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영 사장, 4일 수출입은행에 사임 의사
정권교체마다 물갈이…내부출신 단 한명
FA-50·KF-21 공급, 유럽 방산블록 등 과제
"방산·우주 분야 정통한 내부 인사 승진해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무장을 강화하는 유럽이 역내 기업 무기를 우선적으로 구매하기로 하면서 무역 장벽을 높이고 있다. 미국도 방위비 인상을 압박해 자국산 무기 판매를 늘릴 방침이다. 방산블록 강화로 한국 방산업체에 피해가 우려되는 가운데, 기업들의 투자 방침과 대응 방안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강구영 한국항공우주산업(KAI0 사장이 최근 사의를 표명했다. 강 사장은 취임 이후 KAI의 실적을 개선시키며 낙하산 인사라는 오명을 씻었지만, 연임에는 끝내 실패했다. FA-50과 KF-21을 둘러싼 변수와 유럽 방산블록 강화 등 상황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내부 출신 인사와 민영화 등 이슈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사임 의사 밝힌 강구영…낙하산 논란에 진땀
10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강 사장은 지난 4일 오전 한국수출입은행을 방문해 사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수출입은행은 KAI 지분 26.41%을 보유한 최대 주주다. 이어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 중 하나인 피델리티가 9.38%, 국민연금이 8.56%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수출입은행과 국민연금을 합한 지분은 35%에 달해 사실상의 공기업인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친정부 인사가 사장으로 내정돼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전 정부 인사를 해고하고 현 정권 인사를 임명하는 일이 반복되며 내부에서도 여러 잡음이 빚어졌다.
일례로 김조원 전 사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민정수석을 지낸 행정고시 출신으로, 항공공·방산업계 경험이 전무해 낙하산 논란이 크게 일었다. 이외 정해주, 김홍경, 안현호 등 전 사장들도 행정고시 출신으로 관료 퇴직 이후 핵심 요직에 재취업하는 '관피아'라는 비판을 받았다.
강 사장도 공군 조종사 출신으로 합참 군사지원본부장(중장)을 지냈지만 전투기 개발과 수출에는 비전문가란 평을 받았다. 강 사장은 전역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군인 모임인 '국민과 함께하는 국방포럼'에서 공동 운영위원장을 역임하며 윤 정부와 밀착하는 행보를 보였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 논란이 일었던 작년 3월에는 "용산 이전에 따른 안보 공백은 없다"는 내용의 예비역 장성 입장문을 작성하는 데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FA-50 48대 폴란드 수출을 이뤄낸 안현호 전 사장과 KF-21 개발 및 전투기 수출 책임자 등 카이 내부 인사들은 경쟁에서 밀려났다.
여기에 지난 4월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강 사장을 명예훼손죄, 업무방해죄, 위증교사죄, 업무상 배임죄로 고발하며 법적 리스크까지 안게 됐다. 박 의원은 "강 사장은 2022년 9월 취임 이후 비전문가 중심의 조직 개편과 부실 경영, 명백한 위법 행위로 KAI의 위상과 경쟁력을 크게 훼손했다"며 "단순 경영 실수가 아니라, 국민의 자산을 침탈하고 항공산업의 미래를 위협한 중대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호실적·내부 승진으로 조직 안정화
강 사장은 다만 취임 이후 호실적을 이어가며 성과를 냈다. KAI는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2021년 매출 2.5조, 영업이익 675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2019년 대비 각각 18%, 76% 하락한 수치다. 강 사장이 취임한 2022년에는 매출 2.7조, 영업익 1484억원으로 회복세를 보였다.
2023년에는 창사 이래 최대 매출(3.7조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2536억원)도 2019년에 준하는 수준까지 따라붙었다. 지난해 매출은 3.6조원, 영업이익은 2407억원으로 전년 대비 4.9%, 2.8% 줄었지만 수주 잔고는 약 2.9조원 증가해 24조7000억원이었다.
여기에 비대화된 조직을 경량화하고, 임원 퇴임 및 면보직 관리자의 빈자리는 내부 승진을 추진하는 등 조직 개편을 추진했다.
KAI 관계자는 "강 사장 취임 전 KAI는 매출 하락 및 영업 이익의 급감과 함께 전례 없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며 "긴축과 조직 슬림화가 필요했던 상황으로, 취임 이후 고효율 조직으로 쇄신하기 위해 조직 개편 TF를 출범해 인사를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방산블록 등 변수에 "사안 정통한 내부 인사 승진시켜야"
강 사장의 퇴임 이후 KAI 사정은 녹록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KAI에게 수주 대박을 안겨줬던 폴란드와의 계약은 당초 올해 말까지 FA-50PL 36대를 공급해야 하지만, 해당 개량형 모델의 개발 지연으로 적기에 공급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KF-21의 경우 방위사업청과 1.96조원 규모(20대+군수지원)의 공급을 확정했지만, 양산 전 단계인 만큼 매출이 아닌 부채(선수금)로 인식돼 차입금이 증가하고 있다. 국산화를 위한 과제도 남아 있는데, 엔진에 제너럴일렉트릭의 F414를 탑재하는 등 외산에 상당 부분 의존하면서다.
피델리티의 지분 지속 매입에 따른 리스크도 존재한다. 피델리티는 지난해 비상계엄 사태 직후 지분을 매도하며 올 2월에는 지분율을 6.91%로 줄였지만, 지난 4월 지분을 불과 2달 만에 9.38%까지 늘렸다. 피델리티는 지문 매입 목적을 단순투자라고 설명했지만, 10% 이상까지 확보하면 경영진 견제 등 영향력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위비 인상 요구로 미국산 무기 구매 압력이 높아지고 있고, 유럽도 역내 기업의 무기를 우선으로 구매하겠다는 우선주의가 심화되면서 국내 방산업체의 설 자리가 좁아질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도 제기된다.
이에 KAI 내부에선 정치인이나 관료가 아닌 전문경영인이나 내부출신 인사가 나와야 발빠른 대응이 가능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KAI 내부 관계자는 "KAI 출범 이후 내부 출신 인사는 단 한명에 불과했고, 연임은 아예 못했다"며 "정권이 바뀌면 사장을 갈아치우는 체제로는 선제적인 투자가 어려운데 적어도 방산·우주 분야에 정통한 내부 인사가 승진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강 사장은 당장 사임하지 않고 새로운 사장이 내정될 경우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KAI 관계자는 "당장 사임하는 게 아니라 후속 인사가 취임하기 전까지는 임기를 이어갈 것"이라며 "이사회에서 새로운 사장을 선출하는 절차에 돌입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