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탄소다배출 업종 비판 받았지만
전환금융 통해 탄소저감 금융지원 가능성
에쓰오일 "2030년까지 석유화학 비중 25%"
2020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석탄 관련 기업에 투자중단을 밝힌 이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대세로 떠올랐지만, 반(反)ESG를 외쳤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전환금융 촉진 등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탄소 다배출 업종으로 꼽히는 석유화학 기업들에겐 이러한 흐름이 호재일까. 정유·석유화학사들의 대응 전략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지난달 28일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파국으로 끝난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고위급 협상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최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회담에 직접 참여하진 않지만 10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만나 "빈 살만의 현명한 관점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감사한다"며 그를 높이 평가했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실권을 잡은 사우디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미국과 러시아 사이 포로 교환을 중재한 데 이어 최근 미국-우크라 회담도 자국에서 성사시켰다. 단순한 석유 강국에서 벗어나 국제 분쟁을 중재할 수 있는 국가를 지향하는 것이다. 경제도 이에 맞게 원유 의존 산업 구조에서 전기차, 배터리 등 제조업과 특히 석유화학 투자를 확대하는 등 국제적 영향력을 떨칠 기세다.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로 석유화학 전환 가속화
정유·석유화학 기업 에쓰오일은 사우디 왕실이 100% 지배하는 아람코를 모회사로 하고 있다. 아람코는 에쓰오일 지분 63%를 가진 모회사로 에쓰오일은 아람코와 장기 원유 공급 계약을 맺고 원유를 들여오고 있다. 소매경질유 시장 점유율은 2019년 23.7%에서 2023년 27.1%로 상승해 창사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 유가 하락과 고환율 영향으로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이 460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6% 감소했다. 정유부문에선 2454억원 적자를 낸 반면 석유화학부문은 1348억원의 흑자를 냈다. 비록 석유화학 스프레드(원재료와 완제품 가격 차이)가 전년 대비 약세를 보임에 따라 영업익은 전년 대비 30% 이상 줄었지만, 석유화학사들이 대부분 적자를 기록한 것에 비해 선방했다.
에쓰오일은 정유 사업 의존도 탈피를 위해 국내 석유화학 역사상 최대 규모인 9조2580억원을 투자하는 샤힌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샤힌 프로젝트는 온산국가산업단지 내 에쓰오일 울산 Complex에 인접한 약 48만 평방미터의 부지에 TC2C(원유를 직접 석유화학 원료로 전환하는 시설), 스팀 크래커(에틸렌 생산시설), 저장 설비 등을 건설하는 것이다.
내년 하반기 가동이 이뤄지면 에틸렌(180만 톤), 프로필렌(77만 톤), 부타디엔(20만 톤), 벤젠(28만 톤) 등 기초유분을 생산하며, 그중 에틸렌을 원료로 플라스틱을 비롯한 다양한 합성 소재 생산에 사용되는 폴리에틸렌(LLDPE 88만 톤, HDPE 44만 톤)을 자체 생산할 계획이다. 생산된 유분은 국내 석유화학 다운스트림 업체들에게 주로 배관을 통해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반ESG, 전환금융…"온실가스 배출량 지속 감축"
석유화학은 철강과 함께 대표적인 탄소 다배출 산업으로 꼽히는 만큼 탄소중립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다. 석유화학사들의 탄소 배출량은 국내 전체 배출량의 8%를 차지하는 가운데, 녹색전환연구소는 샤힌 프로젝트가 최소 300만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유럽연합(EU)이 탄소 다배출 업종인 철강, 시멘트, 비료, 전기 등을 수입할 때 수출 기업에 탄소국경세(CBAM)를 부과하기로 정한 가운데, 석유화학과 정제 분야도 CBAM 부과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 실제 부과로 이어질 시 전체 수출액의 5% 이상을 CBAM으로 지불하게 될 수 있다.
하지만 화석연료 산업 종사자들의 지지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석유·가스 규제 철폐와 파리기후협약 탈퇴, 기후정책 관련 부서 폐쇄 등 반ESG 흐름을 주도하면서 글로벌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ESG 펀드 투자가 감소한 데다 미국 주요 은행들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글로벌 은행 연합체 '넷제로은행연합'을 탈퇴했다.
다만 반ESG는 일시적 흐름일 뿐 장기적 관점에선 ESG 경영은 필수적이라는 제언도 나온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은 "정권이 바꾼다고 실존하는 기업의 위험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은 오히려 가속화 되고 있다는 점, 고객사의 마케팅 및 제품 경쟁력 측면에서도 공급망 저탄소화는 유리하는 점, 고객사의 입장에서 보면 ESG 요구 지속이 가격협상에서도 유리하다는 점에서 ESG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그동안 친환경 기업에만 자금을 지원했던 '녹색금융'에서 탄소다배출 기업의 저탄소 전환을 지원하는 '전환금융'으로 변화하는 흐름이 호재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탄소다배출 기업이 탄소저감 설비투자 시 금융기관으로부터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최희재 하나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2030년까지 55조 달러의 전환금융 수요가 전망되는 가운데 아직 41조 달러의 투자 기회가 남아있어 금융기업들에게 매력적인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에쓰오일은 일단 ESG 경영 체계를 고도화한다는 방침이다. 에쓰오일은 지난 4일 투자설명 공시를 통해 "저탄소 에너지 도입 및 활용, 바이오 매스 및 플라스틱 폐기물 기반 정유/석유화학 제품 생산과 같은 신에너지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며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2030 BAU 배출량 대비 35% 절감하는 로드맵을 수립하였으며 지속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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