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하강 국면 회복했지만… 업황 악화 우려 잔존
IRA 제외 시 배터리산업 적자… "내후년에야 반등 예상"

2024년 산업계는 전례없는 경기악화로 그 어느 때보다 날개없는 추락을 겪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환율이 1400원 선을 넘어섰으며, 코스피는 2400선을 위협받고 있다.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 주가도 한때 5만원선이 무너지는 등 경제 위기에 대한 우려가 그 어느때보다 커진 상태다. 또한 올해 코로나19 대유행이 공식적으로 종료됐음에도 기업 경기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의 활기를 되찾지 못하는 형국이다.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위기, 고환율이 불러온 원자재값 상승,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축소 우려, 중국의 경기 부진에 의한 공급과잉에 국내 대표산업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편집자주-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이 5일 SK하이닉스 주요 경영진과 함께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 HBM 생산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SK그룹)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지난해 삼성전자 DS부문과 SK하이닉스의 연간 영업손실은 각각 14.88조원, 7.73조원에 달했다.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PC·스마트폰 수요 감소와 IT 기업의 감원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 때문이었다. 올해는 IT 수요 증가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가격상승으로 회복 국면을 맞이했다. 


반도체, 하강 국면 회복했지만… 업황 악화 우려 잔존


삼성전자 DS부문의 영업이익은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12조2200억원으로 적자에서 회복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15조3700억원으로 삼성전자를 뛰어넘었다. 특히 3분기 영업이익만 7조300억원으로 종전 최대 실적인 2018년 3분기에 기록한 6조4724억원을 여유롭게 갱신했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세계 최초로 HBM 개발 및 양산을 이뤄낸 이래 고성능 D램 수요 증가 흐름에 맞춰 인공지능(AI)용 메모리인 HBM3E 양산을 시작했고, 엔비디아 공급 등으로 현재 HBM 시장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회사가 지난 9월 세계 최초로 양산한 5세대 HBM3E은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와 함께 챗GPT 등 AI 서비스 서버에 활용될 터라 전망이 밝은 편이다.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의 '엑시노스' 시리즈.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도 AI 시장 확대에 따른 고부가 메모리 수요로 실적을 회복했지만 업황 부진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DS부문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3.86조원으로 증권가가 추산한 전망치인 5~7조원대보다 낮았다. 한화투자증권은 4분기 DS부문의 예상 영업이익을 기존 5조8000억원에서 3조6000억원으로 대폭 내렸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의 적자 행진, 수요처 부진과 AI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주가 회복에 시간이 걸릴 것이란 우려도 내비쳤다.

미국 정부가 중국에 첨단 반도체 장비와 HBM 수출 규제를 추진하는 점도 불확실성으로 작용할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공급 비중이 높아 중국에 수출되는 HBM이 많지 않은 반면, 삼성전자는 수출 물량 중 중국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 통신은 "삼성전자 HBM 매출의 30% 정도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외에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 10월 "미국에 오는 반도체에 많은 관세를 부과하자" 고 발언하는 등 관세 위기가 촉발될 수 있다는 점도 위기 요인이다.


IRA 배제하면 '배터리 산업' 적자… "내후년에야 반등 예상"


삼성SDI 연구원들이 경기 수원시 전자소재연구단지에서 배터리셀(2차전지의 최소 단위)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삼성SDI)

'제2의 반도체'라 불리는 배터리 업계 또한 업황 악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배터리 3사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1000억원 정도로 전년 동기 대비 7%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올 상반기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이익은 3527억원, 삼성SDI의 영업이익은 5475억원이었다. 같은 기간 SK온은 7916억원의 적자를 냈다. 배터리 판가 하락과 공장 가동률 하락에 따른 고정비 상승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SK온은 3분기에는 출범 후 12분기 만에 24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이마저도 IRA를 통한 보조금(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 608억원을 제외하면 여전히 적자였다. LG엔솔 또한 보조금 4660억을 제외하면 3분기에 177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삼성SDI 전지사업 부문이 보조금을 제외해도 3분기 영업이익 532억원으로 순수 흑자를 기록했다. 삼성SDI도 내년부터 스텔란티스와의 합작법인 공장을 통해 보다 많은 보조금을 지원받을 방침이다.

이처럼 배터리3사의 IRA 의존도는 매우 큰 편이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조 바이든 행정부의 IRA 축소를 시사하고 있다. 그는 석탄과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 활용을 늘리겠다고 선언하며 전기차 등 청정 분야에 지원되는 보조금을 폐지 혹은 상당 부분 삭감할 기세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이 1일 제4회 배터리산업의 날 행사에서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이 지난 11월 1일 제4회 배터리산업의 날 행사에서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미국 대선 결과 발표 전 보조금에 대해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첫날 이웃 국가인 캐나다와 멕시코 상품에도 25% 관세를 예고한 바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이 두려울 수 밖에 없다. 

내년에도 반등이 어려울 것이란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김 사장은 앞서 지난달 1일 '배터리 산업의 날'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업황 반등은) 내년까지는 어려울 것"이라며 "내후년부터는 반등하지 않을까 전망한다"고 밝혔다. 전기차 캐즘(수요 정체)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캐즘 극복을 위해선 수요 확보가 가장 중요하고 이 부분에 신경쓰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 1위 신화' K-디스플레이… 中 추격에 1위 자리 내줘


삼성전자 모델이 지스타 2023 오디세이 체험존에서 오디세이 'OLED G9'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모델이 지스타 2023 오디세이 체험존에서 오디세이 'OLED G9'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반도체·배터리와 함께 정부가 3대 주력기술 분야로 키우는 디스플레이도 내우외환을 맞이했다.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로 액정표시장치(LCD) 시장 주도권을 뺏긴 데 이어, 올해엔 국내 기업이 사활을 걸고 있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마저 중국의 공세 속에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 내부에선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세계 스마트폰용 OLED 패널 점유율(매출액)에서 중국은 42.6%를 차지했다. 이는 2022년 1분기 19.6%, 지난해 1분기 27.6% 대비 크게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한국 기업의 점유율은 57.3%로 과반이었지만, 2022년 1분기 80%, 지난해 1분기 72.3%의 점유율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떨어졌다. 

출하량 기준으로 보면 중국에 1위를 내줬다. 전체 OLED 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49.7%로, 항상 1위를 차지하던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의 점유율은 49%로 하락했다. 지난해 1분기 당시 한국과 중국의 점유율은 각각 62.3%와 36.6%로 차이가 컸음에도 1년 만에 순위가 뒤바뀌었다. 중국 당국은 미중 갈등 이후 공급망 위기 타개를 위해 자국민들에게 애국 소비를 독려하고, IT 업체들에게도 자국산 부품 사용을 장려하면서 중국 업체들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LG디스플레이 광저우 공장 전경. (사진=LG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광저우 공장 전경. (사진=LG디스플레이)

영향을 직격탄으로 받은 LG디스플레이의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손실은 1조원을 넘겼다. LG디스플레이는 유동성 확보를 위해 광저우 대형 LCD 공장법인의 지분을 TCL그룹 CSOT에 매각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확보한 2조원 이상의 자금은 OLED 사업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인력 효율화를 통한 구조조정도 나서고 있다. 회사는 지난 6월 생산직, 지난 11월에는 5년 만에 사무직 희망퇴직까지 실시했다. LG디스플레이 측은 "광저우 LCD 사업 공장 매각 등 대형 LCD 사업을 종료하고 최근 구미에 있는 노후화된 공장들이 가동을 중단하면서 유휴 인력이 발생했다"며 "이번 희망퇴직은 올레드(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사업 고도화와 인력 효율화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