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보험 의무화인데...가입 불가 집주인·세입자 수두룩
정작 보호 필요한 깡통전세 가입 안돼...비현실적 대책
부동산 패닉 시대. 최근 몇년 간 수도권 집값이 무섭게 폭등하면서 서민들의 주거권이 더욱 위협을 받고 있다. 정부에서는 주거 안정을 위해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전세보증금보험제도 등을 내놓지만 집주인vs세입자의 대결 구도는 여전히 첨예하다. 집주인과 세입자는 늘 대결할 수밖에 없을까. 민간 임대업자를 포용하면서도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보장해주는 길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정부가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모든 임대사업자들에게 전세보증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했다. 당장 이달 18일부터 모든 임대사업자들은 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하지만, 정작 가입이 가능한 집은 아주 제한적이어서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혼란에 빠진 모양새다.
전세보증보험이란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대신 갚아주는 보험 상품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SGI서울보증보험, 한국주택금융공사(HF)에서 가입할 수 있다. 이 중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의무가입처가 아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와 SGI서울보증보험 둘 중 한곳에서 가입해야 한다. 보험료는 임대인과 임차인이 3대 1로 나눠 내게 했다. 집주인이 가입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전세보증보험은 세입자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심각한 금전적 피해를 받지 않도록 방지하는 일종의 안전장치지만, 집주인과 세입자는 보증보험의 가입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부동산 현실 반영 못한 의무화 조치”
집주인들은 현실적으로 보험 가입이 불가한 임대사업자가 대부분인 점을 지적하며 정부가 범법자를 양산한다고 주장한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 회장은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대다수 임대업자들은 보험 가입이 불가능 한 데다가 추가 비용까지 든다고 지적했다.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임대업자는 다음과 같다. ▲ 주택담보대출금과 전월세보증금의 합이 주택가격보다 많거나 ▲ 주택담보대출비율이 주택시세의 60%를 넘거나 ▲ 신용불량 등일 경우 가입이 불가능하다. 이른바 ‘깡통 전세’는 가입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해당 가입 기준으로는 상당수의 임대업자들이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게다가 자칫하면 범법자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성 회장은 “주택가격은 보증보험 가입의 기준인데, 가격을 산정할 때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결정한다. 그런데 지방과 수도권 모두 공시가격이 현재 시세를 반영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지 않냐”며 “예를 들어 다세대 주택의 경우 공시가격의 130%만을 반영하는데, 이 경우 주택가격이 시세보다 훨씬 낮게 책정된다. 수도권 원룸 전세 시세가 6~7천만 원 선인데, 공시가격은 3~4천만 원 선이다. 130%를 반영하면 5천만 원 선이다. 이러면 대출금이 0원이어도 보증금이 주택가격을 넘어버린다. 이 경우 가입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보증보험 의무가입은 영세 임대업자들에게 금전적인 부담 역시 크다는 게 성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보험 가입을 위한 보증료가 있다. 그 외에도 공시가격으로 (보험) 가입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시 감정평가를 통해 주택가격을 산정해야 하는데, 감정평가 유효 기간은 2년이라서 비용 부담이 계속 발생한다”고 말했다.
성 회장은 “보증보험과 같은 대책보다는 임대차 계약 시 안전장치를 먼저 마련해야 하는 게 아닌 가 싶다. 전세 계약 시 공인중개사를 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증금 반환 부분에서 확인 작업이나 위험성을 줄이는 역할을 이들에게 부여하는 게 어떠한가”라며 “사회적 비용이 드는 보증보험 보다는 계약 당시에 전세금 미반환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선제적 대책이 더 실효성 있고, 임대인-임차인-공인중개사 3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안”이라고 주장했다.
정작 보호 필요한 집은 가입불가...세입자도 불만
현 보증보험 제도는 세입자의 보증금을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지만, 정작 보호가 필요한 집에는 보험 가입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 살펴봤듯이 대출금과 보증금의 합이 주택가격보다 많거나, 대출비율이 주택시세의 60%를 넘을 경우 보증보험 가입이 안 된다. 쉽게 말하자면 부실 위험이 적은 임대차 계약만 보호한다. 정작 보증금을 떼일 위험이 있는 ‘깡통전세’ 임차인들은 보증보험 의무화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 밖에도 보증보험에 가입 못하는 사각지대는 많다. 근린생활시설이나 사업용 오피스텔은 가입이 불가하다. 오피스텔 임대업자가 전입신고 불가 등의 불법을 이용해 사업용 오피스텔을 세입자에게 빌려주면, 세입자는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못한다.
또한 공인중개사를 거치지 않은 개인 간의 계약도 보증보험 가입이 불가능하다. 계약의 신빙성 문제로 제3자의 확인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덮어두고 보증 가능한 주택을 늘리는 것도 부담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 관계자는 12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모든 임차인들이 가입할 수 있는 게 가장 좋지만, 제한을 두지 않고 가입 시켰다가 미반환 사고가 계속 발생하면 손실이 기하급수로 증가할 수 있다”며 “공사 예산으로 감당할 수 없는 단계에 오면 국고 지원 요청까지 갈 수도 있다. 보증보험 가입 범위를 넓히는 데에는 여러가지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증보험 의무화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현장 혼란을 방지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정부의 가이드 라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피해자 발생을 줄이기 위해 보증보험 가입 시 기준이 되는 주택 가격 계산법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 시행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별다른 고시가 나오지 않아 시장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