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조업의 상징 디트로이트(Detroit), 도시화 문제로 산업도 꺾여
범죄와 도심쇠퇴 등 사회적 문제 겪은 영·미·일, 도지새생사업에 박차
인구감소와 고용·소득 줄어든 한국...선진국 고질적 도시화 문제 반복
박근혜 정부 제정한 ‘도시재생법’ 한국도 이제 도시재생 나서야 할 때

한국경제의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른 부동산PF 위기에 10년 묵은 도시재생법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금리인상과 원자재값 상승으로 대규모 부동산PF을 일으키기 어려워져 1군 건설사들조차 서울 노른자위 정비사업을 마다하면서다. 단순히 물리적 도시정비가 아닌 도시쇠퇴의 근본적인 처방을 제시하는 도시재생, 뉴스포스트는 3부에 걸쳐 국내외 도시재생의 역사와 현재를 짚어본다 - 편집자주

도쿄 시부야 Scramble Crossing. (사진=Wikimedia Commons)
도쿄 시부야 Scramble Crossing. (사진=Wikimedia Commons)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인류사에서 도시재생이란 개념이 등장한 지는 수십 년에 불과하다. 산업혁명 이후 등장한 대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념인 까닭이다. 가장 먼저 도시재생을 추진한 국가는 제조업 중심의 산업발전을 영위했던 영국과 미국이다.

이후 자동차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제조업 강국으로 떠오른 일본이 미국식 도시재생 제도를 들여왔고, 한국도 2013년 도시재생법을 제정해 쇠퇴를 맞이한 도시의 문제 해결 방법론을 마련했다. 올해 1월 국토교통부는 도시재생법에 따라 제2차 국가도시재생 기본 방침을 공고해 향후 10년간의 도시재생 전략을 새로 수립했다. 부동산PF 위기와 제2차 도시재생 기본 방침 시행으로 국내 도시재생 사업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영·미 성공 가져온 도시화의 이면 ‘도시쇠퇴’


영국과 미국은 1950년대 도시화의 절정에 이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며 전쟁에 동원됐던 청년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산업의 역군으로 일하면서다. 당시 영미는 제조업의 꽃을 피우며 글로벌 산업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미국 자동차 제조업의 상징 디트로이트(Detroit)의 1910년대 캠퍼스 마이루스 공원(CampusMartius). (사진= Wikimedia Commons)
미국 자동차 제조업의 상징 디트로이트(Detroit)의 1910년대 캠퍼스 마이루스 공원(CampusMartius). (사진= Wikimedia Commons)

영미 제조업 발달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도시가 미국의 디트로이트(Detroit)다. 현재도 미시간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디트로이트는 동북부 지역의 항구도시이자, 다리 하나를 두고 캐나다 온타리주와 왕래할 수 있다. 수륙교통을 모두 완비한 천혜의 산업도시인 셈이다.

하지만 산업도시 디트로이트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1950년대 184만 9568명으로 인구수 최고점을 찍은 뒤로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 디트로이트의 인수수는 2016년 기준으로 67만 2795명이다. 수십 년 사이 인구수가 약 1/3 토막이 난 것이다. 인구뿐만 아니라 도시의 경제도 위기를 맞았다. 2009년에는 디트로이트자동차산업을 상징하는 제너럴모터스(GM)가 미국 정부에 파산보호를 신청하기도 했다.

디트로이트를 위시한 영미 산업도시들의 추락 배경에는 인구감소와 경제성장 정체 및 쇠락 등 도시화 문제, 그리고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아시아 제조업의 성장이 있었다. 1950년대 시작된 영미 대도시들은 무분별한 교외화 현상을 겪는다. 인구중심이 도심부에서 교외로 이동하며 통근과 수송에서 에너지 자원이 낭비되고, 공해와 교통체증 등 도시화의 문제를 일으켰다. 

그 결과 상업기능이 쇠퇴하고 기반시설 노후화 도심공동화 현상이 발생했다. 범죄와 같은 사회적 일탈, 고용과 소비 감소, 주거환경 및 주택의 물리적 노후화 등 다발적인 도시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 틈을 새로운 자동차 강국으로 떠오른 일본이 파고들며 가격경쟁력을 잃은 산업부문도 쇠퇴했다. 그 뒤 제조업으로 성장한 일본 도시들도 한국과 중국 등 도시화 및 산업 후발주자들의 거센 추격으로 영미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된다.


폐허에서 10대 경제강국으로...고도성장 이룬 한국도 영·미·일 선례 따른다 


1950년대 6·25전쟁이 끝난 후 한국은 지난 수십년간 폐허에서 2021년 경제규모 기준 세계 10대국에 들어가는 기적을 일궜다. 그 기저에는 앞선 영미 선진국과 일본 등의 사례처럼 자동차와 조선, 반도체 등 제조업 육성과 그로 인한 대도시 형성, 도시로 유입되는 인구증가가 있었다.

하지만 대도시 중심의 인구(人口)와 인재(人材)로 성장한 한국도 영미 선진국과 일본 등과 마찬가지의 운명을 맞고 있다. 고질적인 도시화 문제와 교외 지역으로의 인구유출, 그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 증가와 주거환경의 악화, 도심부 쇠퇴로 인한 양극화와 범죄율 증가 등이 대표적이다. 

그간 한국의 도시개발 정책은 도시화와 산업화 기반 확립으로 도시의 기능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다. 고밀도의 고층 아파트와 주상복합 건물 개발로 주거와 상업지구 공급에 주력했다. 이는 생활편익을 높였지만, 대도시 주변의 난개발과 교외화 문제를 일으켰다. 또 신도시와 신시가지 개발로 기존 도시의 인구유출 문제도 발생했다.

한국의 성장을 이끈 도시화 역시 도시가 성숙단계에 이르러 근본적인 문제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국민생활안전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범죄피해율은 인구 10만 명당 △2016년 3555.7명 △2018년 3678명 △2020년 3806명 △2022년 6438.7명 등으로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소득 양극화도 심화하고 있다. 통계청의 ‘2023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득 1분위~3분위의 3분기 월평균 소득 증가율은 같은 기간의 물가상승률 3.1%보다 낮았다. 반면 상대적 소득이 높은 4분위(624만 7000원)와 5분위(1084만 3000원)는 각각 5.0%, 4.1% 증가했다.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인 도시, 도시재생으로 해법 모색해야


영국과 미국, 일본 등 한국에 앞서 도시쇠퇴와 이로 인한 제조업 경쟁력 상실, 산업 역동성 저하 문제를 겪었던 국가들은 앞다퉈 도시재생에 나섰다. 대규모 재개발과 재건축 등 물리적인 환경정비 기조를 탈피해 지역 커뮤티니의 보전하고 사회경제적 관점을 동시에 고려하는 도시정비에 나선 것이다. 

영미와 일본의 도시재생의 중심에는 원주민의 지속적인 거주권을 보장하고, 지역의 사회문화를 보전한다는 개념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기성시가지 내 근린주구 도시재생 사업이다.

미국은 1960년대 후반부터 연방정부의 주택도시개발청(HUD)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기존 도시의 정체성과 사회문화적 환경을 보전하는 데 방점을 두는 도시재생 사업에 나섰다. 메사추세츠주의 대도시 보스턴과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등이 해당 사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영국도 1998년 중앙부처 내 근린재생국 주관으로 커뮤니티뉴딜기금(NDC)를 조성해 도시환경 쇠퇴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지역활성화를 위한 지도자와 협력사 양성, 지역주민과 지자체, 기업 등의 파트너십을 지원해 도시재생의 방법과 방향을 논의한다. 대표적인 성공사례로는 맨체스터 동부지역의 재생사업이 있다. 

일본 우스키시(臼杵市) 아줄레주 벽화. 우스키시는 에도시대 말기 1868년 저장고로 사용하던 양조장을 도시재생사업 일환으로 개축해 갤러리로 재구성해 개방했다. 창고 외부와 내부에 장식된 아줄레주(타일벽화). (사진= Wikimedia Commons)
일본 우스키시(臼杵市) 아줄레주 벽화. 우스키시는 에도시대 말기 1868년 저장고로 사용하던 양조장을 도시재생사업 일환으로 개축해 갤러리로 재구성해 개방했다. 창고 외부와 내부에 장식된 아줄레주(타일벽화). (사진= Wikimedia Commons)

영미에 비해 후발주자인 일본은 2011년 종합특별구역법을 제정해 특정 지역의 도시재생을 긴급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전국도시재생모델사업은 우스키시(臼杵市)의 ‘역사적 거리 풍경 살린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가 있다. 해당 도시재생 사업 이후 지방소도시였던 우스키시의 관광객은 2000년 45만 명에서 2002년 58만 명으로 28% 이상 늘었다.

우리나라도 도시재생에 관한 근거는 마련했다. 박근혜 정부가 2013년 12월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도시재생법)’을 제정하면서다. 해당 법은 영·미·일의 도시재생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물리적인 정비를 넘어서 도시의 사회문화적 공동체 회복에 방점을 둔다.

도시재생법은 1조에 “이 법은 도시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활력 회복을 위해 공공의 역할과 지원을 강화해 도시의 자생적 성장기반을 확충하고 도시의 경쟁력을 제고하며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는 등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0년 묵은 법이지만, 그간 물리적 정비 중심의 대규모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당시 해당 도시재생법의 제정에 관여했던 한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도시재생법은 2013년 법 제정 전, 한 차례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가 2013년 하반기 통과됐다”며 “2013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부동산 경기가 좋았기 때문에 정부는 물론 여·야 모두 도지새생이라는 개념에 대해 소극적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한국의 부동산PF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도시재생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고밀도·고층의 물리적 정비가 어려워지면서 되레 사회문화적 정비사업 방식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뉴스포스트는 이후 기획 보도를 통해 올바른 도시재생을 위한 현장 목소리와 전문가의 제언을 들어본다. 
 


※참고자료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도시재생, 보성각, 2015.
유병권, 사람을 생각하는 도시담론, 바른북스, 2022.
앨런 말라흐, 축소되는 세계, 사이,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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