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수요 증가 전망에 정제마진 안정적
反ESG 흐름 더해져 친환경 사업 부담↓
"SAF, 폐플라스틱 열분해 등 기술개발 진행"

2020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석탄 관련 기업에 투자중단을 밝힌 이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대세로 떠올랐지만, 반(反)ESG를 외쳤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전환금융 촉진 등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탄소 다배출 업종으로 꼽히는 석유화학 기업들에겐 이러한 흐름이 호재일까. 정유·석유화학사들의 대응 전략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HD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사진=HD현대오일뱅크)
HD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사진=HD현대오일뱅크)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HD현대오일뱅크가 정유 사업 비중 점진적 축소에 나서는 가운데, 원유수요 증가와 반(反)ESG 등 흐름에 힘입어 축소 속도 조절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탄소배출 주범으로 평가받는 정유 사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줄어들고, 국제유가 하락으로 정제마진 또한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美원유 생산량 증가·저가 유지에 정제마진 안정


18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전날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67.58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최고치를 기록했던 2022년 3월 11일 123.7달러와 비교 시 절반 수준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석유, 가스 채굴 확대 방침을 내건 만큼 생산량 증가는 유가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 정제마진을 위해 저가로 원유를 수입하는 정유사 입장에선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에너지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우리나라의 석유 의존도는 37.6%로, 이중 중동 지역 의존도는 76%에 달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 1기 집권 당시 아메리카 원유 수입량이 6배 이상(2016년 3만배럴→2019년 18만 배럴) 늘어난 선례가 있어, 미국 원유 수입을 압박해 의존도가 늘어날 수 있는 형국이다.

특히 중동 위주의 OPEC가 내년까지 원유 감산에 나서는 반면, 미국은 작년 12월 하루에 1361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해 생산량 최고치를 찍는 등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거듭났다. 이는 유가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해, 감산에도 국제유가는 60달러대에 그치고 있다.

정제마진은 원유 가격과 운송료를 제외한 제품 판매 가격으로, 통상 4~5달러 이상이면 수익을 낼 수 있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지난주 복합 정제마진은 7.9달러로 전주 대비 0.8달러 줄긴 했지만, 손익분기점은 여전히 여유롭게 넘긴 상황이다. 유가가 한동안 급등하지 않으면 정제마진은 지금처럼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반ESG·원유 수요 증가에 당분간 축소 않을 듯


현대오일뱅크는 2030년까지 친환경미래사업의 영업이익 비중을 70%까지 확대키로 했 현대오일뱅크 제공
현대오일뱅크는 2021년 '비전 2030'을 선포해 2030년까지 친환경미래사업의 영업이익 비중을 70%까지 확대키로 했다. (사진=현대오일뱅크)

정제마진이 이처럼 유지되면 HD현대오일뱅크가 정유 사업 축소 속도를 늦출 수 있다. 회사는 지난해 통합보고서에서 2040년까지 친환경 제품의 비중을 18%(중량 기준)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정유 사업의 점진적 축소를 꾀하고 있지만, 지난해 3분기까지 전체 매출(내부거래 제외)에서 정유 사업 비중은 81%에 달해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서유정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탄소중립에 발맞춰 우리나라 정유·석유화학  비중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나 당분간은 현재의 위치를 어느 정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나라 석유제품 수요는 2050년까지 연평균 0.7%씩 감소가 예상되나, 산업에선 수요가 연평균 0.5%씩 증가해 2050년에 9000만toe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탄소 다배출 업종인 정유·석유화학에 대한 반감이 줄어드는 점도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화석연료 산업 종사자들의 지지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석유·가스 규제 철폐와 파리기후협약 탈퇴, 기후정책 관련 부서 폐쇄 등 반ESG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ESG 펀드 투자도 감소했고, 미국 주요 은행들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글로벌 은행 연합체 '넷제로은행연합'을 탈퇴하는 등의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20년대 후반 원유수요가 정점을 도래한 뒤 2030년대 이후 수요가 정체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까지는 수요가 상승할 전망인 만큼 급격한 정유 사업 축소는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탈화석 흐름 거스를 수 없어 친환경 투자 계속"


(왼쪽부터) 송명준 신임 HD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정임주 HD현대오일뱅크 공동대표이사. (사진=HD현대)
(왼쪽부터) 송명준 HD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정임주 HD현대오일뱅크 공동대표이사. (사진=HD현대)

HD현대오일뱅크 측은 트럼프 시대에 친환경 사업에서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지만, 기술력은 꾸준히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탈화석연료라는 큰 흐름을 막지는 못하니 자사 등 정유·석유화학 기업들도 탄소를 저감할 수 있는 제품이나 신사업들을 개발하고 있다"며 "지속가능항공유(SAF), 폐플라스틱 열분해 등 관련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지난달 공시한 투자설명서에서 "정유산업은 탄소 저감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장기적인 관점의 대책과 계획을 비전에 담고 이행 중에 있다"며 "▲친환경/저탄소 연료 도입 및 CCU 사업개발 ▲해외 청정 암모니아 도입 및 수소 전환 기술 연구 ▲수소충전소 ▲바이오디젤 생산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 친환경 LNG 발전 등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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