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펙 시니어와 기업을 연결해주는 탤런트뱅크
2018년 사업 시작 후 800여 건 성사, 재의뢰율은 60%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50세 전후에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다. 그 후 72세까지 소득을 갖거나 보람 있는 노후를 위해서 일자리나 일거리를 희망한다. 이는 모두 ‘신중년 인생 3모작 기반구축 계획’이라는 정부 자료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정부의 이러한 분석은 정년이 60세나 65세로 정해져 있더라도 50대 언저리에 명예퇴직이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일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다. 

노동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노동시장에서 완전 은퇴를 위한 경제적 준비가 완료되었거나 준비 중인 사람들은 전체 중장년의 41.4%라고 한다. 많은 이가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다.

만약 50대 직장인이라면 20년 넘게 일을 해왔을 것이다. 그런데 20년 넘게 쌓은 경험치와 능력치를 써먹지 못하고 그냥 묵힌다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그 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가치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중히 쓰일 수 있는 훌륭한 자원이 될 수 있을 텐데도. 

50대 퇴직자를 전문가로 모십니다. (사진:픽사베이)
50대 퇴직자를 전문가로 모십니다. (사진:픽사베이)

퇴직한 전문가와 기업을 연결해주는 플랫폼

탤런트뱅크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은 단순 명쾌하다. 시니어 전문가들을 필요로 하는 기업과 연결해준다. 

“대기업에서 퇴직하는 팀장이나 임원이 많은데 그들이 재취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에선 그런 전문가들을 고용하고 싶어도 높은 고정비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요. 그래서 프로젝트 단위로 고스펙 퇴직자와 기업을 연결해보면 어떨까 하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업 배경에 대한 탤런트뱅크 관계자의 말이다. 이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은 얼핏 인터넷 구직 사이트나 헤드헌터와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탤런트뱅크가 잡사이트나 헤드헌터와 다른 점은 프로젝트나 기간 단위로 연결한다는 점이다.

탤런트뱅크 관계자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를 언급했다. 기업들이 정규직보다는 필요에 따라 계약직 혹은 임시직으로 사람을 고용하는 경향이 커지는 경제를 일컫는 말이다. 긱(Gig)은 일시적인 일을 뜻하며, 1920년대 미국 재즈클럽에서 단기적으로 섭외한 연주자를 ‘긱’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기존의 노동시장은 기업이 직원들과 정식 계약을 맺고, 채용된 직원들을 이용하여 고객들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였다면, 긱(Gig) 경제에서는 기업이 그때그때 발생하는 수요에 따라 단기적으로 계약을 맺는다.

그러고 보니 탤런트뱅크의 시니어 전문가 매칭 사업 모델은 이러한 '긱 이코노미'를 잘 설명하고 있었다.

2019년 7월에 진행한 탤런트뱅크 전문가 포럼. (출처:탤런트뱅크)
2019년 7월에 진행한 탤런트뱅크 전문가 포럼. (출처:탤런트뱅크)

탤런트뱅크의 회원은 두 종류다. 고스펙 전문가를 채용하고 싶지만 여의치 않은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가입하는 기업 회원(사이트에서는 ‘Client’ 메뉴), 그리고 최소한 대기업의 팀장이나 중소기업의 임원 등 경험과 능력을 보유한 전문가 회원(사이트에서는 ‘Expert’ 메뉴)이다.

“기업 회원들은 보통 프로젝트 단위로 의뢰합니다. 예를 들어, 신사업 TFT의 리더로 영입한다거나, 내부 임원 평가 때 외부 평가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이죠. 보통 이삼 개월 진행하는데 전문가와 기업이 서로 궁합이 맞을 때는 채용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물론 회의 참석이나 외부 미팅에 동행해 줄 전문가를 하루만 의뢰한 사례도 있었죠, ”

기자는 직접 회원에 가입해 보았다. 하지만 탤런트뱅크가 인정한 전문가로 등록하려면 1차 서류 심사와 2차 대면이나 화상 인터뷰까지 거쳐야 최종 전문가 회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검증 절차를 통과한 전문가가 약 3천 명이라고 탤런트뱅크 관계자는 밝혔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실적이다. 기존의 구직 사이트들이나 아웃소싱 사이트들은 가입한다고 해서 매칭을 보장하지 않는다. 물론 탤런트뱅크도 매칭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탤런트뱅크 관계자는 2018년 사업 시작 후 800건 넘게 매칭했고, 이 중 60%가 재의뢰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재의뢰율 60%는 5개 기업 중 3개 기업이 다른 전문가를 추가로 요청한다는 의미인데요. 저희는 이 지표의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만약 이러한 지표가 사실이라면 긍정적인 신호로 보였다. 심지어 어떤 기업에서는 인사, 신사업, 세일즈 등 10건 넘게 의뢰했다고 한다. 한 팀에서 활용해보고 다른 팀에도 전문가를 의뢰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고. 

“명예퇴직 후 헤드헌터에 의뢰한 재취업을 기다리던 중 탤런트뱅크에 가입했습니다. 헤드헌터가 소개한 자리들이 성사되지 않아서 실망이 크던 차에 마침 탤런트뱅크에서 연락이 왔지요. 짧은 프로젝트였지만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대기업에서 20년 넘게 재직하다 2년 전에 팀장으로 퇴직한 A씨(남, 56세)의 말이다. IT 솔루션 개발을 담당했고 PM 경력도 많은  그는 대기업과 제휴를 준비하던 한 벤처기업과 2개월 간 일했다.

A씨는 일주일에 2회 풀타임으로 일하며 개발 마무리를 도왔고, 대기업 측과 커뮤니케이션도 맡았다. 프로젝트 결과와 보수 모두 만족스러웠지만, 그 후로는 탤런트뱅크로부터 의뢰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탤런트뱅크 관계자도 모든 회원에게 골고루 의뢰가 가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신규 의뢰가 점점 늘어가는 추세라서 앞으로 더욱 좋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전문가들과 일해 본 기업 회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서 재의뢰가 늘어나는 점도 긍정적인 신호라고.

재취업을 원하는 신중년들에게

정부에서 펼치는 신중년 혹은 중장년을 위한 일자리 지원사업은 취업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에게는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방편이 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발품을 더 팔아볼 것을 권한다. 

만약 수십 년간 일터에서 쌓아온 경험과 능력이 있다면 시니어 전문가와 일자리를 연결하는 곳을 찾아보면 어떨까. 당신이 쌓아온 경험치와 능력치가 누군가에게는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인터넷에는 다양한 모습과 조건으로 시니어 전문가들을 찾는 정보가 많다.

“여러 아웃소싱 회사에 등록했습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간혹 의뢰가 들어와 제 개인사업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위에서 소개한 A씨의 말이다. 그는 현재 IT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며 아웃소싱으로도 일을 수주받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그야말로  액티브 시니어였다.

검색해서 찾는 자에게, 그리고 둘러보고 컨택한 자에게 길이 열릴 확률이 높다. 세상은 OPAL(Old People with Active Life), 즉 액티브 시니어들에게 더욱 좋은 기회를 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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