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최근 기자와 만나거나 통화한 전력업계종사자들은 정부의 한국전력공사 방만경영 지적에 대해 “잘못된 진단”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력업계종사자들은 한전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나 방만한 경영이 아니라, 전기요금 인상을 미뤘기 때문에 적자를 본다고 진단했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0일 ‘한전 때리기’ 포문을 열었다. 추 장관은 “한전 스스로 왜 지난 5년간 이 모양이 됐는지 자성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재부는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공개하며 한전과 자회사의 임원들에게 성과급을 반납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전력업계종사자는 “지난해 정부가 전기요금을 3원도 안 올리고 한전 방만경영을 지적하는 건 동문서답식 해결책”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전기요금 인상을 미룬 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또 다른 업계종사자는 “올해 한전이 30조 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는데, 얼마 되지도 않는 경영진 성과급 반납을 강제하는 건 본질을 놓친 것”이라며 “전기요금 인상 단행 전, 한전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는 게 아니냐”고 했다.

한전에 대한 정부의 지적은 지난 22일에도 이어졌다.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는 프랑스 파리 방문 중 “한전이 사실상 망가졌다. 민간기업이면 도산”이라며 “본인들 월급 반납하는 걸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탈원전 한다고 하면서 원전 운영을 최대한 지연시켜 적절한 비용을 가진 전력을 공급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원자력발전소 운영 ‘훼방’이 한전의 적자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정작 탈원전 기치를 내건 문재인 정부 5년간 원자력발전 가동률은 취임 이후 점차 올랐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2018년 66.5%였던 원전가동률은 2019년 71.0%, 2020년 74.8%, 2021년 76%로 우상향했다.

원전 운영 지연이 문제인 게 사실이라면, 70%대 원전가동률을 기록하면 한전은 적자를 봐야 한다. 하지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명박(~2013.2)·박근혜(2013.2~) 정부 때 75.7% 원전가동률을 기록한 2013년 한전은 53조 6924억 원의 매출액과 2629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반면, 90.3% 원전가동률을 유지한 2011년과 82.3% 원전가동률을 유지한 2012년 한전은 각각 3조 2952억 원의 영업손실과 2조 6928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난달 24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원전가동률은 82.5%에 달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한전은 1분기 역대 최고 적자인 7조 7869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전력산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글로벌 고유가로 인한 LNG 가격 상승 악재를 한전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전이 실제 발전사에 지급하는 전력도매단가(SMP)는 LNG 가격에 따라 결정된다. 전력업계는 원자력발전 가동률보다 고유가로 LNG 가격경쟁력이 상승한 걸 한전 적자의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한전이 전기를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만큼, 적자 폭이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이번 주 공공기관 10여 개를 ‘재무위험기관’으로 지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부채 비율이 일정 규모 이상이거나, 자체 지표상 ‘투자적격’ 기준 점수에 미달하는 기관을 재무위험기관으로 선정한다는 방침이다. 재무위험기관의 연간 출자 총량과 출연 규모 등을 집중관리하겠다고 한다. 전력산업계 관계자들은 한전도 물론 재무위험기관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동안 정부의 ‘한전 때리기’가 지속될 것이란 소리다.

한전은 물론 전력업계 관계자들 모두 결국 단계적인 전기요금 인상이 한전 적자를 해결하고, 국가 송·배전 안전망을 확보하는 방안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는 ‘잘못된 진단’으로 한전 때리기를 지속하거나, 전기요금 인상의 책임을 한전에 미루는 대신, 전기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솔직히 설명하고 이를 단행하는 결단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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