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3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일명 ‘쥴리 벽화’가 사라졌다.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중고서점 외벽에 칠해진 쥴리 벽화는 이제 흔적도 없이 하얗게 덧칠됐다. ‘쥴리’는 국민의힘 유력 대선 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 씨를 둘러싼 미확인 소문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벽화는 ‘쥴리’로 보이는 여성의 얼굴과 함께 ‘쥴리의 남자들’, ‘영부인의 꿈’ 등의 문구가 그려져 있었다.
그림의 의도야 어떻든 간에 김씨에 대한 공격 메시지가 담겼음을 부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윤 전 총장의 부인인 김씨 앞에는 논문 표절 의혹과 모친 구속 등 유력 대선후보의 가족으로서 해명해야 할 사안들이 놓여있다. 하지만 벽화는 김씨가 국민 앞에 반드시 해명해야 할 의혹들에는 관심이 없다. 김씨가 윤 전 총장을 만나기 전의 사생활, 그것도 실제 사생활이 아닌 ‘지라시’ 수준의 소문에 대해서만 묻고 있다.
쥴리 벽화에 분노한 야권 지지층은 여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향한 낙서 공격을 시작했다. 그런데 공격의 상대가 이상했다. 이 지사가 아니라 부인인 김혜경 씨와 모 여배우와 관련 낙서가 줄을 이었다. 대선 마운드에는 윤 전 총장과 이 지사가 섰지만, 공격 대상은 후보들이 아닌 이들과 관련된 ‘여성’들이었다. 김씨에 대한 공격과 마찬가지로 확인되지 않은 사생활 의혹이 다수였다. 후보들 대신 주변 여성들이 대리전을 치르는 모양새였다.
유튜브와 SNS 등 온라인에서는 물론 벽화가 그려진 오프라인 장소까지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비슷한 내용의 벽화들이 전국 곳곳에 그려지기도 했다. 공격의 대상은 여전히 여성이었고, 내용 역시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사생활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한국여성변호사회는 “대선 주자 주변 여성들을 인신공격하고 모욕하는 여성혐오 표현이 각 정당의 정치적 결집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벽화가 지워진 이날까지 사태는 약 일주일 간 이어졌다. 하지만 내상은 공격 대상이 된 야당 후보가 아니라, 여당이 입었다. 전날인 2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무려 6주 만에 상승해 35.2%를 기록했다. 민주당은 1.5% 포인트 하락한 33.6%다. 국민의힘 여성 지지율이 3.5% 포인트 상승한 반면, 민주당은 4.6% 포인트 하락했다. 벽화 사태에 여성 지지층이 여권을 이탈했다는 분석이다.
‘쥴리 벽화’ 사태는 여야 지지층 사이 갈등을 폭발시켰을 뿐만 아니라 여성 혐오까지 부추겼다. 그렇지만 여성 개인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과 모욕이 더는 유의미한 정치적 공격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줬다. 민주당 역시 벽화 사태에 발발 초기에 유감을 표명하면서 빠르게 선을 그었다. 쥴리 벽화는 사라졌지만, 여성 혐오로 정치적 이득을 취할 수 없다는 하나의 증거로 남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