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이재용에 ARM 지분 인수 제안했지만
이재용 "잘 모르겠다"… 매력적 제안 아니라 판단
미일 기업 주도하는 스타게이트도 실익 크지 않아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에 방문해 "스타게이트 업데이트와 삼성과의 잠재적인 협력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회장에게 투자를 요청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이제부터 논의할 것"이라고 답하는 등 삼성전자에 투자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손 회장의 투자요청에 화답할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손 회장은 지난 2022년 10월 방한 당시에도 삼성전자와 영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 ARM 간의 협력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소프트뱅크사는 ARM 지분 90%를 보유하고 있다.
소프트뱅크, '팹리스 절대강자' ARM 지분매각 난항
ARM은 여타 팹리스 기업과 달리 물리적인 CPU나 GPU, SoC, 마이크로컨트롤러 등을 생산하지 않는다. 기술 지적재산(IP)을 만들어 라이센스를 판매해 수익을 올리는 방식이다. 라이센스는 삼성전자와 같은 종합 반도체 회사(IDM)나 TSMC와 같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에 판매한다. 당시 전 세계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AP의 90% 이상이 ARM의 설계도를 이용했을 정도로 시장에서 패권을 구가했다.
소프트뱅크는 2016년 7월 ARM을 총 320억 달러(약 46조원)를 들여 인수했다. 이후 2019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기업공개(IPO)를 검토했지만 이를 포기했다. 상장을 통해 투자이익을 회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후 '그래픽 처리 장치(GPU)의 절대 강자' 엔비디아가 인수를 추진했다. 2020년 9월 소프트뱅크에 400억 달러(약 58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인수금액을 적어냈다.
팹리스 강자 기업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할 경우 독과점이 우려되는 만큼 퀄컴 등 경쟁 기업들이 반대 의사를 밝혔다. ARM이 영국 기업인 특성상 미국 기업인 엔비디아에 인수되면 팹리스 미국 독점 현상도 우려됐다. 결국 반독점 심사를 넘지 못하며 엔비디아는 2022년 2월 "각국 규제로 중대한 제약사항이 발생해, 거래를 더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가 반독점 심사를 넘지 못하자 손 회장은 컨소시엄 형태로 인텔, 퀄컴 등 기업들이 공동 인수를 추진하도록 손을 썼다. 국내에선 SK하이닉스가 컨소시엄을 통한 인수 참여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손 회장의 당시 방한 배경에도 이같은 이유가 자리하고 있다. 이 회장은 같은해 9월 "다음 달에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께서 서울에 올텐데 아마 그때 (ARM 인수를) 제안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삼성전자, ARM 인수 입장 無…스타게이트 투자도 신중 기할 듯
이 부회장의 ARM 인수에 대한 입장은 "잘 모르겠다"였다. 급한 건 손 회장 쪽이었다. 소프트뱅크사는 그해 2분기 '비전펀드'의 잇단 투자 실패로 창사 이래 분기 기준 최대 적자를 기록할 때였다. 기업가치가 하락한 알리바바와 우버 지분 매각으로 투자 손실을 줄이기도 했다. ARM 주식을 담보로 대규모 차입금을 유치해 자금을 조달할 정도였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실익이 크지 않았다. 공동 인수 비용이 그동안의 IP 비용에 비해서도 매력적이지 않고 이사회에서의 영향력도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실제로 공식 입장 없이 대응하며 소극적 태도를 취했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손 회장은 결국 이듬해 9월 ARM 지분 10% 가량을 나스닥 시장에 주당 51달러에 상장시켰다.
손 회장의 이번 방한도 스타게이트 투자 유치가 걸려 있다는 게 중론이다. 손 회장은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전 1000억 달러(약 145조원) 투자를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어깨에 손을 올리며 힘을 실어줬다. 트럼프 행정부는 앞서 오픈AI, 오라클, 소프트뱅크가 합작사를 설립해 미국 내 데이터센터 등을 구축하는 '스타게이트'에 5000억달러(약 732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알트먼 CEO도 전날 방한에서 "스타게이트 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는 한국 회사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글로벌 회사들이 들어와야 가능한 프로젝트"라고 스타게이트 투자 유치를 언급했다. 삼성전자가 스타게이트 투자에 뛰어들지는 미지수다. ARM 사례와 비슷한 '공동 투자'이기 때문이다. 오픈AI와 오라클, 소프트뱅크 등 미일 기업이 주도하는 판인 만큼 실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다. 회사도 따로 공식 입장 없이 신중을 기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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