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미국 대선 앞두고 후보들 '자국 우선' 강조
韓에도 중국 공급망 고립·쿼드 참여 등 압박 거세질 듯
'전략적 모호성' 외교 이후 TSMC에 주도권 크게 내줘
외교 변수 넘으려면 HBM·2나노 등 '기술력' 관건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오늘날 우리의 경쟁력 있는 군사적 우위가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지금부터는 테러가 아닌 국가 간 전략 경쟁이 미국 국가 안보의 최우선 고려사안이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당시 미국 국방부는 최상위 지침인 국방전략보고서(NDS)에서 이같이 밝혔다.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 적극 개입한 미국이 '경찰 국가'에서 벗어나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조 바이든 정권, 그리고 현재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맞붙는 2024년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도 이 전략은 유효하다. 공화당·민주당 할 것 없이 자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무역 체제를 강화하는 양상이다.
미국 중심의 무역 체제에서 최대의 적은 단연 중국이다. 2018년 NDS에서 미국은 1순위 위협을 러시아가 아닌 중국으로 지목했고, 2022년 NDS에도 중국을 최대 위협으로 꼽으며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 등 동맹 국가와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영향력 확대를 저지할 것을 결의했다.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된다 하더라도 미국은 동맹 국가에 중국 견제에 동참할 것을 요구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산업연구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시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분리하려는 시도가 더욱 강력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해리스 후보 또한 중국 견제를 위한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 등 네트워크에 한국의 참여를 요구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외교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고수하며 미중 사이 무역 균형을 유지하는 전략을 취했지만, 미중 갈등 심화로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일본 등 동맹 국가와 협력을 강화하는 '전략적 명확성'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는 다른 한편으로 한중관계가 소원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에 중국이 최대 고객 국가 중 하나인 국내 반도체 업계의 고심은 계속 되고 있다. 미국의 압박에 대(對) 중국 첨단 반도체 수출이 막힌 현 무역 체재는 장기간 유지될 전망이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은 반도체 완제품 수입이 아닌 현지 생산 공장을 유치하는 자국 우선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에서 쓰는 전자 제품에는 미국에서 생산한 반도체가 탑재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아시아에 몰려 있는 첨단 반도체 생산을 미국으로 끌어오겠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올해 인터뷰에서 "우리 반도체 산업의 거의 100%를 대만이 가져갔다"며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으로 재편할 것을 시사했다.
미국 당국이 2019년 '하나의 중국' 정책 공식 폐기를 시사한 이래 대만은 최대 우방 국가로 떠올랐다. 대만은 'TSMC 외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TSMC를 통해 미국이 짜고 있는 반도체 동맹의 축으로 활약하고 있다. TSMC는 미중 갈등 심화 이후 미국 편으로 완전 선회했다.
TSMC는 2021년 중국 최대 통신 업체인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했다. 화웨이는 당시 TSMC의 2대 고객이었다. 대신 엔비디아의 AI 칩을 비롯해 애플, 퀄컴, AMD 등 고성능 칩을 독점에 가까운 형태로 생산하고 있다. 2021년 5월부터 짓기 시작한 애리조나 파운드리 공장을 조기 가동하며 미국에서 처음으로 반도체 생산에 돌입했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며 자국 기업 위주로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다. 화웨이는 인공지능(AI) 칩 샘플을 자국 기업에 공급했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SMIC는 7나노 미세공정 자체 개발하며 자국 기업에 공급할 채비를 마쳤다. 중국도 자기 테이블에 자기 편을 앉히고 싶은 것이다.
결국 미중 갈등에서 양자 택일을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우리나라는 어느 쪽 손을 들어줘야 할까? 한쪽 손을 들어주는 것 보다 중요한 건 '기술'일 것이다. 기술에서 앞서간다면 고객사들의 선택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 공급을 이뤄내며 AI 반도체 기술력에서 앞서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2년 6월 세계 최초로 3나노 파운드리 양산에 성공했지만, 저조한 수율과 전력효율성 등 문제로 TSMC와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다만 내년 양산 예정인 2나노 공정에선 ASML로부터 NA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공급 받고, 칩 크기는 줄이고 용량은 늘릴 수 있는 GAA 기술력으로 격차 해소에 나설 전망이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자신을 바꿔라"는 말처럼, 미중 전략 경쟁이라는 국제 질서를 바꿀 수 없다면 기업이 먼저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라고 강조한 것처럼,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 기술로 위기를 타개할 수 있길 바라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