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LP 구매자 중 2030 비중 40% 넘어, BTS와 블랙핑크도 LP 음반 발매
LP, 중년 위한 추억 팔이 상품에 머물지 않고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 돼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이사를 할 때마다 갈등을 불러오는 짐이 있었다. 책과 음반이다. 부피와 무게가 만만치 않은 그야말로 짐이었다. 책과 CD는 보관의 가치가 있는 것들 위주로 챙기면 되었다. 하지만 LP가 문제였다. CD로만 음악을 감상한 지 오래라 사용하지 않는 LP는 공간만 차지하고 먼지만 쌓여갈 뿐이었다.
그렇다고 버리긴 아까웠다. 마침 처가댁에 창고가 있어 거기에 보관해 왔다. 그렇게 20여 년을 잊고 지내다 지난 추석에 먼지로 뒤덮인 LP들을 다시 꺼내 집으로 가져왔다. 코로나19 이후 집에서 LP로 음악 감상을 하는 지인들이 부쩍 늘었는데 그 모습이 부러워서였다.
LP 자켓의 묵은 때를 벗기고 책장 빈자리에 꽂아 놓으니 조금은 흐뭇했다. 며칠 동안은. 그런데 20년 넘게 창고에 처박혀 있던 음반에서 소리가 제대로 나올까 궁금했다. 안타깝게도 기자의 오디오 세트에는 LP를 작동시킬 수 있는 턴테이블은 없다. 그래서 방법을 이리저리 찾아 보았다.
LP로 음악 감상을 하려면
LP로 음악 감상을 하려면 우선 LP 플레이어, 즉 턴테이블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앰프와 스피커만 추가하면 LP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만약 기자처럼 외부 기기를 연결할 수 있는 오디오 세트를 갖추고 있다면 턴테이블만 추가하면 된다.
턴테이블은 제조사와 사양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10만원 대의 보급형부터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고급형까지 나온다.
음악 감상은 돈이 드는 취미다. ‘하이엔드’ 급 오디오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넘어가기도 한다.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이 들어갈 수 있고, 감상실 벽과 바닥까지 보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위아래가 집으로 둘러싸인 공동주택이라면 이웃 간 갈등까지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물론 호주머니 사정에 맞춰 오디오 시스템을 꾸릴 수도 있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은 다음 발품을 팔아보면 어떨까. 서울 종로 세운상가나 용산 전자상가에 가면 ‘전축’이나 ‘오디오’라는 간판을 단 곳이 많다. 그곳에 문의한다면 예산에 맞춰 시스템을 짜줄 것이다. 혹시 신뢰가 가지 않는다면 같은 사양을 다른 가게나 인터넷에 물어보면 소비자 가격을 알 수 있다.
“인터넷에 올라온 새 제품들 가격은 거의 정해져 있어요. 그러니 다른 곳보다 조금이라도 싸게 불러야 하죠. 중고 제품은 품질이 중요한데 손님을 속이면 당장은 이익이지만 소문나면 여기서 장사 못 해요.”
세운상가에서 오디오를 취급하는 몇몇 점포 주인들 말을 종합했다. 그들은 앰프와 스피커, 그리고 턴테이블 등을 중고로 갖추면 저렴하게는 수십만원 선에서 LP 음악 감상을 시작할 수 있다고 전했다.
LP 음악 감상을 더욱 저렴하고 간편하게 즐기는 방법도 있다. 포터블 전축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턴테이블은 물론 앰프와 스피커까지 한 기기에 있는 일체형 오디오다. 컵라면 6개들이 상자 정도 크기라 편할 때 원하는 장소에서 LP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인터넷에 ‘포터블 턴테이블’을 검색하면 10만원 안팎의 제품들이 나온다. 실물이 궁금하다면 대형서점 전자기기 코너에서 구경할 수 있다. 그곳에서 소리가 어떤지 들어볼 수도 있다.
기자는 포터블 전축을 선택했다. 집에 있는 오디오 세트와 어울리는 턴테이블을 살까도 했으나 책정한 예산보다 비싸서 우선 보관해온 LP가 잘 나오는지 확인한 다음 후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LP를 구하는 방법
오랫동안 보관해온 LP 음반들은 소리가 잘 나왔다. 휘거나 훼손돼서 바늘이 튀는 음반도 있었지만 LP 특유의 따뜻한 소리는 그대로였다. 치직거리는 잡음도 정겹게 들렸다. 한 장 한 장 소리를 확인하다 보니 오래전 그 음반을 고르던 젊은 날 기자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했다.
혹자는 LP 음악을 듣고 싶을 때 LP 바에 가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아쉬운 대로 그 방법을 쓸 수도 있지만 LP 바는 음악 감상하기에 좋지 않은 환경이 될 때가 많다. 차라리 그 비용을 아껴 오디오 세트를 사는 게 나을 수도.
“장비 좋은 LP 바에 자주 갔었어요. 그런데 다른 손님들 술자리가 거나해지면 음악 감상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술값도 만만찮고 해서 턴테이블을 구했지요. 그러다 한 장 한 장 모으기 시작했고요.”
인터넷 LP 음악 동호회 어느 회원의 말이다. 다른 동호인들도 처음에는 집에 있는 음반들 위주로 감상했지만 차츰 취향에 맞춰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인터넷에는 중고 LP 마켓이 형성되어 있다. 거기에 올라온 LP들을 보면 가격이 다양하다. 파는 측도 있지만 때로는 특정 음반을 구하는 측도 있다. 수요가 가격을 만들고 있었다.
중고 LP를 오프라인에서도 구할 수 있다. 특히 빈티지 거리로 유명한 서울 동묘와 황학동에는 중고 LP 매장이 여러 군데 있다. 구경하면서 고르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1975년에 청계천 삼일아파트 근처에서 음반가게를 시작했어요. 예전부터 이 주변에는 중고 오디오와 음반을 파는 가게들이 많았지요. 그동안 많이 사라졌지만 요즘 LP가 인기 있는지 주변에 매장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어요.”
황학동 ‘돌 레코드’ 김성종 대표의 말이다. 그의 가게는 서울시에서 ‘오래 가게’로 지정했다. 명동의 회현 지하상가에도 유서 깊은 LP 가게가 많다. 동호인들은 클래식 음반을 찾을 때는 회현 지하상가로, 가요나 팝 음반을 찾을 때는 동묘나 황학동으로 가보라고 권했다.
아날로그 음악을 찾는 이유는
LP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지만 1990년대 중반 CD에 음반 산업의 주도권을 넘겨줬다. 하지만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 등 인기 아이돌 그룹이 LP 음반을 출시하기도 했고, 인디 뮤지션들도 LP 음반을 내고 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서인지 젊은 세대가 많이 찾는 한남동에 신용카드 회사가 운영하는 LP 음반 매장이 있을 정도다. 예스24에 따르면 LP 구매자 중 2030 비중이 2019년에는 27%였고 2021년에는 40.8%였다고. LP가 중년 세대의 추억을 파는 상품을 벗어나 젊은 세대의 감성까지 건드리는 문화가 된 것이다.
LP에는 많은 음악이 담기지도 않고 다루는 과정도 번거롭다. 그런데도 LP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CD나 디지털 음원이 음질은 깨끗하다. 하지만 LP는 특유의 따뜻한 소리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치직거리는 잡음마저 음악의 한 부분으로 들린다.
혹시 어딘가에 LP를 보관하고 있다면 다시 꺼내 들어보면 어떨까. 추워지는 겨울 따뜻한 소리가 집안을 데워줄지 모른다. 다가오는 설 여러 세대가 모인 자리에서는 어색한 분위기를 녹여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