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들, “자본주의 발달할수록 빈부격차 심화” 전망
고령화부터 기술진보까지 원인 다양···부동산도 원인 지목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성의 사회다. 다양한 인종과 직업, 문화와 환경, 가치관과 사고방식 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다양성의 가치가 존중되지 못하고 직업 간, 이념 간, 계층 간 이분법적 갈등이 발생하면 사회는 분열되고, 역사는 후퇴한다.
통계청의 ‘한국의 사회지표(2021년 3월 25일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집단 간 사회갈등 정도가 심하다고 인식하는 비중이 ▲보수와 진보(85.4%) ▲빈곤층과 중·상층(82.7%) ▲근로자와 고용주(74.2%) ▲개발과 환경보존(68.5%) ▲수도권과 지방(62.7%) ▲노인층과 젊은층(60.9%) ▲종교(55.4%) ▲남자와 여자(48.8%) 순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조사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5대 사회갈등 요소를 꼽으면 이념갈등(보수와 진보), 빈부갈등(빈곤층과 중·상층), 노사갈등(근로자와 고용주), 환경갈등(개발과 환경보존), 지역갈등(수도권과 지방)이다.
사회갈등은 우리사회가 선진사회로 나아가고,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해소돼야 한다. <뉴스포스트>가 우리나라의 5대 사회갈등을 주제로 사회갈등의 현주소와 원인을 진단하고, 사회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뉴스포스트=정성민 기자] 빈곤층과 중·상층의 갈등은 빈부격차에서 비롯된다. 빈부격차란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의 경제적 차이다. 물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사회에서 직업에 따라, 소득에 따라, 자산에 따라 자연스럽게 빈부격차가 발생한다. 하지만 빈부격차가 확대될수록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경제학자들은 빈부격차의 완화보다 심화를 전망한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는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소득이 노동소득보다 항상 우위에 있다”며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소수 부유계층에 자본이 집중, 분배구조의 불평등이 악화된다고 진단했다.
실제 최근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성인남녀 3415명을 대상으로 ‘부자의 기준과 재테크 현황’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부자의 기준은 평균 49억 원이었다. 2016년 동일 조사에서 부자의 기준은 32억 원이었다. 5년간 부자에 대한 눈높이가 53.1% 높아졌다. 일명 ‘부익부(富益富·부자가 더욱 부자가 되는 것)’의 방증이다.
중고령층 빈곤율 향상···중간층 근로자 일자리 축소
그렇다면 빈부격차 심화의 원인이 무엇일까? 양희승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인구구조 변화와 기술진보를 원인으로 꼽았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고령화 문제와 연결된다. 고령화로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세대 내에서 사회적, 경제적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빈부격차가 심화된다는 것이 양 교수의 설명이다.
즉 과거에는 20대부터 50대까지 일한 뒤 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에 은퇴했다. 지금은 100세 시대로, 50대와 60대는 물론 70대와 80대도 경제활동을 희망한다. 그러나 중고령층이 일할 수 없다면, 일해도 소득이 적다면, 더욱이 사회안전망까지 미비하다면 중고령층의 빈곤율이 높아진다. 중고령층의 빈곤율 향상은 사회 전체의 빈부격차 심화 원인으로 작용한다.
양 교수는 “50대 인구는 한창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50대 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다”며 “더구나 조기퇴직을 하지 않은 중고령층 대부분은 저임금 직종에 몰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후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각종 사회보장제도가 아직 확립되지 못했고, 공적연금의 사각지대 또한 크다. 이런 현실에서 고령화는 빈곤층을 확대시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양 교수는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은 사회적,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상태에서 고령화를 급격히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술진보는 AI와 자동화로 대변된다. 양 교수에 따르면 AI와 자동화는 중숙련(middle-skill) 근로자의 일자리 감소와 고숙련(high-skill) 근로자, 저숙련(low-skill) 근로자의 수요 증가를 초래한다.
중숙련 근로자는 조립공이나 일반 사무직 근로자 등이 해당되며 주로 반복업무(routine task)를 담당한다. 고숙련 근로자는 엔지니어, 고급관리자, 전문가 등으로 기술과 보완관계에 있으면서 비정형적 인지업무(non-routine cognitive task)를 수행한다. 저숙련 근로자는 청소원, 단순용역직원, 경비원 등으로 비정형적 육체업무(non-routine manual task)를 전담한다.
양 교수는 “AI와 자동화는 중숙련 근로자의 일자리를 대체한다. 한편 고숙련 근로자의 수요는 증가, 이들의 일자리와 임금은 늘어난다. 이와 함께 저숙련 근로자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증가한다”면서 “결과적으로 기술진보는 임금분포상 중간에 해당되는 노동자(중숙련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음으로써 경제를 소수의 지식노동자와 다수의 단순육체 노동자로 양분화, 빈부격차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부동산 양극화···내집 마련은 ‘그림의 떡’
또한 부동산 양극화가 빈부격차 심화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형찬 국토연구원 주택·토지연구본부장 연구팀의 ‘부동산 자산 불평등의 현주소와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불평등 현황과 세대 간 사회 이동 추세를 고려할 때 소득 하위 10% 가구가 평균 소득가구로 이동하기까지 다섯 세대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는 OECD 평균 4.5세대보다 약간 길다.
특히 개인의 총자산 불평등 비중에서 거주주택자산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형찬 본부장은 “자산 불평등은 총자산, 금융자산, 실물자산 순으로 큰데 총자산 불평등도에 거주주택자산이 67.0%, 금융자산이 15.9%, 거주주택 외 자산이 14.8%, 기타 실물자산이 2.4%씩 각각 기여한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거주주택자산, 즉 부동산의 보유 여부가 개인의 총자산 규모를 좌우한다. 이에 부동산 보유율이 높을수록 부유층으로의 이동이 수월하다. 반면 부동산 보유율이 적을수록 상위 소득계층으로의 이동 사다리는 멀어진다.
문제는 부동산 가격이 매년 상승하고 있다. 아파트의 경우 KB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전국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 상승률은 연평균 7.4%였다. 서울은 연평균 12.9% 올랐다.
결국 “월급 모아 집을 산다”는 옛말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성실근로자 울리는 5대 요인’으로 ▲월급보다 오르는 생활물가 ▲소득보다 오르는 세금 ▲실업급여 재정적자 확대 ▲국민연금 고갈 우려 ▲급격한 주택가격의 상승을 제시하며. “근로자가 서울 중위가격 아파트를 구입하려면 월급을 한 푼도 사용하지 않고 2020년 근로자 평균 임금 352만 7000원 기준으로 21년 8개월간 모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코로나19 이후 계층 간 부동산 격차가 커졌다. 신한은행의 ‘2021년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서 전국 만 20세∼64세 취업자(근로자·자영업자) 1만 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 자산 5구간(상위 20%)과 4구간(상위 40%)의 부동산 보유액은 9억 8584만 원, 4억 1011만 원으로 2020년 한해만 각각 5.7%, 11.8% 증가했다. 반면 1구간(하위 20%)의 부동산 보유액은 600만 원으로 8.5% 감소했다.
‘불법과 반칙’ 만연···빈부격차 부채질
부의 축적과 대물림이 불법과 반칙으로 이뤄지는 것도 빈부격차를 부채질한다. 지난 27일 국세청에 따르면 근로자와 주주의 기업이익을 사주일가가 독식하고, 본인의 노력과 상관없이 부모찬스를 통해 사주 자녀에게 거액의 부를 대물림한 사례와 혐의가 다수 적발됐다. 이에 국세청은 불공정 탈세 혐의자를 대상으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대상자는 30명이다. 기업의 사주와 사주일가, 임원 등이 해당된다. 조사 대상자 30명의 총재산은 2019년 기준 약 9조 4000억 원으로 평균 3127억 원(일가 합계)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사주의 1인당 급여는 약 13억 원이다. 이는 근로자 평균 급여(3744만 원) 대비 35배에 달한다.
조사 대상자의 불공정 탈세 혐의는 ▲이익독식 15건(고액 급여·퇴직금, 무형자산 편법 거래) ▲변칙증여 11건(불공정 부동산 거래, 미공개 정보 이용) ▲기업자금 유용 4건(호화 사치, 도박)의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실례를 보면 A그룹의 창업주(사주 부친, 70대 후반)는 경영성과와 무관하게 고액의 급여를 수령했다. 급여 수준은 연간 15억 원~25억원 수준이다. 기타 임원의 급여가 연간 1억 원~2억 원 수준이라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미국과 독일처럼 주요 선진국은 임원의 보수 기준을 급여 지급 규모로 제한하고 있다. 또한 A그룹의 창업주는 다른 공동대표와 달리 퇴직 직전 급여를 대폭 올려 수백억 원의 퇴직금을 수령했다.
B사의 사주는 자녀들에게 본인 소유 B사 주식을 전부 증여했고 B사는 자녀들이 지배(지분 100%)하는 회사로 변모했다. 이어 B사의 사주는 주식 증여 이후 2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B사에 강남 노른자위 땅을 취득가액 절반 수준 가격에 넘겼다. 이를 통해 자녀들은 수백억 원 상당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그럼에도 B사의 사주는 토지 양도로 손해가 생겼다고 신고, 양도소득세를 회피했다.
C사의 최고위 임원은 계열사의 상장 추진 업무를 사실상 주도하면서, 상장 예정 내부정보를 배우자와 자녀에게 제공했다. 배우자와 자녀는 친인척 명의를 빌려 C사 주식을 취득했고 계열사는 불과 1년 만에 상장됐다. 이후 주가가 3배 이상 상승함으로써 시세차익을 막대하게 얻었다.
D사의 핵심 임원은 배우자를 통해 위장업체 E사를 설립한 후 D사로 하여금 E사에 수십억 원을 대여하도록 지시했다. E사는 차입 당시 실체가 불분명하고 정상 영업이 불가능했다. 결국 얼마 되지 않아 결손이 누적되면서 청산됐다. D사는 결손을 이유로 자금 회수 노력도 없이 대여금을 대손 처리하고 자금 회수를 포기했다. 이를 통해 D사의 핵심 임원과 배우자는 E사의 수입을 챙겨 강남 소재 고급 아파트와 최고급 스포츠카를 취득했다는 사익편취 혐의로 조사 대상에 올랐다.
노정석 국세청 조사국장은 “어려운 경제여건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업의 사주는 방만 경영을 통해 이익은 사유화하고, 책임은 사회화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기업 이익을 독식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사주의 자녀들은 소위 부모찬스를 통해 재산증식 기회를 독점하며 최근 5년간 약 1조 원이 넘는 재산이 증가한 것은 물론 증가 속도 역시 부모세대를 능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령인력 활용정책 수립···공정한 룰 마련
양희승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빈부격차의 증대는 여러 문제를 낳고 있지만 특히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면서 “물론 성장을 위해 어느 정도 불평등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빈부격차가 심하면 성장을 저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의 지적처럼 빈부격차 심화를 방치하면 성장과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또한 빈곤층과 중·상층의 갈등이 더욱 깊어지고, 사회는 빈곤층과 중·상층의 갈등으로 분열된다. 따라서 빈부격차 심화 해소를 위한 대책을 찾는 것이 우리 사회의 과제다. 이를 위해 양 교수는 고령인력 활용정책, 로봇세 도입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양 교수는 “고령화로 인한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고령자의 노동시장 퇴장을 최대한 늦추고, 고령자를 생산적 인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고령인력 활용정책이 필요할 것”이라며 “또한 사회 구성원들의 노후대책에 대한 인식 전환과 함께 공적연금의 강화 등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히 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 교수는 “자동화로 인한 빈부격차에 대해서는 로봇세 도입 등이 논의되고 있다. AI·키오스크·플랫폼화 등으로 절감한 비용을 빌게이츠가 제안했던 로봇세를 통해 일부라도 다시 환원, 저임금·저숙련 계층의 가처분소득을 높여주는 것이 기본소득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면서 “보다 현실적인 방안은 AI 기술의 경우 특성상 독점으로 이어지는 구조 탓에 완전경쟁시장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을 근거로 AI 기술을 통해 성공한 테크기업들로부터 세금을 걷어 사회안전망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자산의 불평등도 개선이 필요하다. 이에 이형찬 국토연구원 주택·토지연구본부장 연구팀은 부동산 자산 불평등 완화 정책방안을 ▲조세정책 ▲재정정책(공급정책) ▲금융정책 ▲개발이익환수정책으로 구분, 제안했다.
이 본부장은 “조세정책으로 양도소득세는 공제와 감면 제한, 상속세와 증여세제는 급격한 누진세율 적용과 공제범위 제한, 종합부동산세제는 공정시장가액비율 일치와 공시가격 현실화를 추진하고 재정정책으로 저렴한 주택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며 “금융정책으로 저소득층이나 저자산층을 위한 금리와 세제 지원을 확대하고 개발이익환수정책으로 법 취지에 맞게 개발이익환수 부과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불법과 반칙에 따른 부의 축적과 대물림 근절이 시급하다. 불법과 반칙 방지대책을 마련하고, 불법과 반칙이 발견되면 엄벌해야 한다. 그래야 노력과 땀의 가치가 존중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노정석 국세청 조사국장은 “반칙·특권 탈세자에 대해 조사역량을 최대한 집중할 예정이다. 조사과정에서 증빙자료의 조작, 차명계좌의 이용 등 고의적으로 세금을 포탈한 행위가 확인되는 경우 조세범 처벌법에 따라 고발 조치하는 등 엄정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