜 ‘티비’나 보라고 할까. 그냥 말장난 같지만 어감으로는 분명 조롱하는 것도 같은데. 혹시 청소년들의 미디어 매체 이용 습관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미디어패널조사의 ‘2020년 미디어 다이어리’를 보면 우리나라 10대들은 TV보다 PC와 노트북, 그리고 태블릿과 스마트폰 이용 비중이 높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늘어난 비대면 학습이 포함된 결과이지만 요즘 청소년들의 미디어 매체 이용 습관을 엿볼 수 있는 통계다.

또한, 여성가족부의 ‘2020년 청소년 매체 이용실태조사’를 보면 청소년들의 인터넷 개인방송 및 동영상 사이트, 그리고 모바일 메신저 이용률이 93.0%가 넘고 지상파 TV 등 전통적 매체 이용률은 감소했다고 한다.

청소년들에게 콘텐츠를 감상하는 주력 매체로 텔레비전 대신 핸드폰이 뜨고 있었다. 그렇다면 TV는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구세대를 상징하는 매체인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자기들이 허용하는 문화의 범주가 아닌 것에 경계를 긋고 조롱하는 소재로 ‘티비’를 쓰는 것은 아닐까.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 시즌2의 한 장면. 신혜선 배우가 '어쩔 티비' 에피소드를 연기하고 있다. (사진: 쿠팡플레이 유튜브 캡처)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 시즌2의 한 장면. 신혜선 배우가 '어쩔 티비' 에피소드를 연기하고 있다. (사진: 쿠팡플레이 유튜브 캡처)

이런 어감도 느껴졌다. 상대방이 진지하게 접근하거나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듣기 싫다는 감정을 표출함과 동시에 에둘러 조롱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유튜브 동영상들을 보면 친구 사이에 많이 쓰기도 하지만 부모나 교사 등 어른들의 잔소리에 반응할 때 많이 쓰는 표현이었다.

‘됐으니까 가서 티비나 보시죠’ 하듯.

‘어쩔 티비’에서 요즘 세태도 읽혔다. 더 비싼 제품을 ‘어쩔’ 뒤에 붙여야 이긴다. 비싼 전자제품에 이어 자동차도 등장한다. 국산차에서 출발해 해외 유명 자동차 브랜드가 나오고 세계에서 몇 대 없는 드림카도 나온다. 요즘에는 아파트 브랜드까지 ‘어쩔 배틀’에 등장한다고. 말장난에 물질 만능 세태가 투영된 듯했다. 

젊은 세대의 은어, 그들의 문화

생각해 보면 5060 세대도 젊은이였을 때 그들의 어른들이 모르는 말을 주고받으며 유대감을 느꼈다. 그 어른들도 그들의 어른들이 싫어하는 말을 썼을 것이다. 전혀 다른 시대에 전혀 다른 문화를 접하며 자랐기 때문에 당연한 세태였을 지도 모른다. 지금 젊은 세대들이 그들만의 언어를 쓰듯이.

이번 설에 가족이 모이면 자녀 세대가 사용하는 말에 당황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반대로 자녀 세대도 어른 세대가 하는 말에 당황하고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말은 그 사람의 경험과 문화를 담고 있다. 지금과 같은 개인 위주의 세상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서로 다른 맥락의 언어를 쓰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만약 자녀나 손주에게 “어쩔 티비”라는 말을 듣더라도 당황하지 말자. 대신, 괜한 잔소리를 했구나 하고 웃고 넘어가 보면 어떨까. 명절을 어른 세대가 젊은 세대를 이해하는 날로 만들어도 의미가 클 것이다.

혹시, 요즘 젊은 세대가 많이 쓰는 말이 궁금하다면 아래 동영상을 클릭해 보자. 기사에서 언급한 ‘어쩔 티비’의 용례를 포함해 다양한 사례가 나온다. 맥락이 이해 되지 않더라도 그 흐름에 맞춰 감상하다 보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