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샵 덕분愛(애) 방문기 

“재활용 쓰레기는 늘어나는데 리사이클 수요는 없고, 수요가 없으니 가격은 계속 떨어지고...쓰레기를 수거해 가려는 업체가 없어요. 예전에는 할머니들도 다 주워가던 폐지가 요즘은 길바닥에 그대로 있어요. 가격이 안 맞아 받지 않거든요. 쓰레기는 넘쳐나지만 수거업체는 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에요.”

재활용 수거업체 관계자의 얘기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급증한 플라스틱 사용으로 인해 ‘제2의 플라스틱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코로나가 낳은 언택트 시대,  일회용 제품 사용으로 코로나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는 점점 병들어가고 있다. 

<뉴스포스트>는 플라스틱 재활용에 대한 오해를 짚고, 수거 현장 동행취재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또한 쓰레기 배출 방지를 위한 ‘제로웨이스트’ 체험기, ‘제로웨이스트샵’ 방문기 등 5편의 기획기사를 통해 환경보호 및 개선의 길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서울 서초구 덕분애 제로웨이스트샵의 리필스테이션.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서울 서초구 덕분애 제로웨이스트샵의 리필스테이션.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리사이클링 이전의 프리사이클링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폐기물 처리를 위한 대책으로는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리사이클링(Recycling), 단순 재활용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업사이클링(Upcycling)’ 등의 움직임이 있었다. 최근에는 폐기물 자체를 만들지 않는 ‘프리사이클링(Precycling)’의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프리사이클링이란 장바구니나 텀블러 등을 미리 챙기는 작은 수고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을 말한다. 병을 어떻게 치료할지 고민하지 않고, 병 자체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

포장재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프리사이클링 가게는 2014년 독일에서 첫 문을 열고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베를린의 슈퍼마켓 ‘오리지널 언페어팍트(Original Unverpackt)’에서 판매하는 400여 종의 제품은 담아 갈 수 있는 비닐이 없다. 고객이 챙겨온 용기에 원하는 만큼 제품을 담아 간다. 현재는 덴마크와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에 이어 미국 뉴욕에서도 포장재 없는 가게가 문을 열었으며, 국내에도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는 제품들을 판매하는 제로웨이스트샵들이 생겨났다.  

택배나 장 본 물건을 정리할 때 수북하게 쌓이는 플라스틱과 비닐의 심각성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다면 제로웨이스트샵 방문을 추천한다. 제로웨이스트샵이란 말 그대로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방식의 소비를 할 수 있는 매장이다. 이곳에선 환경과 나를 위하는 소비의 첫걸음을 뗄 수 있다.  <뉴스포스트>는 서울 서초구 ‘덕분愛(애)’를 방문해 제로웨이스트를 도와주는 도구를 살펴봤다. 

지난 12월 서울 서초구에 문을 연 덕분에 제로웨이스트샵은 다음 세대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제로 웨이스트를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할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제품과 방법을 소개한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지난 12월 서울 서초구에 문을 연 덕분에 제로웨이스트샵은 다음 세대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제로 웨이스트를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할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제품과 방법을 소개한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30개 품목에 달하는 리필 스테이션 


“용기 가져오셨나요?”

지난해 12월 문을 연 덕분애는 강남역 9번 출구에서 5분 정도 직진하면 나오는 진흥아파트 단지 상가 내 2층에 있다. 덕분애 매장 문을 열자 거대한 통에 담긴 액체들과 식료품 등이 눈에 들어왔다. 매장의 리필 스테이션으로 주방 세제, 세탁 세제, 견과류, 원두 등 종류만 30개에 달했다. 구매 문의를 하자 직원은 이를 담아 갈 용기를 가져왔냐고 물었다. 쇼핑하러 가는데 무슨 준비물이 있어야 하나 싶을 수도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은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 등에 담겨 쓰레기를 배출하게 되지만, 리필 스테이션은 말 그대로 비어 있는 그릇에 필요한 만큼의 내용물을 다시 담아 갈 수 있어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는다. 

고객은 미리 준비한 유리병이나 면 주머니에 세제나 식자재를 담아 무게를 잰 후 비용을 지불하면 된다. 개인이 챙긴 용기에 담아 가지만 만약 용기를 깜빡했다면 다른 고객이 기부한 공병을 통해 자원순환에 참여할 수 있다. 실제로 매장 한편에는 깨끗하게 세척된 유리병이 가득했다. 

이윤경 덕분애 대표는 리필 스테이션 상품은 원료부터 생산까지 친환경적이고 깨끗한 성분을 사용하는 브랜드만 입점해 있다고 설명했다. 화학 업계에 25년간 종사한 이 대표는 미세 플라스틱, 환경호르몬에 대한 관심으로 제로웨이스트샵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윤경 대표는 “작년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너무 많은 배달쓰레기, 음식물 쓰레기 등이 발생했지만 제대로 재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플라스틱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방법들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심각성을 알리고 같이 실천해볼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느껴 문을 열게 됐다”라고 전했다. 

리필 스테이션 좌측에는 천연 수세미와 다양한 세척솔 등이 있었으며, 우측에는 세제와 수세미 등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싱크대도 준비돼 있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 1g 단위로 리필 제품을 판매하는 ’리필스테이션’, 일회용 비닐봉투나 랩 대신 사용하는 ’다시쓰는 그랩’, 플라스틱 빨대를 대체할 수 있는 빨대들, 친환경 반려동물 용품.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왼쪽부터 시계 방향) 1g 단위로 리필 제품을 판매하는 ’리필스테이션’, 일회용 비닐봉투나 랩 대신 사용하는 ’다시쓰는 그랩’, 플라스틱 빨대를 대체할 수 있는 빨대들, 친환경 반려동물 용품.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다양한 친환경 제품


매장에는 샴푸 바, 클렌징 바 등 고체 형태의 제품들도 많았다. 이 대표는 “우리가 사용하는 샴푸 등 액체 형태의 제품들은 물과 기름이 섞이도록 하기 위해 굉장히 유독하고 몸에 자극적인 계면활성제가 들어간다. 그걸 대체하는 제품 자체도 화학제품으로, 고체면 액체 상태보다는 훨씬 더 안전한 제품들을 사용할 수 있다”면서 “액체는 플라스틱 통에 들어가야 하지만, 고체는 종이박스만 있으면 된다. 쓰레기도 줄이고 몸에 유해한 계면활성제도 들어가지 않아 고체로 된 상품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상품들은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제일 기본으로 바꿔나가는 손수건, 텀블러부터 반창고, 어린이 장난감, 반려동물용품까지 다양했다. 생각보다 많은 종류의 제품에 무엇부터 바꿔 나가야 할지 고민이 됐다. 덕분애에는 이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스타트업 키트도 있었다. 대나무 칫솔, 고체 치약, 천연 치실, 손 세정제, 밀랍랩 등으로 구성됐다. 

비닐 랩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밀랍랩은 생소했는데 꿀벌들이 벌집을 짓는 기초 재료인 천연 밀랍을 면 원단에 먹인 포장재였다. 식자재나 그릇에 대고 몇 초간 꾹 눌러주면 손의 온기로 접착력이 생겨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고 유지된다. 과일이나 채소 보관용으로 적절하며, 밀랍랩이 닳으면 밀랍을 칠해 프라이팬에 살짝 구워내면 다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세척은 찬물과 저자극 세제를 이용해 부드러운 천으로 닦아서 말려주면 된다. 

덕분애는 특히 플라스틱 비닐백을 대체할 수 있는 밀랍백을 추천했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쓰이는 플라스틱 비닐백을 밀랍으로 만들어진 백으로 대체하자는 것. 밀랍백은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것이 아닌 깨끗하게 세척하고 건조하면 재사용이 가능해 6개월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동안 환경 기사를 작성하면서 플라스틱 빨대에 대한 심각성을 많이 느꼈다. 플라스틱 빨대는 코팅이 돼 있고 크기가 작아 선별과정에서 쓰레기로 분류된다. 제로웨이스트샵에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유리 빨대, 스테인리스 빨대, 실리콘 빨대 등 재사용이 가능한 빨대 3종이 준비돼 있었다. 

덕분애는 플라스틱 뚜껑을 모아 환경연합에 전달해 업사이클링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덕분애는 플라스틱 뚜껑을 모아 환경연합에 전달해 업사이클링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단순 매장에서 환경 거점으로  


매장 한편에는 플라스틱 뚜껑과 종이백 등을 모아놓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매장이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환경 캠페인을 벌이는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 

플라스틱 병뚜껑은 전 세계에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5가지 플라스틱 쓰레기 중 하나다. 투명/흰색 병뚜껑은 HDPE라는 고밀도 플라스틱으로 훨씬 더 재활용률이 높지만, 여러 종류와 섞이면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 이 뚜껑을 모아 매장에 전달하면 덕분애는 환경연합에서 운영 중인 ‘플라스틱 방앗간’에 보내 업사이클링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플라스틱인 것 같지만 90% 이상 재활용이 불가능한 재질인 화장품 용기를 수거하는 ‘화장품 어택’ 이벤트와 우유갑이나 종이백을 모아 주민센터에서 화장지로 바꾸는 활동 등 지속가능한 환경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매장을 둘러보고  ‘다시 쓰는 그랩의 밀랍백과 루피 나무 천연 수세미, 스테인리스 빨대 세트, 생분해되는 반려동물 배변봉투’ 등을 구매했다. 단순히 제로웨이스트샵을 방문하고 제품을 구매하는 작은 시도를 했지만, 환경에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삶이 변화된 느낌이었다. 

덕분애 이윤경 대표.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덕분애 이윤경 대표.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이윤경 대표는 “여러 영향이 있겠지만 기후변화는 우리가 환경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런 기후변화로 피해를 받는 사람들은 선진국이나 강자가 아닌 사회적 약자나 소외당하는 사람들이다. 그 피해를 우리가 고스란히 넘기는 게 아니라 책임 의식을 가지고 ‘나 한 사람쯤이야’가 아닌 ‘나부터 먼저’라는 나비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로웨이스트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조금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같이 해야 하는 일이다”라며 “지역 사회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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