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의 의지와 무관...인권 사각지대 방치 
- “건강권·교육권 등 권리 보호” 목소리

사회학자 스티븐 캐슬(Stephen Castles)은 현시대를 ‘이주의 시대’라고 불렀다. 세계화에 따라 한국에도 다양한 유형의 이주민이 증가하며, 2020년 1월 1일 기준 한국의 체류 외국인 수는 252만 4,656명을 기록했다.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9%로, 체류 외국인 250만 명 시대가 열린 것.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서류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있지만 없는’ 아이들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부모의 불법체류로 인해 출생과 성장과정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권을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이주 아동 들이다. <뉴스포스트>는 3편의 기획기사를 통해 국내 미등록 이주 아동 실태를 알아보고, 이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대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최근 법무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미등록 이주아동'의 수는 1만 3,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사진=픽사베이)
최근 법무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미등록 이주아동'의 수는 1만 3,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사진=픽사베이)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부모가 미등록 체류, 이른바 불법체류 상태면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없고 체류 자격도 얻을 수 없다. 사회는 이런 아이들을  ‘미등록 이주아동’이라고 부른다.

출생등록을 하지 못한 이주아동들에게 평범한 일상은 허락되지 않는다. 학교장의 허가 없이는 학교에 다닐 수 없고, 여행 보험 가입이 되지 않아 수학여행도 가지 못한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니 값비싼 치료비에 아파도 참아야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성장했지만, 정작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는 인정받지 못한다. 

이렇듯 ‘미등록 이주아동’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교육과 의료 등 기본적인 보호도 받지 못하는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강제퇴거 우려에 출생신고도 못해


법무부의 ‘2019 출입국·외국인 통계연보’ 자료를 보면 2019년 말 기준 국내에 체류 중인 19세 이하 외국인은 19만 3,217명이며, 이 가운데 미등록으로 체류하는 아동·청소년은 7,985명이다. 

하지만 이 수치에는 한국에서 태어나 출입국 기록이 없고, 외국인등록도 한 적이 없어 통계에 잡히지 않는 아동은 포함돼 있지 않다. 최근 실태조사에서 법무부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숫자를 최대 1만 3,239명으로 추산한 바 있으나, 현실에서 이들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내에서 출생한 외국인은 ‘출입국관리법’ 제23조에 따라 출생한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체류 자격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부모가 미등록 이주민인 경우에는 강제퇴거 우려와 벌금 부담 등으로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턱 높은 정부 지원의 ‘한계’


우리 사회에서 이주아동에 대한 논의와 정책은 한국 국적을 가진 아동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특히 생존과 발달에 있어 필수적인 권리인 건강권과 교육권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정부는 2005년 ‘외국인 근로자 등 소외계층 의료비 지원사업’을 실시해 미등록 이주아동의 영유아 필수접종을 의무화하고, 최소한의 응급 의료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등록 이주아동 부모의 전·현직 근로 여부가 확인이 되어야만 지원할 수 있어, 신분 노출을 우려해 결국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또 받을 수 있는 의료 지원이 제한되고 횟수도 정해 있는 데다 관련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협력병원도 전국적으로 100여 곳에 불과한 상황이다.

교육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법무부는 2010년부터 초·중학교에 재학 중인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해 단속을 자제하고, 미등록 체류 사실이 적발되더라도 학생 및 학부모에 대해 중학교 졸업 시까지 강제퇴거를 유예하는 ‘불법체류 학생의 학습권 지원방안’ 지침을 운영하고 있다. 2013년에는 해당 지침의 적용 대상을 고등학교 재학생과 학부모에게까지 확대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주민들의 얘기다. 실제로 지난 2018년 11월 한국행정학회가 펴낸 ‘국내체류 아동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자 중 22.2%의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입학 거부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등록 이주아동 10명 중 4명은 학교생활 중 괴롭힘을 당했다고 답했고, 중간에 학업을 중단한 비율도 미등록 이주아동은 56.1%로 등록 이주아동 7.3%보다 약 8배 높았다.

한국 국적을 가진 아동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이주아동에 대한 정책으로 인해 미등록 이주아동은 건강권과 교육권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한국 국적을 가진 아동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이주아동에 대한 정책으로 인해 미등록 이주아동은 건강권과 교육권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아동권리협약 이행해야 


1991년 한국 정부가 채택한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24조에 모든 아동에 대한 건강권을 명시하고 있다. 또 아동복지법 4조는 “아동은 사회적 신분, 인종 등에 따른 어떠한 차별 없이 자라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지난 2003년 한국정부에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차별 없는 교육권의 보장을 최초로 권고한 이후 총 4차례에 걸쳐 ‘아동권리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권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의 자녀인 아동이 적절한 생계, 주거, 의료 서비스와 교육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했지만 국내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이민 행정을 보면 헌법상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나, UN아동권리협약상 아동의 권리보다도 출입국관리법 강제퇴거 규정이 가장 상위에 있는 모습이다. 


좌절된 관련 법 제정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법적 논의는 제18대 국회 때부터 꾸준히 이뤄졌다. 당시 이주아동이 교육과 의료급여, 최저생계 유지 및 보육 등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이주아동권리보장법’이 발의됐다. 

2014년 제19대 국회에서도 미등록 이주아동들에게 특별 체류 자격을 줘 이들의 건강권과 교육권을 보장하자는 내용을 담은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안’이 제안됐다. 제20대 국회에서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출생 등록을 허용하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이 나왔다. 

이 법안들은 모두 아동 인권의 관점과 불법 체류 양산에 대한 우려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번번이 좌절됐다.  

미등록 이주 아동 정책에 대한 근본적 재고가 필요한 시점에서 <뉴스포스트>는 3편의 기획기사를 통해 국내 미등록 이주 아동이 겪고 있는 인권침해의 실태를 알아보고, 전문가와 함께 법적 보호의 필요성과 입법과제 등을 모색해본다. 


※ 참고자료
정상우 외, 미등록 이주민 인권증진을 위한 입법과제, 한국법제연구원, Vol.- No.51, pp.409-449, 2016
이탁건, 미등록 이주아동의 머무를 권리 - 아동권리보장의 관점에서, 이화젠더법학, Vol.11 No.1, pp.161-194, 2019
2019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 법무부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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