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석화·통신·반도체' 축으로 재계 서열 2위
저유가·공급과잉·캐즘 리스크에 본업 경쟁력 타격
자산 유동화·채권·어음·PRS 등 전방위적 현금 조달

PBR, PER, ROE 등 재무 상태와 경영 활동 등을 분석하는 펀더멘탈 분석은 기업의 개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만, 기업이 결정한 사안의 이면까지 알아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배구조와 총수 일가의 상황, 기술적 분석을 더해 기업의 이면을 톺아보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서울 종로구 서린빌딩 전경. (사진=SK그룹)
서울 종로구 서린빌딩 전경. (사진=SK그룹)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SK그룹이 오늘날 재계 서열 2위로 도약할 수 있던 배경엔 최종현 선대회장의 '정유·석유화학·통신' 3대 축 육성과 적극적인 M&A(인수·합병)를 통한 몸집 불리기가 자리하고 있다.

SK는 3대 축 외에 ▲첨단소재 ▲바이오 ▲그린 ▲디지털 등 4대 축을 기반으로 2021년에만 12조원을 투자해 20건의 M&A를 한 덕에, 2022년 현대차그룹을 제치고 자산총액 기준 2위에 등극했다.

그런데 SK그룹은 최근 몇년 간 굵직한 M&A 대신 자산 유동화, 계열사 채무보증, 회사채, 자사주 통한 교환사채, 기업어음 등 전방위적인 현금 창출에 나섰다.

실트론 인수 당시 활용했던 TRS(총수익스와프) 규제가 강화되면서 M&A가 어려워진 측면도 있지만, 선대회장이 일군 3대 축에서 뼈아픈 실적 타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3대 유산 '정유·석유화학·통신'


故 최종현 SK 선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SK) 
故 최종현 SK 선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SK) 

최종현 SK그룹 전 회장은 SK의 전신인 선경직물의 석유-섬유 사업 수직계열화를 통해 지금의 SK를 있게 한 실질적인 창업주로 평가받는다. 최 전 회장이 이끈 선경그룹은 1980년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장기 원유공급 계약을 맺고 1억 달러의 차관을 들여와 석유 중심의 수직계열화에 본격 돌입한다.

선경은 1982년 석유공사 명칭을 유공해운(현재의 SK이노베이션)으로 바꾼 이후 부채비율, 수익성을 개선하며 이듬해 197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1987년에는 북예멘의 마리브에서 추정 매장량 10억 배럴의 유정을 발견해 국내 최초로 유전 개발에도 뛰어든다(SK어스온).

이후 1994년 민영화가 추진되던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1위 통신사인 SK텔레콤으로 키워낸다. 이후에도 인천정유(SK인천석유화학) 등을 인수해 삼성, 현대, LG에 버금가는 재벌로 떠올랐고 하나로텔레콤(SK브로드밴드), 하이닉스(SK하이닉스) 등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2022년 국내 2위의 기업 집단으로 성장했다.

최 전 회장이 미래를 내다보고 키웠던 정유·석유화학·통신은 SK 경영의 토대로, 현재까지도 그룹을 지탱하고 있다. 그룹 내 최대 캐시카우로 거듭난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사업도 최 전 회장이 1978년 자회사로 설립한 선경반도체가 기틀이다. 2차 오일쇼크로 1981년 해산됐지만, 30년 만인 2011년 하이닉스를 약 3.4조원에 인수하며 최 전 회장의 못다한 꿈을 이뤄냈다.


'저유가·공급과잉·캐즘' SK이노 올해 순손실 2조원 예상


SK이노베이션 울산 CLX 전경. (사진=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 울산 CLX 전경. (사진=SK이노베이션)

하지만 SK그룹은 최 전 회장의 유산과도 같은 사업에서 여러 악재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국제유가 하락 추세가 이어지며 SK이노베이션이 큰 타격을 입었다. 정유사들은 보통 1~3개월 전에 원유를 매입해 제품 생산에 나서는데, 유가가 하락하면 높은 원가로 정제한 제품을 현재 시세로 낮은 가격에 팔아야 하는 만큼 손해를 떠안는 구조다.

석유화학 또한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CAPA) 확충과 경기 침체에 따른 공급과잉이 이어지고 있고, 내년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 완공으로 공급이 더 늘어난다면 원가 경쟁력 확보에 어려움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통신 사업은 최근 고객 유심정보 탈취 사태 이후 가입자 감소에 따른 수익 감소와 고객 보상·정보보호 투자액 급증으로 현금이 유출되고 있다. 

배터리 자회사 SK온도 전기차 캐즘(수요 정체)에 누적 3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한 가운데 SK이노베이션도 올해 순손실 2조원이 예상된다. 지난해 11월 이뤄진 SK E&S 합병 시너지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가운데, 회사는 지난 5월 장용호 SK㈜ 대표이사를 CEO인 총괄사장에 선임하는 경영진 교체를 단행했다.

장 총괄사장은 SK머티리얼즈와 SK실트론 인수 등 M&A 경험이 많은 투자 전문가로 반도체 포트폴리오 강화와 SK하이닉스의 실적 향상에 크게 기여해 왔다. 장 총괄사장은 "SK이노베이션은 현재 사업 수익성과 재무구조 악화, 기업가치 하락 등 위기를 겪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사업재편, 운영 개선, 원팀 역량 결집 등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유동화·회사채·CP·PRS 등 현금확보 '파죽지세'


장용호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추형욱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사진=SK이노베이션)

앞서 SK이노베이션은 E&S 합병을 전후로 자산을 유동화해 현금 확보에 나섰다. 회사는 지난해 총 400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사채(AB사채)를 발행해 현금을 조달했다. 이는 유동화전문회사(SPC)가 SK이노에 대출금을 지급한 뒤 사채를 발행하는 구조로, SK이노가 지급하는 원리금과 대출이자를 토대로 상환이 이뤄진다. 기업 입장에선 단기 자금 확보에 유리한 데다 회사채보다 금리가 낮은 경우가 많아 부담이 경감된다.

또 대출채권을 매각할 시 현금을 확보하면서도 부채로 잡히지 않아 재무건전성 개선에도 유리하고, 자산에서 분리(오프밸런스)됨에 따라 총자산수익률(ROA), 자산회전율 및 자기자본비율 등 재무지표의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SK에너지와 SK인천석유화학 등 자회사도 매출채권을 토대로 수조원의 AB단기사채(ABSTB)를 발행해 현금을 확보했다. 

다만 올해 안에 만기가 다수인 만큼 추가 유동성 확보안도 절실한 상황이다. 현재로선 회사채가 주요 수단이다. 올해 SK(주)는 8100억원, SK이노베이션은 8000억원, SK인천석유화학은 21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최근 SK이노가 에코솔루션홀딩스로부터 지분 30%를 추가 매입해 100% 자회사로 편입시킨 SK엔무브도 3000억원을 발행했다. 

단기금융시장도 알짜 확보처다. 지난 4일 SK이노베이션은 2500억원, SK는 1000억원의 기업어음(CP)을 3개월 만기로 발행했다. 자사주 처분에도 나섰는데, SK이노는 보통주 2.25%를 교환사채(EB)로 발행해 3767억원의 자금을 확보하며 엔무브 지분 30% 매입했다.

주가수익스와프(PRS)를 통한 실질적인 자회사 채무보증에도 나서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5조원 규모 액화천연가스(LNG) 자산 유동화를 통해 재무구조가 악화 중인 SK온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메리츠증권은 PRS 방식으로 SK온에 해당 금액을 직접 투입하고, 6% 대의 이자를 수취할 방침이다.

SK이노베이션은 수익성 개선을 위해 사업재편을 빠르게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장 총괄사장은 "SK이노베이션은 다가올 전기화 시대에 가장 경쟁력 있는 에너지 회사로 도약할 것"이라며 "석유·화학, 액화천연가스(LNG)·발전, 신재생에너지, 에너지 설루션 영역을 아우른 에너지 사업의 글로벌 확장과 전기화 관련 성장 영역으로의 사업 확장을 추진해 나가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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