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강원도의 오랜 골칫거리 ‘레고랜드’가 다시 화제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지난달 28일 법원에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 신청을 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강원중도개발공사는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사업을 담당했는데, 지난 2020년 강원도는 강원중도개발공사가 자산유동화기업어음 2050억원을 발행할 때 채무 보증을 섰다. 하지만 김 지사는 만기일을 하루 앞두고 ‘돈 못 갚겠다’는 식으로 나왔다.
김 지사의 발표에 채권시장이 얼어붙었다는 보도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지역 건설사들이 연쇄 부도가 난다느니, 제2 IMF가 온다느니 사실 확인도 어려운 우려들이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잊혀질만하면 주기적으로 매스컴을 달구는 레고랜드. 하지만 레고랜드 공사로 파묻힌 ‘중도 유적’은 김 지사 발 경제 위기에 매스컴에서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사업은 시작부터 삐그덕거렸다. 위치부터 문제였다. 2010년 강원도는 춘천 의암호에 위치한 중도(中島)에 유치하기로 했는데, 하필 이곳은 선사시대 유적의 보고(寶庫)였다. 섬 동쪽에는 철기시대, 서쪽에는 청동기 시대 유적이 분포하는 독특한 모양새다. 유구(遺構)만 신석기와 철기, 백제, 고려, 조선, 시기 미상까지 합해 약 3천 기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고랜드가 개장하는데 12년이나 걸린 결정적인 이유도 유적지에 있다.
애초에 중도 유적의 존재는 일제강점기 때 알려졌다. 레고랜드 조성사업이 시작되기 한참 전에 말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강원대학교와 국립중앙박물관 조사단에 의해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시작됐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한계도 컸지만, 나름의 발굴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유적 발굴은 레고랜드 지을 때 보다도 더뎠다. 2014년 레고랜드와 중도 유적 관련 이슈가 커지면서 발굴 조사가 수차례 더 진행됐지만, 사실상 그 이후 멈췄다고 해도 무방하다.
중도 유적의 존재는 여론의 무관심 속에 묻혔다. 다만 지역사회와 관련 시민단체 정도만 보존 운동을 지속해왔다. 자연스럽게 학계 차원의 연구 또한 더뎠다. 유적과 유물 규모에 비해 연구는 한참 부족하다고 해도 반론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때문에 누구도 중도 유적의 가치를 명확히 설명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중도 유적에 대한 무관심과 방치가 오늘날의 레고랜드 사태의 씨앗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우여곡절 끝에 레고랜드는 2022년 올해 어린이날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수천 년 역사를 제치고 개장했으니, 이왕이면 성공의 가도를 달리길 기대했다. 하지만 값비싼 이용비와 불편한 시설, 안전사고 문제가 속속 제기되면서 현재까지 약 70만 명의 관광객만이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간 수백만 명의 관광객 유치를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과였다. 그사이 유적 연구와 발굴은 물론 보존 상태에 대해서도 명확한 정보는 들리지 않는다. 이럴려면 왜 유적지를 방치했는지 누군가는 설명을 해야한다.
한편 레고랜드는 내년 1월부터 3월 23일까지 전면 휴장에 들어간다. 강원도발 채무불이행 사태와는 무관하다는 게 레고랜드 측 입장이다. 레고랜드 휴장과 더불어 중도 유적에 대한 관심 역시 휴지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은 현실이다. 여론이 흔들리는 채권 시장에만 목을 매는 사이 중도 유적은 레고랜드 조성기간보다, 어쩌면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또다시 수천 년의 긴 잠에 들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