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광내시경 수술 2일 만에 반려동물 사망
현행 수의사법,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 아냐
“발급 의무화 부작용 방지 법안까지 마련 必”

한국 사회에서 동물의 위치는 사안에 따라 다르다. 반려동물 가구에서 동물의 위치는 ‘가족’이지만 법에서는 인간이 소유한 재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동물의 지위가 사회적 합의를 얻지 못해 발생하는 갈등은 크다. 동물병원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화 논쟁이 대표적이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의 진료 기록을 보고 싶다는 보호자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수의학계의 입장이 팽팽하다. <뉴스포스트>는 동물병원 진료기록부 논쟁의 합의점을 찾아보았다. -편집자 주-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김민영(가명) 씨는 두 살 배기 반려견의 방광 내시경 시술을 위해 서울 소재 A동물병원에 방문했다가 반려견을 떠나보내야 했다. 김 씨는 사망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동물병원 측에 진료기록부를 요청했지만, 법적 한계에 부딪쳤다.

왼쪽부터 김민영(가명) 씨의 건강했던 반려견 의 생전 모습, 서울 A동물병원에서 시술 후 무기력한 모습. (사진=김민영 씨 제공)
왼쪽부터 김민영(가명) 씨의 건강했던 반려견 의 생전 모습, 서울 A동물병원에서 시술 후 무기력한 모습. (사진=김민영 씨 제공)

그날 A동물병원에서는 무슨 일이

사건은 올해 9월 1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방광결석 진단을 받은 반려견을 위해 서울 소재 A동물병원을 방문한 김씨는 개복 수술보다 가격은 비싸지만 체력적 부담이 덜한 방광내시경 시술을 선택했다. 상담 과정에서 김씨는 A동물병원으로부터 요도 천공 등 부작용에 대한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반려견은 방광결석을 제외하면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기에 김씨는 시술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같은 달 17일 시술 당일 발생했다. 김씨는 A동물병원 측으로부터 반려동물 요도 부분에 경미한 열상이 생겨 부득이하게 개복이 필요하다고 연락을 받았고, 급히 수술에 동의했다. 수술 후 A동물병원 측은 “소변도 잘 나오고, 의료진에게 꼬리를 흔드는 등 활기찬 모습”이라며 “문제없이 잘 회복하고 있다”고 김씨에게 전했다.

하지만 원장은 퇴원 전까지 면회를 오지 말라며 막았다는 게 김씨의 증언이다. 그는  “다음날 걱정이 돼 보호자들이 방문했지만 곁에 가지 못하게 했고, 멀리서 본 강아지 상태는 동물병원 측 말과 달리 좋지 않아 보였다”며 “보호자의 목소리를 듣고 분명 쳐다보았으나 평소처럼 꼬리를 치지도 않고 무기력하게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수술 후 잘 회복 중이라던 A동물병원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다른 병원으로 전원해야 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응급상황은 아니지만 반려동물이 누워있으려고만 한다며 24시간 보호가 가능한 인근의 협력 동물병원으로 전원을 권유했다.

김씨는 “A동물병원에서는 요도에 미세한 열상이 생겼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내시경 카테터가 방광을 뚫고 나오는 천공이 발생했다고 한다”며  “봉합 부위와 상관 없이 요관까지 폐쇄돼 소변이 아예 배출되지 않았고, 요독증이 전신에 퍼져 간헐적 발작 증상까지 보였다”고 말했다. 현직 의료인이기도 한 김씨는 A동물병원에서 소변을 잘 봤다던 반려견이 협력 병원으로 옮기자마자 소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수상하게 여겼다. 협력 동물병원에서도 ‘의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고 김씨는 전했다. 반면 A동물병원에서는 “방광 천공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왼쪽부터 수술 전 수액을 맞고 대기하던 건강한 모습, 협력병원으로 전원된 후 김민영(가명) 씨 반려견의 상태. (사진=김민영 씨 제공)
왼쪽부터 수술 전 수액을 맞고 대기하던 건강한 모습, 협력병원으로 전원된 후 김민영(가명) 씨 반려견의 상태. (사진=김민영 씨 제공)

A동물병원 “법대로 하세요”

상태가 악화하자 협력 동물병원에서 총 2차례의 응급수술이 진행됐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진행됐지만, 요독증 악화로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해 결국 목숨을 잃었다. A동물병원에서 방광내시경 수술을 받은지 단 2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김씨는 석연치 않았다. A동물병원은 상태에 대해 수차례 말을 바꿨다. 협력병원으로부터 받은 진료기록부를 확인한 김씨는 자신의 반려견이 의료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김씨에 따르면  A동물병원은 사망 이후에도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김씨 측이 병원을 찾아가자 수술비만을 환불해 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료기록부를 보여달라는 요구도 ‘법적 의무가 없다’며 거절했다.

김씨는 현재 A동물병원을 상대로 소송에 돌입했지만, 난항이 예상된다. 수의료소송을 위해서는 진료기록부를 확인해야 하지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현행 수의사법에 따르면 진료기록부는 요구가 있다고 해도 수의사가 발급해주지 않아도 된다. 사람을 진료하는 의사와 다르게 수의사는 진료기록부 의무 발급 대상이 아니다. 

<뉴스포스트>는 이달 10일 김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동물병원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화가 얼마나 필요한지 반려동물 의료사고 피해자의 입장을 통해 들어봤다. 인터뷰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서면으로 진행됐다. 김씨는 “허술한 현행법 때문에 수의료소송까지 제기하는 보호자가 많지 않아 끝까지 사과와 보호자가 원하는 피해보상을 해주지 않고, 진료기록부 발급도 거부하고 있는 거 같다”고 말했다.

-동물병원에서도 진료기록부를 의무적으로 발급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진료기록부에는 환자의 치료 방법과 검사 결과 등 진료 내용이 상세하게 기재돼 있다. 의료 사고 시 인과관계를 명확히 정의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자료가 될 수 있다. 만약 동물병원에서 진료기록부 발급이 의무화된다면 수의료분쟁 시 공정성을 기할 수 있고, 보호자들로부터 높은 신뢰를 형성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수의료서비스의 질 향상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 때문에 관련 법안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진료기록부가 없으면 보호자는 사후 대처가 많이 어렵나.

그렇다. 형사사건의 경우 A가 B를 살해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처벌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의료사고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환자가 사망했다고 한들 인과관계를 명확히 입증하지 못하면 과실이 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진료기록부는 의료사고의 인과관계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증거자료다. 이 때문에 진료기록부 없이 보호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소송 시에도 정보 격차가 생겨 보호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된다. 심지어 수의사가 진료기록을 조작해 의료과실을 입증하게 어렵게 만든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동물병원 의료사고와 관련해 국내법이 얼마나 허술하다고 보는가.

민법상 동물은 ‘물건’으로 규정돼 있어 의료사고가 인정되더라도 그에 대한 처벌과 배상액이 미미하다. 동물이 의료과실로 다치거나 죽더라도 보호자는 반려동물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한 ‘가격’만 보상받을 수 있다. 흔히 말하듯 ‘개 값’만 물어주면 된다. 또한 수의사법 상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가 없고, 진료기록부에 규정된 필수 기재사항에 치료 경과에 대한 상세 내용이 없다. 진료기록부를 발급받더라도 정말 형식적인 내용만 갖춰 허술하게 서류를 작성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동물 의료 소송의 경우 사람처럼 수탁감정을 받아주는 공식 기관이 없어 다른 수의사들에게 감정을 의뢰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감정촉탁이 수의사의 의견에 따라 소송의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주게 된다. 국내 수의업계는 좁다. 의료 과실 여부가 전적으로 수의사의 감정 의견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화를 위해 제도권은 무엇을 해야 하나.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화로 발생할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법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법안으로 보호자와 수의사 간의 의견차를 좁히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해야 한다. 수의사협회에서는 사회적 혼란과 무자격자의 자가 진료 증가를 우려하며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화를 반대하고 있다. 물론 현재 동물병원에서는 동물용 의약품보다 인체용 의약품 사용비율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사실상 약품 오남용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진료기록부 발급이 의무화된다면 수의사 처방전이 필요한 약품의 범위를 보다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농장 등 무자격자의 의료행위에 대한 단속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사람처럼 객관적으로 의료사고를 입증할 제3의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의료과실 여부가 감정촉탁을 받은 수의사의 의견에 따라 전적으로 결정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진료기록부 필수 기재사항에 치료 경과 등을 구체적으로 작성하도록 하거나, 일반 의료분야처럼 규정을 갖춘 간호기록부를 작성하도록 법안을 만들어 동물병원 의료체계를 보다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내년부터 동물의 간호업무를 담당하는 ‘동물보건사’라는 직업이 새로 생긴다고 한다. 환자의 상태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기록하도록 간호기록부 작성을 의무화한다면 동물 의료사고도 줄일 수 있고 수의료서비스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 의료사고가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허술한 현행법 때문에 의료사고로 피해를 입고도 보상은커녕 사과조차 받지 못하는 보호자들이 많다. 오히려 의료사고를 낸 병원이 역으로 명예훼손이나 협박죄 등으로 보호자 측을 고소해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것이 현실이다.

누구에게나 의료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의료사고 이후 의료진이 어떤 태도로 보호자 측을 대하고,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쪽으로 치우친 법에 의해 더 이상 동물이 고통받지 않도록 현행법이 개정돼야 한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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