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올해 1분기 실적공시 한전...‘역대 최악 성적표’ 받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원전으로 전기요금 인상요인 완화”
윤석열 정부,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등 원전 활성화
한전 “단계적 전기요금 인상이 만성적자 현실적 해결책”
장현국 KEIC 전무 “원전 확충으로 전기요금 문제 해결 못해”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윤석열 정부가 원자력발전산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탈(脫)탈원전’을 정책 기조로 내세우면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뒤집기’에 나선 것이다.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사진)과 한전 임원들은 지난 9일 만성적자 해결을 위한 자구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한국전력공사 제공)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사진)과 한전 임원들은 지난 9일 만성적자 해결을 위한 자구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한국전력공사 제공)

새 정부의 원전 드라이브 기저에는 원전산업 활성화와 함께 한국전력공사(한전)의 전기요금 부담 감소가 있다. 단가가 저렴한 원전을 통해 한전의 전력구매 부담을 덜겠다는 게 목표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새 정부의 정책 기조와 어긋나는 모양새다. 한전 관계자는 13일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원전 활성화는 한전 만성적자 해소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1분기 실적발표한 한전...‘역대 최악 성적표’


한전은 13일 올해 1분기 영업실적을 공시했다. 이날 한전은 △매출액 16조 4640억 원 △영업손실 7조 7869억 원 △당기순손실 5조 9528억 원 등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한전이 올해 1분기에만 지난해 전체 영업손실 5조 8601억 원을 훨씬 웃도는 ‘역대 최악의 성적표’를 받은 것이다.

국제유가와 LNG 가격이 오른 탓이다. 글로벌 경기 회복세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불안정한 국제정세가 원자재 가격 오름세를 이끌었다. 특히 한전이 발전사에 지급하는 전력도매단가(SMP)의 기준이 되는 LNG 가격 상승이 한전의 적자 규모를 늘렸다는 분석이다.

13일 한국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4월 SMP(통합)는 1kWh당 202.11원이었다. 전력도매시장이 들어선 2001년 이후 SMP가 200원을 넘어선 건 처음이다. 2021년 1월 1kWh당 70.65원이었던 SMP는 같은 해 10월 107.76원로 100원을 넘어섰다. 이후 올해 △1월 154.42원 △2월 197.32원 △3월 192.75원 등을 기록하다 지난달 200원을 넘어섰다.

통상 SMP가 100원을 넘으면 한전은 전기를 팔수록 적자를 본다. 한전이 전기를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구조가 되는 까닭이다. 금융정보기업 에프앤가이드는 한전의 올해 영업손실 규모를 17억 4723억 원으로 예상했고, 하나금융투자는 한전이 30조 3003억 원의 적자를 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채권 발생액도 문제다. 운영자금이 부족한 한전은 지난해 11조 7000억 원의 채권을 발행했다. 한전은 올해만 15조 원이 넘는 회사채를 발행했다. 4월 말 기준 한전의 총 차입금은 51조 5000억 원 규모다.

한국전력공사법은 한전의 사채발행액을 자본금과 적립금을 더한 금액의 2배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른 한전의 사채 발행한도는 91조 8000억 원이다. 업계는 만성적자를 해결할 묘수가 없다면 한전이 상반기 중 채권발행 한계치에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악의 경우 한전이 유동성 문제로 전력시장에서 전기를 사오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만성적자에 대한 한전 내부의 위기감도 팽배하다. 발전업계에 따르면 지난 9일 정승일 한전 사장과 주요 임원 수십 명은 한전 나주 본사에 모여 적자 개선을 위한 자구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해외 석탄발전사업 구조조정 △자회사 지분 매각 △국내 부동산 매각 등 대책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국가 블랙아웃 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가 현물출자 등을 해야 한다면 결국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전 확대로 전기요금 인상요인 완화한다지만...한전 ‘글쎄’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날 이 후보자는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의 주요 수단인 원전을 합리적으로 활용하고 국내 원전 생태계의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날 이 후보자는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의 주요 수단인 원전을 합리적으로 활용하고 국내 원전 생태계의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는 지난달 28일 서울 통의동 기자회견에서 한전 개혁 방안에 대해 밝혔다. △전기요금 원가주의 △한전 독점판매 구조 개방 등 내용이다. 인수위는 전기요금 원가주의 요금 원칙을 확립하고 전기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키우겠다고 했다. 또 전력구매계약(PPA) 허용범위를 확대해 그동안 한전이 독점판매했던 전력시장 구조를 개방하겠다고도 했다.

이날 박주헌 전문위원(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은 한전의 만성적자에 대해 “잘못된 전기요금 결정 정책 관행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차기 정부가 원전을 적정 비중으로 유지하고 확대하기로 선회하기 때문에 전기가격 인상요인이 크게 완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전의 만성적자 해결을 위한 전기요금 인상요인을 원전 활성화로 완충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1일 정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서 신한울 3·4 착공 시점을 오는 2025년 상반기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 정부가 신한울 3·4호기의 건설 재개를 위해 에너지기본계획과 전력수급기본계획 등에 관련 내용을 반영하는 것이다. 또 정부는 내년 고리2호기와 고리3호기의 계속운전 운영변경 허가도 신청한다. 운영허가가 만료되는 원전의 계속운전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원전 활성화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요인 완충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원전 활성화가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본다”며 “원전만이 아니라 신재생에너지와 함께 합리적으로 에너지믹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기술적으로 신재생에너지의 단가가 계속 저렴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전의 만성적자를 해결하고 국민에게 미래 부담을 전가하지 않기 위해선 결국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며 “인상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단계적으로 올리는 게 현실적인 방안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발전산업계 전문가들도 단계별 전기요금 인상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라는 데 입을 모았다. 장현국 KEIC 전무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해외 주요 국가들 대비 한국의 전기요금 수준은 상당히 낮다”며 “역대 정부 모두 전기요금 현실화를 주장했지만 여러 정치적 고려로 실제 인상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이어 “현재로선 원전 단가가 저렴한 게 사실이지만, 원전 확충만으로 전기요금 인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며 “한전 만성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선 분기별로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게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본다”고 제언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문재인 정부 당시 한전은 전기요금 인상안을 제출했지만 정부는 “코로나19 장기화와 물가상승률 등으로 국민 생활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며 인상을 유보했다. 지난해 한전은 정부에 3.0원 인상안을 제출했다. 실제 전력단가는 1kWh당 29.1원이 올랐지만, 직전 요금 대비 3원까지만 변동이 가능한 현행법상 조정안 최대치인 3.0원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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