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주식·가상화폐 관련 도박 상담 폭증
‘폭락장’ 시작되면 수익 인증에서 ‘자해 인증’으로
“중독 쉬운 가상화폐 투자,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코인에 중독되는 것 같아요. 처음엔 다 상승장이니까 조금만 넣어도 따거든요. 몇시간을 일해야 겨우 몇만원 버는데, 한순간에 만원 이만원 벌면 혹하죠. 눈앞에서 10만원이 20만원이 됐다가, 5만원이 되어버리면 그때는 금전적인 가치도 무감각해져요. 물건 하나 살때 몇천원 더 싸게 사는건 벌벌거리는데, 하루 알바비 날린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니까요.”
가상화폐 투자 열풍의 화려한 이면에는 청년들의 ‘투자 중독’이 있다. 가상화폐 투자는 부동산 투자보다 적은 금액으로 쉽게 시작할 수 있고, 주식 투자보다 높은 변동성을 가지고 있다. 24시간 시장이 움직이고, 진입장벽도 낮다. 청년들이 가상화폐 투자에 열광하는 이유다.
‘코인을 하면 돈이 복사가 된다’는 게 청년들의 환호지만, 높은 변동성은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가상화폐 상승장에서 수익을 인증하고 자랑하지만, 하락장에선 기물을 파손하거나 자해한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지난달 24일에는 가상화폐 투자 실패에 비관한 한 20대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며칠 전 대학생 A씨도 동기로부터 한 통의 메시지를 받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최근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던 동기 한 명이 피투성이 사진을 보냈기 때문이다. A씨는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동기는 ‘투자한 가상화폐가 크게 떨어졌다’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몸에 상처를 냈다고 한다”며 “청년들이 병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상화폐 광풍 이후 20대 청년들의 도박 관련 상담 수가 폭증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서울지부가 본지에 보낸 자료에 따르면, 20대의 주식·가상화폐 관련 도박 상담은 매달 3~5건에 그쳤지만, 2021년도에는 30여건으로 10배 가량 늘었다. 지난 2018년 주식·가상화폐 관련 20대 상담은 71건에서 지난해 236건으로 223%가 늘기도 했다.
도박센터에서는 가상화폐를 사는 것이 ‘도박’은 아니지만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경기지부 관계자는 본지에 “주식, 비트코인, 선물 등은 투자로 명명하며 도박과는 구분되는 개념으로 보는 경향이 높다”며 “불확실한 결과에 돈을 거는 행위를 도박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는 일상에서 쉽게 도박을 즐기지만 이를 게임, 투자라고 명명하여 제대로 인식되지 못한 행동들이 있다. 이런 행위를 투자라고 하지는 않듯 비트코인 역시도 불확실한 결과에 돈을 거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도박센터는 실제 상담 사례에서도 가상화폐 투자자들과 도박 중독자들의 증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A씨 동기의 사례처럼, 도박 중독자 역시 자해·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도박문제관리센터가 2015~2017년 도박중독자 6938명을 조사한 결과, 43.1%(2993명)은 자해와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도박센터는 “비트코인은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24시간 거래가 이루어지며 등락폭이 크기 때문에 중독에 쉽게 빠질 수 있고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금전, 관계, 직업, 사회, 신체,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 할 수 있다”고 전했다.
도박센터에서는 가상화폐도 도박 중독과 비슷하게 스스로 제어가 안 되면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센터 관계자는 “가상화폐 건으로 센터에 오는 내담자들의 증상은 일반 도박중독문제로 내소하는 분들과 같은 증상을 보이므로 일반적으로 센터에서 제공되는 동일한 치유서비스가 개입된다”며 “개인/집단상담을 비롯하여 외래치료(약물치료)를 병행하기도 하고 가족들 역시 센터에 내소하여 치유서비스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상화폐로 문제가 발생해 센터에 내방하는 분들은 치료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며 “투자와 도박의 명명을 떠나 특정 과몰입 행동으로 인해 금전, 관계, 직업, 사회, 신체,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하였고 또 조절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반드시 치료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문제인식을 갖고 센터에서 제공되는 치유서비스를 꾸준히 받는다면 긍정적으로 관리해 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