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희 서울시 청년주거상담센터장 인터뷰
부동산 패닉 시대. 최근 몇년 간 수도권 집값이 무섭게 폭등하면서 서민들의 주거권이 더욱 위협을 받고 있다. 정부에서는 주거 안정을 위해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전세보증금보험제도 등을 내놓지만 집주인vs세입자의 대결 구도는 여전히 첨예하다. 집주인과 세입자는 늘 대결할 수밖에 없을까. 민간 임대업자를 포용하면서도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보장해주는 길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막바지를 향해 달려간다. 매스컴은 벌써부터 제20대 대통령 선거 보도들로 시끄럽다. 여느 정권과 마찬가지로 다사다난했지만, 부동산 문제는 문 정부를 관통하는 대표적인 키워드였다. 집값 폭등과 임대차 보호3법, LH 사태 등 굵직한 부동산 이슈가 임기 내내 주요 일간지 지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부동산 정책은 현 정부의 대표적인 아킬레스 건으로 꼽힌다.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평가가 줄지어 나오고 있다. 특히 임대차 보호3법은 임대인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시민사회계의 평가는 다르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세입자들에게 가혹한 나라다. 전월세 보증금마저 온전히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부지기수인 데다, 세입자를 보호하는 법망마저 무력하다는 것이다.
<뉴스포스트>는 부동산 거래 시 세입자들이 겪은 피해 사례 몇 가지를 선정해 예방책 및 해결 방안을 전문가로부터 알아보았다.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청년주거상담센터에서 최지희 센터장은 본지에 “보증금 등 당연히 돌려받아야 하는 돈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가 돼 있지 않다”며 “우리나라 세입자 권리가 약하다는 게 바로 이런 부분”이라고 말했다.
- 주거 문제로 센터를 찾는 이들은 얼마나 되나. 어떤 유형의 상담이 많이 들어오는가.
센터에서 상담을 시작한 것은 올해 4월 말이다. 실질적으로는 7월부터 문을 열었다. 센터는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춰 주거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룬다. 주거 상담과 교육, 1인가구 주택관리서비스, 동행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주택관리서비스는 공공 홈케어 집수리 사업이고, 동행 서비스는 집 보러 다니기 막막한 청년들을 위해 센터 상담사들이 함께 하는 서비스다.
올해에 제가 혼자 한 상담만 해도 400건이 넘는다. 상담 내용은 매우 다양하다. 다만 몇 가지 키워드는 분명히 있다. 관리비와 불법 건축물, 깡통 전세, 전세 사기 등과 관련해 문의가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상담 내용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청년들이 집을 구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한 문의와 임대차 계약 관련 문의다.
- 중개인을 끼지 않은 개인 간의 거래도 많아진다. 거래 시 주의할 점이 있나.
중개 거래를 굳이 하지 않아도 직거래가 기본이긴 하다. 하지만 부동산이 워낙 어렵고 단위가 크다 보니 우리는 나라에서 공인한 중개인을 끼고 거래를 하는 것이다. 중개 거래든 직거래든 상관없이 주의해야 할 점은 공통적이다. 반드시 임대인의 신원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실제 집주인과 부동산 계약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계약 시 집주인의 남편이나 자녀 등 가족이 대신 나와 거래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계약서의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추후 분쟁이 생길 때 불리할 수 있다.
- 다세대, 다가구, 근린시설 등 주거의 형태도 다양하다. 보증금을 지키기 쉬운 주거 형태가 따로 있을까.
주거 형태별로 순위를 매기기는 어렵다. 보증금을 지킨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집주인 당사자와 계약하기다. 그리고 전입신고와 확정일자 받기다. 저희 센터에서 언제나 강조하는 제일 기본적인 사항들이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다. ‘내가 이 집에 살고 있다’는 걸 모두에게 인정받는 항목이다. 임차권 등기 명령과 같은 법적 조치 등은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실 이 세 가지 말고도 중요한 게 되게 많다. 내가 거주하려는 집에 얽힌 빚이, 나보다 먼저 받아갈 빚이 얼마나 있는지 알고 들어가야 한다. 이 집은 담보가 몇 퍼센트인지 말이다. 중개소에 가면 알 수 있는데, 얼마인지 파악하고 집을 계약하는 게 중요하다. 이른바 ‘깡통 전세’인지 아닌지 미리 확인할 수 있다.
- 담보 파악이 ‘깡통 전세’를 피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인가.
그렇다. 집이 경매로 넘어갈 확률은 생각보다 높다. 그래서 거주하려는 집에 빚이 얼마나 있는지 보는 게 중요하다. 보통은 공인중개사에게 해당 정보를 알아봐 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임대인들의 허락 없이 집과 관련된 모든 빚을 세입자가 조회할 수는 없다. 이 부분이 문제다.
요즘은 ‘깡통 전세’가 너무 많다 보니까 일부 공인중개사들은 이런 현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요새 집들은 다 대출이 많다”, “이런 집 구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럴 때는 꼭 인근의 다른 부동산에서도 계약하려는 집에 대해 확인해보는 게 좋다.
- ‘깡통 전세’로부터 세입자를 보호하는데 법적으로 허점이 많나.
허점이 많은 정도가 아니라 그냥 보호가 안 된다. 깡통 전세에 관해서는 말이다. 소위 ‘갭 투자’라고 하지 않는가. 법적으로 불법이 아니지만, 약탈적인 방식이다.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주로 청년들이다. 조그만 집을 여러 채 쪼개서 사다 보면 1인 가구나 신혼부부들이 사는 주거가 타깃이 된다. (전세금 사고) 한 번 터지면 500채씩 이렇게도 막 터진다. 줄줄이 부도나면 전세금을 받을 길이 없다. 아니면 전세금 못 받는 대신 부도난 집의 소유권을 세입자가 갖던가. 이런 게 깡통 전세다. 완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 임대인들의 전세보증보험 의무가입이 지난 8월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소액 보증금은 의무 가입대상이 아니다. 서민들에겐 소액 보증금도 큰돈인데, 지킬 수 있는 장치가 있는가.
역시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는 게 중요하다. 이 둘을 받아놔야 ‘우선 변제권’이라는 게 생긴다. 채권자 중 다른 일반 채권자보다 먼저 배당을 받을 수 있는 권리다. 우선 변제권이라도 생기면 전액은 아니더라도 얼마 정도는 빨리 건질 수 있다. 현재로서는 거의 그게 다다. 우리나라 세입자들의 권리가 약하다는 게 바로 이런 부분이다.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받을 수 있는 조치가 안 돼 있다.
물론 ‘최우선 변제권’도 있다. 전입신고와 확정일자 두 가지를 갖추고 있지 않아도, 소액 보증금이면 최우선 변제권을 가질 수 있는 범위에 해당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최우선 변제권도 허점이 많다. 지역마다 최우선 변제권 기준이 다른데, 세입자가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렵다. ‘우리 집 보증금은 최우선 변제권에 해당하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세입자라면 무조건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는 게 기본이다.
- 퇴거할 때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 ‘원상 복구’ 시비가 붙기도 한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집에서 나갈 때 원상 복구 비용을 내라는 것은 보증금을 떼이는 대표적인 사례다. 시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집을 계약할 때 집안 구석구석 사진을 미리 촬영해 증거 자료를 만들어라. 렌터카 대여 시 차를 타기 전 사진을 엄청 많이 찍어 놓지 않는가. 집도 그런 게 필요하다. 문서화까지는 못하더라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증거 자료를 가지고 있는 게 좋다.
계약서 쓸 때도 주의해야 한다. 특약사항 같은데 ‘현 시설물 상태에서 임차하는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면 원상복구 시비가 붙을 가능성이 있다. 계약서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워 보통은 중개소에 가서 계약을 하는데, 이때 중개소에서 반드시 주는 서류가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다. 중개 대상인 집에 대해 확인하고 설명하는 서류인데, 내용이 되게 자세하다. 예를 들어 수압에 대해 ‘좋음’, ‘보통’, ‘나쁨’ 이런 식으로 체크할 수 있다. 이걸 중개사가 그대로 사인하게 놔두지 말고 실제로 집을 보고 온 다음 상태와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수압 문항에 ‘좋음’이라고 표시돼 있는데, 막상 집에 가보니 ‘나쁨’ 상태라면 나중에 이사할 때 덤터기 씌워질 수 있다.
- 퇴거 시 전세금 분쟁이 발생하면 세입자에게 불리한 거 같다. 세입자가 유리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결국 보증금 돌려받는 방법과 연결되는 거 같다. 집주인과의 소통은 카카오톡 메시지나 문자, 전화 통화 녹음 등 기록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 구두 계약도 계약이라고 하지만, 두 사람이 다른 주장하면 알 길이 없지 않은가. 집을 나가기 전에 집주인에게 ‘계약 종료일 혹은 합의한 날짜에 보증금을 달라’는 식으로 요청 후 이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보증금 반환 청구소송이나 손해배상 청구까지 할 수 있다. 보증금을 주지 않으면 세입자에게 피해가 간다는 것을 집주인이 아는 상황이라면, 손해배상 명분이 더 명확해진다. ‘보증금이 없으면 이사 갈 돈이 없다’, ‘보증금을 주지 않으면 피해가 막심하다’ 등의 내용을 집주인에게 미리 고지하는 게 중요하다.
- 집주인과 세입자가 잘 지내는 방법이 있을까? (웃음)
수많은 청년들과 상담을 해보면 결론이 ‘조상님이 공덕을 많이 쌓아야 한다’ 이런 얘기가 나온다. (웃음) 현재 법과 인식으로는 그렇다. 정말 상식적이고 괜찮은 임대인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잘 지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다. 지뢰밭이 곳곳에 있는 게 현실인 상황이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들을 최대한 마련해두는 게 좋다.
서로 누가 절대적으로 나쁘다,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긴 어려울 거 같다. 다만 보통은 세입자분들이 너무 참으시고, 할 말 못 하시는 경우가 많다. 저희 센터도 있고, 저희 센터와 연계해드릴 수 있는 다양한 곳들이 있다. 한 번쯤은 저희를 찾아서 ‘이게 맞나요’, ‘이렇게 해도 괜찮은가요’라고 질문을 주시면 저희도 힘을 얹어드릴 수 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다음부터는 직접 대처할 수 있다. 앞으로 살아갈 집들은 많으니까. 문제가 발생하면 어딘가로 도움을 청하면 좋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