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규직 직원, 22개월마다 해고 통보 후 재입사…‘고용불안 심각’
- 지원급 빌미로 정규직 전환 요구하지 않겠다는 합의서 작성 종용

[뉴스포스트=선초롱 기자] 한국조폐공사가 여권발급부 비정규직 직원 처우 논란에 휩싸였다. 최근 ‘2020년 공공부문 인적자원개발 우수기관’로 선정된 것과는 전혀 다른 행보다. 공사는 이른바 ‘쪼개기 계약’은 물론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지 않을 것을 종용하는 비밀 합의서를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공사 측은 ‘일용직’이라 문제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오는 19일 진행될 국회 국정감사에서 또 한 번의 설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조폐공사 사옥 전경. (사진=한국조폐공사)
한국조폐공사 사옥 전경. (사진=한국조폐공사)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조폐공사 여권발급부 소속 여성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출근 여부를 하루 전 오후 5시에 통지받는 등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8월 24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용혜인 의원이 조폐공사를 상대로 비정규직 직원에 대한 노동환경에 대한 질의를 통해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용 의원에 따르면 조폐공사에서 여권 제조·발급·판독검사를 담당하는 ID(Identification)본부 일용직 근로자들은 네이버 밴드 등을 통해 매일 출근 여부를 통지받고 있었다. 이 같은 방식의 통지는 12년 동안 이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엔 코로나19 여파로 여권 발급 수요가 감소했다는 이유로 통상 60여명이 근무하던 ID본부엔 지난 2월 36명, 8월 10명, 9월 6명이 출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들은 ‘일용직’ 신분인 탓에 휴업수당, 고용안정지원금은 받을 수 없었고, 근로계약상 4대 보험이 가입돼 있는 등 고용이 지속됐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었다.

ID본부 일용직 근로자들이 작성한 근로계약서가 노동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용 의원에 따르면 이들이 작성한 근로계약서에는 상시적 업무에 적용되는 주휴수당, 연차휴가수당 규정이 포함돼 있었다. 채용공고에도 일용직 노동자에게는 불필요한 ‘고용만료월’이라는 계약 기간이 기술돼 있었다. 상시 근로자에게만 적용되는 내용으로 규정하면서도 이에 대한 의무를 피하기 위해 일용직으로 계약하는 편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용직 근로자들은 조폐공사가 정규직 전환을 피하기 위해 ‘쪼개기 계약’을 해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근로계약서 작성 후 22개월이 지났을 무렵 공사 측으로부터 암묵적으로 퇴사 종용을 받고 사직서를 냈다는 것. 실제로 9년간 조폐공사에서 근무하면서 입사만 4번 이상 했다는 이들도 있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부 방침 및 기간제법에 따르면 2년 이상 고용이 계속되는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한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달 15일엔 ‘비밀 합의서’ 논란이 불거졌다. 코로나19 지원금 지급을 명목으로 비정규직에게 ‘정규직 전환 요구를 하지 않는다’, ‘합의서 내용을 정부·국회·언론 등에 제공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작성토록 요구한 것이다. 이외에도 ‘합의서 체결 후 민·형사 등 법적 분쟁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한국조폐공사 일용직 근로자들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폐공사 고용법률 위반과 금전합의 강요’를 당했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주휴, 연차수당을 지급하면서도 여전히 일용직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은 법 위반 사실을 알고도 악의적으로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공사가 이렇게 일용직으로 분류한 목적은 인건비를 적게 지급하기 위함”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조폐공사 측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매일 여권 발급량이 달라지는 특성상 일용직으로 할 수밖에 없었고, 차세대 여권이 도입되기로 결정됐기 때문에 한시적 업무를 하고 있는 이들은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것이다. 합의서에 대해서도 업무 성격상 기간제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어 그동안 제외됐던 수당들을 지급하고자 작성한 것으로, 통상적인 계약서 내용일 뿐 별다른 의미는 없다는 설명이다.

한편, 한국조폐공사는 이달 19일 국감을 앞두고 있다. 정치권에서 해당 문제를 제기한 만큼 이번 국감에서 ‘ID본부 비정규직 근로자 이슈’를 짚고 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 기조에 반한다는 점에서 더욱 질타를 받을 공산이 크다. 조용만 사장이 이와 관련해 어떤 개선방안을 준비했을지 이번 국감에 업계의 관심이 모인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