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로보틱스 PRS로 7000억원대 자금 조달 추진
5~6% 금리에도 SK실트론 인수 이익 크다고 판단
박정원 회장 일가, 두산에너빌리티·밥캣 지분 낮아
㈜두산· 로보틱스 지분 담보로 승계 작업 단행할 듯
올해 9월 지주사 제외…공격적 M&A 가능성

지난 8월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기후산업국제박람회' 두산 부스 전경. (사진=두산)
지난 8월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기후산업국제박람회' 두산 부스 전경. (사진=두산)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두산이 자회사 두산로보틱스 주식을 활용한 주가수익스와프(PRS) 계약으로 자금 조달에 나서는 가운데, SK실트론 인수를 위한 포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두산그룹은 캐시카우인 두산에너빌리티·밥캣에 대한 지배력이 낮아 지주 경영이 어려운 만큼, PRS를 내세워 실트론을 인수해 그룹과 총수 일가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로보틱스 PRS로 '실가치 2조원대' SK실트론 인수자금 마련


'두산로보틱스 이노베이션 센터'의 연구개발 인력들이 기술 및 제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두산로보틱스)
'두산로보틱스 이노베이션 센터'의 연구개발 인력들이 기술 및 제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두산로보틱스)

14일 업계에 따르면 ㈜두산은 두산로보틱스 지분을 담보로 7000억원 규모의 PRS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복수의 대형 증권사와 PRS 계약을 맺어 금액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PRS는 정산 시기에 기초자산인 주식 가치가 계약 체결 시점보다 높으면 차액을 조달 기업이 가져가며, 주가가 하락하면 기업이 투자자에게 손실분을 보장하는 일종의 파생상품이다.

다만 상품 자체는 채권 성격이 강한데 투자자(주로 증권사)들은 조달 기업으로부터 수수료(이자)를 수취하게 되고, 금리도 5~6%에 달해 일종의 주식담보대출로 평가받는다. 

㈜두산의 두산로보틱스 지분율은 68.11%로 13일 종가 기준 3.58조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7000억원 이상을 조달해도 지분 10%를 넘지 않는 금액인데, 추후 매각하더라도 지분은 60%에 근접해 크게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이번 PRS 추진은 SK실트론 인수를 위한 포석으로 여겨진다. 글로벌 반도체 웨이퍼 시장에서 SK실트론은 매출액 기준 4~5위(점유율 12~14%)의 시장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두산은 SK가 보유한 실트론 지분 51%와 총수익스와프(TRS)로 묶인 지분 19.6%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당초 SK는 한앤컴퍼니와 단독 협상했지만, 기업가치 책정을 두고 이견이 빚어져 매각이 지지부진해졌다. 

시장에서 거론되는 SK실트론의 기업가치는 5조원대 전후로, 차입금 3조원 가량을 제외하면 실 가치는 2조원대 수준으로 추정된다.

두산의 올해 상반기 별도 기준 유동자산 규모는 2.16조원이며, 현금성자산은 1.23조원에 달한다. PRS를 정상 추진한다면 2조원 가량의 현금을 가용할 수 있어 인수에 큰 무리가 없을 전망이다.


원전·건설기계 호황에도 그룹 상황은 악화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왼쪽 두 번째)이 독일 건설기계 전시회 '바우마 2025'를 찾아 두산밥캣 부스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사진=두산그룹)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왼쪽 두 번째)이 독일 건설기계 전시회 '바우마 2025'를 찾아 두산밥캣 부스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사진=두산그룹)

㈜두산은 과거에도 PRS 계약으로 유·무형의 이익을 챙겨왔다. 자회사 두산건설·두산에너빌리티의 잇따른 수주 실패로 유동성 위기를 겪었던 두산그룹을 살려낸 것도 PRS 계약이다.

수조원의 가격으로 인수한 밥캣 지분을 토대로 여러 증권사와 PRS 계약을 맺어 현금흐름을 확보했고, 주가 또한 상승하며 추가로 현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밥캣은 현재도 매년 1조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으로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소형모듈원전(SMR) 건설 붐에 두산에너빌리티의 상황도 호전됐지만, 두산에너빌리티와 밥캣을 제외한 다른 자회사 포트폴리오는 부실한 편이다.

두산로보틱스는 협동로봇 시장 침체에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손실이 430억으로 지난해 전체 손실(412억원)보다도 늘었다. 반도체 테스트 기업 두산테스나도 올해 상반기 영업손실 212억원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두산은 밥캣 지분이 하나도 없고, 두산에너빌 지분도 자회사 요건을 겨우 넘기는 30.39%만 보유하고 있어 지배력이 떨어진다. 두산에너빌과 밥캣의 호황에 따른 이익을 제대로 누리기 어려운 구조다.


박정원-박지원 승계 어려움…포트폴리오 확충 절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과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 (사진=두산)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과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 (사진=두산)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 과제도 있다. ㈜두산 지분구조는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7.72%) 등 총수 일가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40.11%다. 반면 두산에너빌리티에 대한 지분은 0.5%가 채 되지 않고, 밥캣 지분은 아예 없어 지배력이 약한 편이다.

이에 ㈜두산은 지난해 지분율이 높은 두산로보틱스에 두산밥캣을 1:0.63 비율로 합병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두산밥캣 주주들의 큰 반발과 금융감독원 정정 요구 등 논란 심화에 합병을 철회한 바 있다.

형제경영 체제인 두산그룹은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2016년부터 이끌고 있다. 2027년까지 연임 임기를 소화하면 11년 째 재직하게 되는데 이는 역대 두산그룹 회장 중 최장기 임기다. 박 회장은 삼촌인 박용만 전 회장으로부터 회장직을 넘겨받아 오너 4세대 경영을 열었다.

후계 회장으로는 박 회장의 동생인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이 거론되는데, 박 부회장의 ㈜두산 지분율은 5.52%로 박 회장(7.72%)보다 적어 지배력 이슈가 더욱 불거질 수 있다. 총수 일가 입장에선 승계 전까지 그룹 포트폴리오를 확충해 두산에너빌·밥캣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관건이다.

앞서 두산그룹은 대규모 차입금 발생으로 총자산액 대비 자회사 주식가액 비율이 낮아짐에 따라 지난 9월 공정거래위원회부터 지주회사 제외를 통보받았다. 지주사 제외로 인수·합병(M&A) 허들이 낮아지면서 업계는 공격적인 M&A에 나설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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