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가상자산 레버리지 상품 이용 주의보
거래소들 소집해 가이드라인 마련 위한 회의 열어

(사진=빗썸)
(사진=빗썸)

[뉴스포스트=김윤진 기자] 빗썸에 이어 업비트까지 가상자산 레버리지 상품을 내놓자 금융당국이 이용자 보호에 나섰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가상자산 대여 서비스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 위한 첫 회의를 정부서울청사에서 지난달 31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금융연구원, DAXA(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와 소속 거래소 5개사가 참석했다.

금융당국이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선 까닭은 최근 업계가 레버리지 상품을 확대하고 있는 탓이다. 레버리지란 빌린 자금으로 거래 대상의 시세 등락폭보다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단기 투자 방식이다.

업비트와 빗썸은 최근 '코인 빌리기'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는 이용자가 원화나 가상자산을 담보로, 가상자산을 대여하는 서비스다. 고점에 빌려 매도하고 저점에 다시 사서 상환하는 게 가능해, 증권시장의 공매도(숏 포지션)와 판박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빗썸의 경우 '렌딩'이라는 상품도 운영해왔다. 렌딩도 코인 빌리기와 마찬가지로 거래소로부터 가상자산을 빌려 하락장에서도 수익을 낼 여지가 있는 상품이다.

문제는 이런 레버리지 상품은 투자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이용자는 대여한 자산은 물론 담보로 내준 자산까지 잃을 수 있다. 가상자산 거래 자체가 이미 고위험 상품으로 분류되는 만큼, 레버리지 상품 이용에는 더욱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특히 빗썸은 코인 빌리기 대여 한도가 10억원에 달할 정도다. 이는 증권 시장에서 키움증권·미래에셋증권 등이 개인의 대주(주식 빌리기) 한도를 1억원으로 제한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가상자산거래소 이용자들 "렌딩, 이해 못하겠다"


가상자산거래소 사업은 금융업이 아니다. 렌딩 서비스 역시 이용자가 자본시장법이나 금융소비자보호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금융상품이 아니다.

그런데 빗썸 등 거래소들은 금융상품의 메커니즘을 차용해 신규 서비스를 내놓는다. 렌딩이나 코인 빌리기는 증권 시장의 레버리지 거래, 대주 서비스와 비슷한데 이용 조건이 비교적 간소하다.

렌딩과 같은 개념과 용어 또한 생소해 이용자들이 혼선을 겪는다. 실제로 빗썸이 렌딩 서비스를 소개하는 유튜브 동영상의 댓글난을 보면, 상품 이해가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빗썸의 렌딩 서비스를 소개하는 유튜브 동영상의 댓글난에, 이용자들이 렌딩 서비스 이용 방법을 묻는 모습. (사진=빗썸 유튜브 채널)
빗썸의 렌딩 서비스를 소개하는 유튜브 동영상의 댓글난에, 이용자들이 렌딩 서비스 이용 방법을 묻는 모습. (사진=빗썸 유튜브 채널)

빗썸은 업계에서 남다른 행보를 보인다. 업계 1위 업비트는 같은 서비스를 하더라도 대여 한도를 빗썸보다 낮추는 등 몸을 사리는 분위기지만, 빗썸은 금융상품과 비슷한 신규 서비스 개발에 적극적이다. 이 같은 기조에서 나온 상품이 렌딩과 코인 빌리기다.

빗썸은 렌딩 서비스를 지난달 29일 종료했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눈치를 본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지만 사실이 아니다. 빗썸은 이 소식을 알리는 공지문에서 "보다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해 렌딩 서비스를 종료하고 코인 빌리기로 일원화한다"고 종료 취지를 밝혔다.

코인 빌리기 서비스도 잠정 중단했으나 원인은 폭발적 수요 때문이었다. 빗썸은 "현재 대여 가능 수량을 모두 소진해 신청을 받지 않는다"고 공지했다.


가상자산 대여 서비스 가이드라인, 어떤 내용 담기나


금융당국은 앞으로 가이드라인 세부 사항을 거래소들과 논의할 계획이다. 해외 규제 현황, 주식 등 관련 시장의 규율 방식, 국내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한다.

레버리지 허용 여부에 대해서도 의견을 모은다. 서비스 이용자 범위, 대여 가능 가상자산 범위, 이용자 교육 및 위험 고지 등 이용자 보호 방안도 다룬다.

여기에는 증권사의 개인 대주 제도를 참고할 가능성이 크다. 증권사의 경우 금융위원회 가이드라인에 따라 모의투자와 교육을 이수한 투자자에게만 주식을 빌려준다.

이수한 주식 투자자는 3000만원 한도로 주식을 대여할 수 있다. 차입 규모가 5000만원 이상이면 대주 한도가 7000만원으로 증가한다. 여기에서 2년이 경과해야만 제한이 사라진다.

금융당국은 가이드라인 마련에 앞서 이용자 피해 우려가 크거나 법적 위험이 있는 서비스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했다. 당국은 이르면 이달 중으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법제화를 신속히 추진할 방침이다.


빗썸의 '도전'에…금융당국은 '행정력' 낭비


금융당국은 가상자산 대여 서비스 가이드라인 마련에 착수한 배경에 대해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등 현행 법규 및 제도하에서 가상자산 대여 서비스에 대한 명확한 규율 체계가 없어, 주식 등 여타 시장과 달리 이용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부족할뿐 아니라, 가상자산거래소들도 법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대여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부 서비스는 이용자에게 과도한 레버리지를 제공하고 있는데, 해당 서비스에 대한 이해나 정보가 부족하거나, 대여받은 가상자산의 시세가 당초예상과 달리 급격히 변동할 경우 이용자에게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2단계 입법 전이라도 가상자산 대여 서비스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해 운영해야 한다는 시장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의 언급처럼 가상자산 레버리지 상품의 위험성은 줄곧 제기돼왔다. 그러나 DAXA는 자율규제 등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업비트와 빗썸의 잇단 레버리지 상품 출시는 금융당국이 가이드라인 마련에 행정력을 할애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국회와 금융당국이 규제 속도를 조절하는 까닭은 미국, 유럽 등 해외 법제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다. 또 시장이 형성될 시간을 벌어주는 목적도 있다.

규제 강화는 새로운 사업자의 진입장벽을 높일 수 있어 혁신을 저해하기도 한다. 따라서 업계는 적극적인 자율규제를 통해 이용자 신뢰를 형성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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